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의 ‘변신’은 어디까지 진행될까. 종이와 플라스틱의 경계가 급속하게 허물어지고 있다. 제지업계가 플라스틱을 대체할 종이 제품 개발 및 출시에 속도를 내고 있어서다. 세계 각국의 ‘탈(脫)플라스틱 정책’에 발맞춰 플라스틱 대체 종이가 인쇄용지 산업용지 등 기존 사업의 침체를 극복할 돌파구로 급부상하는 모습이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펄프와 종이 일관 생산체제를 갖춘 무림은 업계 최초로 냉동식품 파우치형 종이 포장재인 네오포레 플렉스를 개발했다고 5일 밝혔다. 네오포레 플렉스는 롯데제과 아이스크림 ‘설레임’과 동원산업 ‘참치회’ 등 과거 플라스틱 용기가 사용되던 제품에 적용됐다. 해동 시 결로가 생겨도 찢어지거나 손상되지 않고 열전도율이 낮아 제품을 쥐었을 때 손 시림 현상을 개선했다. 플라스틱 대체 종이 전용 공장도 준공해 양산 채비를 갖췄다.
아이스크림·화장품도 이제 종이에 담는다
무림은 2020년 한국콜마와 공동으로 친환경 종이 튜브를 개발하며 친환경 화장품 용기 시장을 공략했다. CJ대한통운과는 세칭 ‘뽁뽁이’로 불리는 비닐 에어캡을 대체할 종이 완충재를 업계 최초로 개발했다. 배달·포장용 용기 시장을 겨냥해 사용한 뒤 버려도 자연 분해되는 펄프몰드(친환경 용기) 제품을 연말 출시할 예정이다.

국내 최대 종합제지사인 한솔제지는 지난해 선보인 플라스틱 대체 친환경 종이 용기인 테라바스의 적용 범위를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한솔제지가 업계 최초로 출시한 플라스틱 대체지는 플라스틱 계열인 폴리에틸렌(PE) 코팅 대신 한솔이 개발한 수용성 코팅액을 적용했다. 오뚜기와 배달의민족 등 식품업체엔 식품 용기로, 이디야 폴바셋 등 커피전문점엔 컵으로 공급되고 있다. 내수성과 내열성이 뛰어나 신선식품에 확대 적용될 전망이다.

종합제지기업 깨끗한나라는 원재료의 98% 이상이 재활용 종이 자원으로 구성된 제품 브랜드인 N2N을 지난 4일 선보였다. 생분해되는 100% 레이온 원단을 사용한 ‘깨끗한나라 올그린 물티슈’도 출시했다. 한국제지는 PE 코팅을 하지 않아 100% 재활용이 가능한 친환경 종이컵을 만들어 아워홈에 공급하고 있다.

플라스틱 포장재 사용을 줄이고 친환경 종이로 대체하는 것은 세계적인 흐름이다. 인공림 조성을 통해 생산되는 종이는 인체에 해롭지 않고 재활용률도 높기 때문이다. 미국 코카콜라는 여러 병의 음료를 한데 묶는 데 사용하는 플라스틱 포장재를 종이로 대체하고 있다. 프랑스 로레알은 종이 기반 화장품 튜브를, 영국 유니레버는 세탁세제용 종이보틀을, 스웨덴 앱솔루트는 보드카용 종이보틀을 출시했다.

제지업계가 탈플라스틱 시장 선점에 나선 배경엔 기존 사업의 수익성이 하락하고 있는 영향도 크다. 디지털미디어 확산 등으로 전통적인 인쇄용지 시장은 크게 위축됐다. 비대면 문화 확산으로 ‘반짝 호황’을 누린 골판지 백판지 등 산업용지 시장 역시 경기 침체 영향으로 성장세가 꺾였다. 영수증용 감열지(한솔제지)와 고급 인쇄용지(한솔제지 무림) 등 수출 경쟁력이 있는 제품만 환율 영향으로 호황을 누리고 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