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 1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전세사기 피해 방지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 1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전세사기 피해 방지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부가 이르면 내년 1분기부터 주택 임차인(세입자)이 임대인(집주인)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도 임대인의 체납세액 정보를 열람할 수 있도록 관계 법령을 고치기로 했다. 집주인이 세금 체납 사실을 숨긴 채 세입자로부터 보증금을 받으면 추후 집이 경매에 넘어가는 경우 등에서 세입자가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피해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세입자가 억울하게 보증금을 받지 못하는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경매에 이미 넘어간 집의 매각대금도 세금보다 임차보증금으로 일부분 먼저 지급되도록 제도를 고치기로 했다.

기획재정부는 이 같은 내용을 핵심으로 하는 전세사기 피해 방지방안 후속조치를 마련했다고 28일 발표했다. 관계 부처가 지난 1일 합동으로 발표한 '전세사기 피해 방지방안'과 관련해 기재부가 국세 분야에서 추진할 핵심 내용을 별도로 추려 발표한 것이다.

기재부는 우선 임차인이 임대인 동의 없이 임대인의 미납조세 정보를 열람을 할 수 있도록 국세징수법 시행령을 고치기로 했다. 지금까지는 임차 희망인이 계약 전에 임대인의 동의를 구한 경우에만 부동산 소재지 관할 세무서장(국세)이나 지방자치단체장(지방세)에게 미납조세 정보를 조회해달라는 신청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을(乙)'의 입장에 놓인 임차 희망인이 집주인에게 세금 체납 정보를 요구하기가 쉽지 않아 현행 미납국세 열람제도는 유명무실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에 동의 절차 없이도 정보 열람이 가능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기획재정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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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제도가 변경돼도 임차인이 임대인의 미납조세 정보를 열람할 수 있는 시기는 '주택임대차 계약일로부터 임차 개시일까지의 기간'으로 한정된다. 세급 체납 정보는 중요한 개인정보로 꼽히는데, 계약금을 지급하기도 전에 임대인의 미납조세 정보를 확인하게 할 수는 없다는 게 기재부 설명이다.

정부는 또 보증금이 '일정금액'을 초과하는 경우에만 임대인의 미납조세 정보 열람이 가능하도록 할 방침이다. 일정금액은 향후 시행령 개정 과정에서 확정될 예정이지만 최소 2000만원 이상이 될 전망이다. 현행 주택임대차보호법 시행령에 따르면 서울은 5000만원, 서울을 제외한 수도권정비계획법상 과밀억제권역과 용인·화성·김포시는 4300만원 등 지역에 따라 최우선 변제를 받을 수 있는 보증금이 다른데, 가장 낮은 기준이 2000만원이기 때문이다. 이 역시 임대인 개인정보에 대한 과도한 침해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다. 2000만원 이하 보증금에 대해선 이미 최우선 변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굳이 임차인이 임대인의 체납세액 정보를 들춰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한편 정부는 세입자가 살고 있는 집이 경매·공매로 넘어갈 경우 매각대금 일부를 국세 체납액을 징수하는 데 앞서 임차인의 보증금을 되돌려주는 데 먼저 지급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현재까지는 경·공매에 넘어간 주택의 집주인이 종합부동산세와 같이 자산에 부과되는 '당해세'를 체납했다면 경·공매 매각대금이 체납세액 납부에 가장 먼저 쓰였다. 세입자는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집주인이 세금을 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보증금을 받지 못한 채 경·공매 매각 대금이 세금 징수에 먼저 쓰일 수도 있었던 것이다.

다만 경·공매 매각대금 모두를 임차인의 보증금 보호에 우선 쓰기로 한 것은 아니다. 경·공매시 임차권의 확정일자 이후 법정기일(체납 시작일)이 성립한 당해세 배분 예정액만큼만 세입자의 보증금에 우선 배분된다.

예를 들어 집주인의 체납세액이 2억원이고 은행이 소유한 저당권(전세자금대출 등)이 3억원, 임차인이 지급한 보증금이 3억원인데 경·공매 매각대금이 5억원인 경우를 가정해보자. 이전엔 집주인이 세금 2억원을 체납한 시기보다 임차인의 확정일자가 앞선 경우에도 매각대금 5억원 가운데 체납세액 2억원을 먼저 정부가 챙기고 나머지 3억원을 은행 등이 저당권으로 보장받았다. 결국 정부와 은행에 5억원이 모두 쓰여 세입자는 보증금을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기획재정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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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앞으로는 기존에 정부가 받을 세액 2억원만큼만 세입자가 보증금으로 먼저 받을 수 있게 된다. 세입자가 집주인에게 준 보증금 3억원 가운데 2억원은 먼저 받고, 그 다음에 은행 등이 기존과 같이 3억원의 저당권을 챙긴다는 것이다. 저당권 문제가 해소된 이후에 세입자는 나머지 1억원을 돌려받을 수 있고, 그래도 매각대금이 남으면 마지막에 정부가 2억원을 챙길 수 있게 된다.

정부는 당해세의 우선변제권만 주택 임차 보증금에 귀속시키는 것이기에 제도 변경 후에도 임대인의 세금 체납액이 소멸되는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정부는 국세기본법 및 국세징수법을 개정해 내년부터 즉시 이 같은 내용의 당해세 관련 변경 제도를 시행할 계획이다.

정정훈 기재부 조세총괄정책관은 "세입자의 임차 보증금을 최대한 보호하기 위해 정부가 받을 권리를 양보하는 것이라 보면 된다"며 "다만 은행 등의 저당권은 제도 변경 이후에도 전혀 변화가 없도록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