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 맞은 위기인데 정부와 정치권 등이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지 않고 있는 게 바로 위기 요인입니다.”(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

“한국이 장기 저성장으로 들어가는 초입 상황인데, 정부와 여야 모두 대책을 세우지 않고 맨날 싸움질만 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위기는 경제 위기이자, 정치 위기입니다.”(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

글로벌 금융위기 등 과거 위기 극복을 주도한 경제 원로들이 3일 한국 경제에 대해 “과거보다 지금이 더 힘든 상황”이라며 고언을 쏟아냈다. 한국경제신문과의 전화 통화에서다.

2009년 기재부 장관으로 금융위기 극복을 이끈 윤증현 전 장관은 “현재 한국 경제는 대내 균형과 대외 균형이 모두 무너진 복합 위기에 처해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는 정치권과 민간 기업, 시민 모두가 위기라는 의식이 있어 빠르게 극복했다”며 “지금은 아무도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지 않아 또 다른 위기를 잉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위기 때 금융당국 수장이던 전광우 전 금융위원장은 “과거 위기가 단기 패닉이라면, 지금은 스태그플레이션 국면으로 (어려운 경제 상황이) 과거보다 길게 이어질 수밖에 없다”며 “단기 대책에 매몰되지 말고 중장기 개혁으로 경제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특히 “지금은 정부와 국민 모두 허리띠를 졸라매고 고통을 분담해야 할 시기”라며 “돈 풀기식 인기 영합주의는 한국을 바라보는 해외 투자자를 매우 불안하게 만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종구 전 금융위원장도 “지금은 과거와 다른 뉴노멀(새로운 표준)의 시기”라며 “과거 해법에만 매달려선 안 된다”고 했다.

박승 전 총재는 “한국이 또다시 IMF(국제통화기금) 사태까지는 안 가겠지만 지금은 장기 저성장 구도로 들어가는 전환점”이라며 “지금까지 한국의 경제 성장은 중국 엔진으로 작동했지만 이제는 성장 엔진을 바꿔야 할 시점”이라고 했다. 김중수 전 한은 총재는 “외부 충격이 지나간 뒤 복원력이 중요하다”며 “경제팀이 국민에게 신뢰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정의진/임도원/황정환 기자 just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