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논에서 벼가 수확되는 모습. 연합뉴스
한 논에서 벼가 수확되는 모습. 연합뉴스
과잉 생산된 쌀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사들이도록 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초과 생산된 쌀 매입에만 2030년까지 연평균 1조원을 써야 한다는 국책 연구원의 분석이 나왔다. 시장격리(정부매입)이 의무화되면 지금도 연평균 20만t에 달하는 쌀 초과 생산량이 2030년 64만t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전망이 현실화되면 쌀 시장격리에 들어가는 세금만 1조4000억원에 달한다.
○2030년 시장격리에 드는 돈 1조4000억원
농림축산식품부 산하 연구기관인 한국농촌경제연구원(농경연)은 지난달 30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쌀 시장격리 의무화의 영향분석’이란 제목의 보고서를 내놨다. 야당인 민주당이 양곡관리법 개정을 10월 정기국회에서 처리할 중점 과제로 선정하고 처리 강행을 예고한 상황에서 공신력 있는 연구기관이 내놓은 첫 연구 결과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쌀값 하락을 막기 위해 초과 생산된 쌀의 시장격리를 의무화한 게 핵심이다. 현행법상 정부는 쌀 생산량이 예상 수요량의 3% 이상이거나 가격이 전년 대비 5% 넘게 하락하면 초과 생산량 한도 내에서 쌀을 매입할 수 있다. 개정안은 정부의 재량권을 없앴다.

국민의 식습관 변화로 쌀 소비량이 빠르게 줄어드는 가운데 쌀 생산은 줄지 않으면서 산지 쌀값은 작년 10~12월 40㎏에 5만3535원에서 지난달 25일 4만1836원으로 22%가량 떨어졌다. 정부가 지난해 수확기부터 37만t에 달하는 쌀을 시장격리 했지만 쌀값 하락세는 멈추지 않았다. 초과 생산량에 대한 시장격리를 의무화하면 쌀값을 떠받칠 수 있다는 게 민주당 논리다.
"쌀 정부매입 의무화되면 매년 1조원씩 써야"…국책연의 '직격'
농경연은 쌀 시장격리 의무화가 만성적인 쌀 초과 공급 구조를 한층 더 심화시킬 것이라 전망했다. 농경연이 미국의 대표적인 농업 연구기관 식품농업정책연구소와 2년 간의 공동 연구를 통해 구축한 예측 모형을 활용해 분석한 결과 쌀 시장격리 의무화가 이뤄질 경우 2022~2030년 기간 중 연평균 초과 생산량은 46만8000t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책 개입이 없다고 가정했을 때 초과 생산량(20만1000t)보다 두배 이상 많은 규모다.

얼마나 초과 생산이 되든 정부가 매입해주다보니 초과 생산량은 점점 늘어난다. 올해 24만8000t 수준인 쌀 초과 생산량은 2030년 64만1000t까지 늘어난다. 연구진은 “시장의 수급 조절 기능이 약화돼 과잉 생산량이 확대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농경연에 따르면 개정안 통과 시 쌀 시장격리에 투입되는 예산은 연평균 1조443억원에 달한다. 매년 쌀이 남아돌다 보니 매입한 쌀은 보관 기한(3년) 후 매입가 10~20% 수준의 헐값에 주정용·사료용으로 팔린다. 시장격리에는 헐값 매각에 따른 손실에 보관료와 금융 비용까지 더해진다. 매년 초과 생산량이 늘어나면서 올해 투입 예산은 올해 5559억원에서 2030년엔 1조4042억원까지 늘어난다.

농경연은 “양곡관리법 개정을 논의하기 위해서는 개정안 도입 시 쌀 수급 전망 및 향후 재정 변화 등에 관한 면밀한 검토가 전제되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쌀 수급 균형 물거품 될 것”
주관 부처인 농식품부와 여당은 양곡관리법 개정에 공식적으로 반대 의사를 밝힌 상황이다. 정부가 무조건 초과 생산량을 사들이면 고질적인 쌀 공급 과잉 구조가 더 심화하고, 안 써도 될 예산을 투입해 청년농 육성 등 농업 혁신을 위한 투자도 저해될 것이란 게 정부·여당의 판단이다.

농식품부는 지난 달 22일 ‘쌀 산업 동향 및 쌀값 안정 방안’을 통해 “시장격리 예산은 매입비, 보관료 및 이자비용으로 농업 발전을 위한 투자와는 관련이 없는 소모성·휘발성 성격의 예산”이라고 규정했다. 박정하 국민의힘 수석대변인도 지난달 29일 브리핑에서 “양곡관리법 개정은 쌀 공급 과잉을 심화시키고 재정 부담을 가중시켜 미래 농업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농식품부는 시장격리를 의무화가 그간 역점을 두고 추진해온 쌀 수급 균형 달성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 것이라 보고 있다. 정권과 관계 없이 역대 정부가 만성적인 쌀 과잉생산 구조를 해소하기 위해 논에 다른 작물을 재배하면 쌀 소득과의 차액을 지원하는 식의 정책을 펼친 결과 쌀 생산량은 2011년 이후 10년 동안 연평균 0.7% 감소했다.

하지만 국민 식생활 변화에 따라 같은 기간 쌀 소비량이 연평균 1.4%씩 더 빠르게 감소하면서 쌀은 평년작 기준 연평균 20만t이 초과 생산되고 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쌀은 기계화율이 98.6%에 달해 다른 작물보다 재배 편의성이 높은 작물”이라며 “시장 격리가 의무화되면 판로 걱정도 줄기 때문에 재배유인이 증가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비슷한 논의가 노지 채소 등 다른 작물로까지 확산할 수 있다는 것도 농식품부가 우려하는 부분이다.

따라서 시장격리를 의무화하기 보단 시장 상황에 맞춘 ‘최후의 수단’이 될 수 있도록 두고 중장기적인 쌀 수급균형과 식량안보를 도모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 농식품부의 판단이다. 정부는 논에 벼 대신 밀이나 콩, 가루쌀을 이모작할 경우 헥타르(ha)당 250만원을 지급하는 전략작물직불제를 내년부터 도입한다. 2026년까지 일반쌀 생산 가운데 20만t 가량을 밀가루를 대체하는 쌀가루 생산에 용이한 가루쌀로 전환하는 사업도 추진 중이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