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도 아닌데 1박 50만원…반년 전에 이미 꽉 찼다 [이미경의 인사이트]
회사원 박은서 씨(34)는 지난 연휴(8~10일)에 제주도의 한 ‘감성숙소’에서 3박4일을 보냈다. 이 객실의 숙박료는 1박에 50만원. 제주도 내 5성급 호텔과 비슷하다. 박씨는 “코로나19로 해외여행이 막힌 후 ‘호캉스(호텔+바캉스)’는 즐길 만큼 즐겼다”며 “새로운 숙소에 머물고 싶은 욕구가 커져 택했다”고 말했다.

일반인들에겐 낯선 용어인 감성숙소는 최근 몇년 새 여행·숙박업계에 부상한 화두 중 하나다. 업계에선 야외 식사가 가능한 마당 딸린 단독주택 스타일의 숙박 시설을 감성숙소로 분류한다.

통상 다른 일행과 마주칠 일 없이 독립성을 보장 받을 수 있는 숙소 건물과 확 트인 조망을 보면서 바베큐를 즐길 수 있는 잔디 마당을 갖추고 있다.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좋은 인증샷을 찍기 좋아 MZ세대(밀레니엄+Z세대) 사이에 인기가 높다.

감성숙소는 숙박 시장의 전통 강자인 호텔을 훌쩍 뛰어넘을 정도로 성장폭이 가파르다. 11일 시장조사기관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국내 캠핑장 및 독채형 펜션의 시장규모는 2020년 6294억원에서 지난해 8577억원으로 36.3% 커졌다. 성장폭이 같은 기간 5성급 호텔 시장의 성장률(25.3%)보다 10%포인트 이상 높다.

10년 전(2012년)까지만 하더라도 3532억원 규모로 5성급 호텔(6028억원)의 58.5%에 불과했던 감성숙소 시장은 이후 빠르게 성장해 2017년부터 5성급 호텔 시장을 역전했다.

특히 코로나19 사태는 그렇지 않아도 가팔랐던 감성숙소 시장의 성장궤적에 날개를 달아줄 전망이다. 원격근무가 확산하면서 ‘워케이션(work+vacation, 업무와 휴식의 병행)’에 적합한 숙소 수요가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최근 2년여 간 호캉스를 즐길 대로 즐긴 MZ세대들이 다른 형태의 숙소를 찾게 된 것도 성장 요인으로 꼽힌다. 서수민 유로모니터 선임연구원은 “촌캉스(촌+바캉스, 고립된 시골에서의 숙박)와 같이 평소 하기 어려운 경험을 원하는 MZ세대가 늘어나는 추세인 만큼 감성숙소 시장 규모도 갈수록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반년 전에 예약 꽉 차

호텔도 아닌데 1박 50만원…반년 전에 이미 꽉 찼다 [이미경의 인사이트]
감성숙소는 시설을 이용하려는 여행자의 목적이 워케이션, 촌캉스, 인증샷 촬영 등 주로 휴식에 맞춰져 있다. 그런 만큼 숙소 이용이 여행의 목적 자체가 된다. 감성숙소 여행은 갈 지역을 먼저 정하고, 그에 맞춰 숙소를 택하는 기존의 여행 통념과는 다르다.

11일 여행업계에 따르면 제주, 강원 강릉, 양양 등에서 젊은 이들에게 인기 높은 감성숙소는 객실료가 1박에 20만~50만원에 달해 5성급 호텔과 맞먹는다. 그런데도 가깝게는 한 분기, 멀게는 반년 전에 예약이 마감되는 경우가 많다. 가을 단풍철을 만끽하기 위해 이달 말 양양의 한 감성숙소를 예약한 한모씨(32)는 지난 4월 예약을 완료했다. 한씨는 “원래는 여름 휴가철인 8월에 가려고 했는데, 5월쯤 해당 숙소를 알아봤더니 예약이 꽉 차있었다”고 했다.

이런 인기는 데이터에서도 드러난다. 야놀자 플랫폼 내 ‘고급 펜션’ 카테고리에서 지난해 발생한 거래금액은 전년 대비 92% 불어났다. “감성숙소 시장의 성장세가 워낙 가팔라 회사에서도 특히 주목하고 있다”는 게 야놀자 측 설명이다.

숙박 희망자들이 프라이빗한 분위기를 선호하는 만큼, 대형 온라인 여행사(OTA) 플랫폼에 입점하지 않고 자체 인스타그램 계정으로만 운영하는 숙소가 대부분이다. 경주에서 한옥 형태의 감성 숙소를 운영하는 A씨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시설을 소개하고 문의와 예약을 받는다”며 “연중 내내 공실률이 0%에 가까워 굳이 OTA에 입점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고 설명했다.

◆여행사, 감성 숙소 발굴에 혈안

호텔도 아닌데 1박 50만원…반년 전에 이미 꽉 찼다 [이미경의 인사이트]
이에 따라 OTA들은 플랫폼 입점을 꺼리는 감성숙소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혈안이 돼 있다. 숨겨진 숙소를 발굴하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이 잡듯 뒤지는 실정이다. 주요 타깃은 제주도다.

야놀자는 제주 지역 감성 숙소 발굴 등을 주목적으로 지난 5월 제주지사를 설립했다. 감성 숙소 운영자들이 플랫폼 입점 문의를 먼저해오는 경우가 많지 않기 때문에 현지에서 직접 숙소를 발굴하기로 한 것이다.

여기어때도 같은 달 ‘홈앤빌라’ 카테고리를 마련해 100여 개 감성숙소를 입점시켰다. 홈앤빌라는 여행자가 여행지에서 일정 기간 살아보는 경험을 할 수 있는 숙박시설을 소개하는 카테고리다. 여기에 입점한 숙소는 모두 단독 주택형 숙박시설이다. 하나투어는 제주도의 빈 집을 리모델링해 숙박시설로 전환하는 ‘다음스테이’ 사업을 펼치고 있다.

일각에선 주류 여행사들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감성숙소 시장이 지금과 같이 SNS 혹은, 전문 플랫폼 중심으로 성장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이상묵 스테이폴리오 대표는 “우리나라의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숙박시장도 점점 여행자의 프라이버시를 중요시하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며 “이런 흐름에 잘 맞는 의사소통 수단이 인스타그램”이라고 설명했다.

◆“숙박시장, 투트랙 성장”

전문가들은 “코로나19를 계기로 숙박 시장이 감성숙소와 같은 ‘독립된 공간’ 중심으로 급격하게 재편됐다”고 분석한다.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감성숙소 시장의 규모는 올해 1조372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후 2025년까지 연 평균 13.5% 성장해 그해 1조6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관측된다. 김남조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는 “해외 여행을 떠나지 못한 사람들이 국내 여행에서 경비를 아끼지 않는 경향이 있다”며 “가격보다도 정서적 만족감을 중요시하다 보니, 감성숙소가 비싸더라도 기꺼이 지갑을 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특히 최근에는 여행 시장을 주도하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가 인스타그램에 자랑할 수 있을 만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풍경이 있는 곳을 선호한다”며 “오션뷰, 숲속뷰 등을 갖춘 숙소가 인기를 끄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앞으로 숙박 시장은 기존 강자인 고급 호텔과 신흥 주류로 뜬 감성숙소가 양분하면서 성장세가 더욱 가팔라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최충범 세종대 호텔관광학과 교수는 “감성숙소를 찾는 사람이 많아진다고 해서 고급 호텔을 이용하려는 수요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라며 “아직까지는 감성숙소의 서비스 품질이 호텔보다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호텔에서만 받을 수 있는 최고급 서비스를 선호하는 사람들은 5성급 호텔을 계속 선호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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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경 기자 capit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