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2030세대 일반인 다섯 명이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 본사에 모여 저출산 원인과 대책에 대해 논의했다. 김병언 기자
지난 3일 2030세대 일반인 다섯 명이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 본사에 모여 저출산 원인과 대책에 대해 논의했다. 김병언 기자
281조원. 정부가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16년 동안 쓴 돈이다. 관련 예산은 매년 증가하고 있지만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지난해 0.81명으로 매년, 매분기마다 세계 최저 기록을 스스로 갈아치우고 있다. 무엇이 문제일까. 정부가 그동안 내놓은 수많은 대책들이 정작 임신과 육아를 고민하는 청년세대에게 무의미하지는 않았을까.

한국경제신문은 현재 시점에서 저출산 원인을 원점에서 되짚어보고 정확한 대책을 모색하기 위해 출산과 가장 밀접한 연관이 있는 2030세대 일반인 다섯 명과 지난 3일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 본사에 모여 좌담회를 열었다. 5명의 참가자들은 각각 프리랜서, 중소기업 직원, 딩크(자녀 없는 맞벌이 부부), 출산 경험자 등 다양한 사회적 배경을 갖고 각자의 의견을 제시했다. 이들이 생각하는 저출산 원인과 대책은 다양했지만, 현재 대한민국 상황에 대한 인식은 하나로 귀결됐다.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없다."

▷사회=딩크족 두 분은 출산을 단념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배유진="저는 2개월 뒤에 결혼할 예비 남편과 아이를 낳지 않기로 미리 합의했어요. 이직하며 여러 직장을 다녀봤는데, 출산과 육아로 인해 경력이 단절되는 직장 선배들, 그리고 친구들을 너무나 많이 보면서 마음을 굳혔어요. 중소기업에선 여성이 육아휴직을 쓰면 원래 직장으로 복직하지 못한 채 저임금 노동자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아요. 복직을 하더라도 원래 하던 일을 하지 못하거나 직급이 낮아지는 경우도 비일비재하죠. 저는 정말 열심히 공부해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에 성공했는데, 아이를 낳았다는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 모든 학업과 노력이 허사로 돌아가게 둘 수는 없어요."
배유진 씨(32)는 중소기업 사무직으로 일하고 있는 딩크족이다. 그는 "중소기업에선 육아휴직을 쓰면 불이익을 받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고 했다. 김병언 기자
배유진 씨(32)는 중소기업 사무직으로 일하고 있는 딩크족이다. 그는 "중소기업에선 육아휴직을 쓰면 불이익을 받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고 했다. 김병언 기자
▶정진우="중소기업뿐만 아니라 대기업도 마찬가지에요. 저는 아내와 함께 딩크로 살아가겠다고 결심했는데요, 아내는 육아휴직 제도가 보장된 대기업을 다니고 있어요. 그런데 제도가 아무리 형식적으로 잘 갖춰져있다 하더라도 결국 제도가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자유롭게 육아휴직을 쓰면 뭐하나요. 1년 휴직하고 돌아오는 순간 아내는 육아휴직을 쓰지 않는 남성 동료들에 비해 무조건 승진이 뒤처지게 되고 변두리 부서만 돌게 돼요. 아내는 그런 구조적 불리함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해요. 저도 전적으로 동의하고요."

▷사회=프리랜서인 김별님은 육아휴직을 쓸 수 있습니까.

▶김별="프리랜서는 쓸 수 있는 육아휴직 제도 자체가 없어요. 그냥 제도 대상 자체가 아니에요. 직장인은 육아휴직을 쓰면 육아휴직 급여를 받잖아요? 프리랜서는 고용보험 가입자가 아니라서 아무런 급여도 못 받아요. 게다가 저는 요가 강사로서 몸을 쓰는 프리랜서이기 때문에 임신하는 순간 경력단절은 물론이고 육아를 마칠 때까지 생계가 완전히 끊기게 돼요. 남편도 웹툰 작가로 일하는 프리랜서인데, 1년이라도 직장인이 육아휴직 급여를 받는 만큼만 수입이 보장되면 아이를 낳을 수 있겠다는 얘기를 많이 해요."
요가 강사로 일하고 있는 김별 씨(29)는 "프리랜서는 육아휴직 제도 대상자가 아니어서 출산을 하는 순간 생계가 끊긴다"고 말했다. 김병언 기자
요가 강사로 일하고 있는 김별 씨(29)는 "프리랜서는 육아휴직 제도 대상자가 아니어서 출산을 하는 순간 생계가 끊긴다"고 말했다. 김병언 기자
▷사회=아이를 먼저 낳아본 두 분은 둘째를 낳을 계획이 있습니까.

▶한민정(가명)="저는 원래 두 명은 꼭 낳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어요. 하지만 작년에 첫째를 낳고 일과 육아를 병행하면서 도저히 둘째는 못 낳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어요. 1년의 육아휴직 사용으로 인한 업무 역량 저하는 제가 감내해야 할 부분이라 생각해요. 그런데 정말 문제는 육아휴직에서 복직한 뒤에요. 누가 아이를 보살펴주나요. 어린이집에서 하루 종일 돌봐주나요. 저와 남편은 모두 업무 특성상 야근도 많고 휴일 근무도 많아서 매일 고정적으로 어린이집 마치는 시간에 아이를 데리러 갈 수 없어요."

▷사회=그러면 지금 첫째는 누가 돌보고 있나요.

▶한민정="저희 부모님이 돌봐주시고 계세요. 저희 부모님은 경제력이 있으신데도 제 아이를 돌보기 위해 두 분 모두 일을 그만 두셨어요."
전문직으로 일하고 있는 한민정 씨(30·가명)는 첫째를 기르면서 둘째를 낳으려던 기존 계획을 수정했다. 그는 "남성 육아휴직이 의무화되면 둘째를 낳을 수 있다"고 했다. 김병언 기자
전문직으로 일하고 있는 한민정 씨(30·가명)는 첫째를 기르면서 둘째를 낳으려던 기존 계획을 수정했다. 그는 "남성 육아휴직이 의무화되면 둘째를 낳을 수 있다"고 했다. 김병언 기자
▶강현일(가명)="육아에 부모님 도움이 꼭 필요하다는 말씀에 저도 절대적으로 동의해요. 저와 제 아내는 부모님 도움을 받기 위해 아예 집도 부모님 댁 옆에 마련했어요. 그런데도 이제 막 100일 지난 첫째 아이를 키우는 게 쉽지는 않아요. 정말 사랑스러운 만큼 아이에게 한 시도 눈을 뗄 수가 없고 정신적으로 힘든 일이니까요."

▷사회=부모님이 곁에 없을 경우를 생각해보셨나요.

▶강현일="저희 부부는 둘째까지는 낳기로 했는데 만약 부모님 도움을 받을 수 없다면 절대 둘째 생각을 못 했을 겁니다. 첫째까지는 여성이 경력단절, 정신적·신체적 피해를 일방적으로 감내하며 희생하면 키울 수 있을지 몰라요. 그런데 둘째는 아무리 희생하더라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아내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사회=베이비시터를 고용하면 되지 않나요.

▶배유진="시터를 고용하는 데 돈이 정말 많이 들어요. 하루에 4~5시간 고용하는 데 한 달에 150만원이 들어요. 공식적인 금액만 이 정도고, 시터는 수당과 각종 명절 선물을 주는 게 필수라고 해요."

▶정진우="시터는 국적에 따라 비용이 천차만별이에요. 조선족이나 중앙아시아 출신 베이비시터는 한 달에 200만원 안팎인데, 한국인을 고용하려면 최소 한 달에 400만원은 들여야 해요. 수당 등 추가 비용은 별도고요. 이렇게 비용이 비싸다는 건 수요에 비해 인력이 제대로 공급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에요. 저는 우리나라 고령 은퇴자를 베이비시터로 재교육해서 보육 시장에 적극 공급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생각해요. 대부분 육아 경험이 있기 때문에 재교육 비용이 많이 들지도 않을 테고, 노인일자리 창출도 가능하잖아요. 일본은 실버산업을 이런 식으로 육성하고 있어요."

반도체 대기업에 다니는 정진우 씨(30)는 딩크족이다. 그는 "정부가 말로는 저출산 위기라고 외치면서도 내놓은 대책들을 보면 진심이 전혀 안 느껴진다"고 말했다. 김병언 기자
반도체 대기업에 다니는 정진우 씨(30)는 딩크족이다. 그는 "정부가 말로는 저출산 위기라고 외치면서도 내놓은 대책들을 보면 진심이 전혀 안 느껴진다"고 말했다. 김병언 기자
▷어떠한 제도적 변화가 생기면 본인이 아이를 낳겠다는 결심을 하겠습니까.


▶한민정="남성의 육아휴직이 의무화되면 둘째를 낳을 것 같아요. 제 남편은 공공 부문에서 일하는데도 육아휴직을 쓰면 무조건 승진에서 밀려요. 저도 그걸 바라지 않기 때문에 남편에게 육아휴직을 써달라고 말하지 못해요. 그런데 부부가 1년씩 번갈아가면서 육아휴직을 쓸 수만 있다면 여성도 육아휴직을 훨씬 편한 마음으로 쓸 수 있고, 일과 육아를 수월하게 병행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배유진="맞아요. 결국 자본주의 사회라면 회사 안에서 모두가 경쟁을 하잖아요. 그런데 남성은 육아휴직을 안 쓰고 여성에게만 육아를 강요하는 현재 구조는 여성에게 공정한 경쟁의 장이 아니에요. 왜 다 같이 열심히 공부해서 취업해놓고 여성만 육아휴직을 써서 승진에서 누락돼야 하나요. 아이는 반드시 엄마가 키워야 한다는 의식 자체를 바꾸려면 육아휴직 의무화가 필요해요."

▷사회=육아휴직 급여는 월 150만원 한도 내에서 통상임금의 80%만 지급되기 때문에 의무화되면 개인의 수입이 줄어드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정진우="부족한 점은 당연히 제도적으로 개선해야 하는 것이고, 정부가 정말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남성 육아휴직 의무화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문제라면 총력을 집중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저는 대기업을 다니고 있고 이전 직장도 대기업이었는데, 육아휴직을 쓴 남성 선배들이 공공연하게 인사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를 너무나 많이 봤어요. 쓸 수가 없는 구조죠. 그런데 의무화되면 개인이 아이를 낳고 키우기 위해 회사를 상대로 싸워야 하는 일이 사라지겠죠. 과격하더라도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려면 의무화는 필수라고 봅니다. 저는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 가장 필요한 육아휴직 제도에 이렇게 문제가 많다는 점에서 매년 수십조원을 썼다는 정부가 단 한 번도 저출산 문제를 진심으로 해결하려 한 적이 없었다고 생각해요."

▶강현일="대부분의 기업에서 남성은 육아휴직이 아니라 출산휴가만 써도 '네가 애 낳았냐?'라는 핀잔을 듣기 일쑤인데 육아휴직은 꿈도 못 꾸죠. 육아휴직을 쓴 남성 비율이 높은 기업에 정부가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주는 방법도 좋을 것 같아요."
강현일 씨(37·가명)는 올해 첫째 아이를 갖게 된 금융권 회사원이다. 그는 "불임 부부에 대한 심리적 치료도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병언 기자
강현일 씨(37·가명)는 올해 첫째 아이를 갖게 된 금융권 회사원이다. 그는 "불임 부부에 대한 심리적 치료도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병언 기자
▷사회=윤석열 정부가 신설한 부모급여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부모급여는 내년부터 소득과 무관하게 0세 아이의 부모에겐 무조건 70만원, 1세 아이의 부모에겐 35만원을 주는 제도입니다. 2024년엔 0세와 1세 부모에 대한 지급액이 각각 100만원, 50만원으로 늘어납니다.

▶김별="소득 무관하게 무조건 월 100만원이란 금액이 생각보다 작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이 금액이 계속 늘어나면 아이를 낳겠다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 수 있을 것 같아요."

▶배유진="저는 별로 와닿지 않았어요. 아이를 못 낳는 이유가 돈 때문만은 아니거든요. 저는 돈이 아니라 아이를 돌볼 수 있는 환경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한민정="저도 바람직한 제도라고는 생각하지만, 출산 결정을 좌우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사회=돈의 크기가 문제인가요. 만약 월 400만원이면 어떻습니까.

▶강현일="월 400만원은 베이비 시터를 고용할 수 있는 금액이기 때문에 단순한 현금 지원이 아니라 하나의 돌봄 제도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국가가 돌봄을 거의 책임져준다는 측면에서 봤을 때 400만원은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사회=돌봄 문제 외에 아이를 낳기 어려운 또 다른 이유가 있나요.

▶강현일="또래 친구들 중에선 아이를 갖고 싶은데도 임신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약 40% 정도 돼요. 이런 불임 가구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확대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체외수정, 인공수정 시술비 지원처럼 물리적 시술에만 정부의 지원이 이뤄지고 있는데, 사실 정신적인 치료를 필요로 하는 경우도 많거든요."

▶배유진="집값이 너무 비싼 점도 제게는 출산을 단념한 중요한 원인 중 하나였습니다. 신혼집을 서울에 방 하나 딸린 도시형생활주택에 전세로 마련하는데도 5억원이 들었어요. 소득 절반을 전세 대출금 갚는 데 써야 할 정도로 사회 초년생에겐 큰 금액이에요. 아이 키우려면 최소한 방이 두 개는 있어야 할 텐데, 저희로서는 맞벌이를 하는데도 지금 전세집마저 버겁죠."

▶김별="경기도 광명에 사는 저도 마찬가지로 방 하나, 거실 하나 있는 집에서 신혼생활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방 하나 더 있는 집으로 이사가려면 최소한 1억원이 더 필요해요. 방 하나당 1억원이 추가된다고 보면 되더라고요. 저는 출산을 아예 단념한 것까지는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집을 옮길 돈을 우선 모아야 임신 생각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사회·글=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