5년간 3조6000조원. LG그룹이 올해부터 2026년까지 인공지능(AI)·데이터 분야 연구개발에 투입하기로 한 규모다. LG그룹은 그룹 차원에서 AI를 차세대 먹거리로 키우고 있다. 디지털 전환과 기술 패권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AI를 활용하는 사업이 각광받을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LG그룹은 2020년 AI 연구 허브로 설립한 LG AI연구원을 중심으로 AI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그룹 차원의 AI 전담 조직을 만든 것은 LG그룹이 처음이다. 2020년 70여 명으로 시작해 지난해 말 190여 명으로 규모를 빠르게 늘렸다. 올해 말엔 250여 명으로 확대한다. 올해 이문태 미국 일리노이대 교수, 서정연 서강대 교수 등을 영입했다.

LG AI연구원이 지난해 공개한 초거대 AI ‘엑사원’은 핵심 무기로 꼽힌다. 초거대 AI는 대용량 연산이 가능한 컴퓨팅 인프라를 기반으로 데이터를 학습해 자율적·종합적으로 사고·학습·판단·행동하는 AI를 말한다. 엑사원은 이미지를 텍스트로 설명하고, 텍스트를 이미지로 표현할 수 있다. 엑사원에 사진을 보여주면 사진 속 모습대로 ‘한 소년이 푸르른 공원에서 노란색 플라스틱 원반을 던지고 있다’는 문장을 자동 완성하는 식이다. 문장을 그림으로 바꾸는 기능도 갖추고 있다.

LG AI연구원은 인간의 뇌에서 정보를 학습하고 기억하는 시냅스와 유사한 역할을 하는 인공 신경망의 파라미터를 13억 개, 130억 개, 390억 개, 1750억 개 등 단계적으로 키우며 엑사원을 진화시키고 있다. 엑사원을 실생활에 적용하기 위해 화학 기술 연구개발, 고객 상담 등에 활용할 수 있는 모델을 개발 중이다.

글로벌 기업 및 기관들과 협업도 늘려가고 있다. 지난해 LG AI연구원을 중심으로 다양한 산업 분야의 국내외 13개 기업이 모인 ‘엑스퍼트 AI 얼라이언스’를 발족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엑스퍼트 AI 얼라이언스는 초거대 AI를 활용하기 위해 이종 산업이 협력하는 것을 목표로 만들어진 민간 연합체다. 구글과 우리은행, 고려대학교의료원, 한양대병원 등이 참여하고 있다.

지난달엔 세계 3대 디자인 스쿨로 꼽히는 파슨스와 향후 4년간 디자인과 예술 영역에서 활용할 수 있는 AI 서비스를 개발하는 것을 목표로 한 협약을 맺었다. LG AI연구원은 파슨스와의 연구 결과물을 활용해 ‘전문 디자이너 및 예술가와 협업하는 AI 서비스’를 고도화할 계획이다. LG AI연구원은 지난 8월 디자이너가 AI와 협업하면서 참신한 디자인을 시각적 이미지로 생성하는 창작 플랫폼인 ‘엑사원 아틀리에’ 서비스를 개발해 주목받았다. 문장 하나를 주면 7분 만에 고해상도 이미지 256장을 생성한다. 배경훈 LG AI연구원장은 “인간의 창의성과 생산성을 높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AI 디자인 전문가’를 탄생시키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LG그룹은 연령대별 AI 교육 체계도 확대 운영한다는 방침이다. LG는 지난 6월 청년을 대상으로 한 AI 전문가 교육 프로그램 ‘AI 에이머스’를 신설했다. 중·고교생을 위한 ‘LG디스커버리랩’, 대학·대학원생을 위한 ‘AI 채용계약학과’, LG 직원 대상 ‘LG 아카데미’ 등을 포함한 4대 프로그램 체계를 구축했다. LG그룹은 8월부터 ‘AI’ 모양의 빨간색 의자와 함께 ‘AI 미래를 이끌 주인공의 자리입니다’라는 문구가 담긴 광고도 내보내고 있다.

앞으로는 그룹 주도로 이들 4대 프로그램을 연계, 확대하고 투입 비용을 늘릴 계획이다. LG그룹 관계자는 “중·고교생부터 청년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AI 인재를 조기 발굴하는 동시에 각 계열사 직원을 AI 전문가로 육성하는 프로그램을 강화하는 게 기본 방향”이라고 설명했다.

정지은 기자 je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