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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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소비자 물가가 두 달 연속 둔화 흐름을 나타내며 고(高)물가 진정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밥상물가가 치솟고 있는데다 우크라이나 사태, 환율 급등, 전기·가스요금 인상 등이 물가 상승을 다시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면서 한국은행의 통화정책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5일 통계청에 따르면 9월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5.6% 상승했다. 물가 상승률은 1월 3.6%에서 2월 3.7%로 올라선 뒤 3월에 4.1%, 4월에 4.8%, 5월에 5.4%로 상승세를 이어갔다. 이후 6월과 7월엔 각각 6.0%, 6.3% 올라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 11월(6.8%) 이후 최고치를 나타낸 뒤 8월(5.7%) 상승세가 둔화한 바 있다.

앞서 정부와 한국은행은 10월에 물가상승률이 정점을 맞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국제 유가 및 원자재 가격이 하락중이고 장마와 태풍이 지나면서 농산물 가격이 안정될 것이라 판단해서다. 실제 유가 하락에 석유류 등의 상승률이 낮아지면서 전체 물가 오름세가 주춤하는 모습이다.

반면 원·달러 환율이 치솟으면서 주춤했던 물가도 다시 들썩일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원·달러 환율은 달러화 강세 여파에 지난달에만 연고점을 11번이나 갈아치웠다. 지난달 22일 금융위기 후 13년 6개월 만에 처음으로 1400원을 뚫었던 환율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1440원대마저 돌파했다.

환율이 오르면 원자재 등 수입 물가를 끌어올려 물가 상승을 압박하는 요인이 된다. 한국은행은 환율이 1% 오르면 물가 상승률은 0.06%포인트 높아진다고 추정했다. 기대인플레이션 상승은 3~4분기 시차를 두고 물가를 다시 끌어올리는 것으로 분석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환율이 높은 수준을 지속할 경우 추가적인 물가상승압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한 바 있다.

시장에선 미국 중앙은행(Fed)의 통화 긴축에 따른 달러화 강세가 내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우크라이나 사태, 경기침체 우려 등이 지속될 경우 원·달러 환율이 1500원대로 진입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달 전기요금과 가스요금이 동시에 오른 점도 물가상승에 기폭제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다. 한국전력은 이달부터 전기요금을 1kWh(킬로와트시)당 7.4원 인상하고, 산업통상자원부는 다음 달부터 민수용 도시가스 요금을 MJ(메가줄)당 2.7원 올린다고 발표했다.

이번 공공요금 인상으로 정부는 소비자물가가 0.3%포인트 가량 더 오를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물가상승률이 5%대를 유지하더라도 환율과 공공요금 인상 변수까지 더하면 소비자물가는 다시 6%대로 올라설 가능성이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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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도 물가 불안에 대한 우려를 드러냈다. 이날 오전 열린 '물가 상황 점검회의'를 주재한 이환석 한은 부총재보는 "소비자물가는 주춤했지만 근원물가는 외식 등 개인서비스 품목을 중심으로 오름세가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며 "앞으로 소비자물가는 상당기간 5~6%대의 높은 오름세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이어 "러시아·우크라이나의 전쟁 전개 양상, 글로벌 긴축기조 강화 등에 따른 불확실성이 크고 고환율, 주요 산유국의 감산 규모 확대 등이 상방리스크로 잠재해 있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한은의 통화정책 고민도 더 깊어질 전망이다. 변동성이 커진 외환시장을 안정시키고 물가를 잡기 위해선 금리인상이 필요하지만 사상 최대치를 기록 중인 가계빚이 발목을 잡고 있어서다. 올해 6월 말 기준 가계대출은 총 1757조9000억원에 달한다. 미국의 금리인상을 시작으로 시장금리가 빠르게 치솟으면서 대출자들의 이자 부담은 경제활동을 위축시킬 지경에 이르렀다. 대출자들의 곡소리가 커지자 정부도 빅스텝 자제를 우회적으로 시사한 상황이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연구위원은 "한미 금리차가 확대되고 원·달러 환율이 계속 오르는 상황에서 통화당국인 한은이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순 없다"며 내달 한은이 빅스텝을 단행할 가능성을 열어놔야 한다고 했다.

다만 정 연구위원은 "영국, 유럽이 미국보다 물가상승률이 높은데도 기준금리를 훨씬 덜 올렸다"며 "국내 가계가 미국보다 부채에 대한 감내력이 양호한 만큼 한은이 가파른 금리 인상 속도를 계속 유지하진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채선희 한경닷컴 기자 csun0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