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기업들이 대출, 회사채 등으로 조달한 자금이 114조원을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가 시작된 2020년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큰 규모다. 고환율·고물가·고금리 등 ‘3고(高)’가 겹친 복합위기에 대비해 ‘현금 쌓기’에 주력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5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1~8월 기업들이 은행 대출과 회사채, 기업어음(CP), 주식 발행으로 조달한 자금은 114조8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작년 같은 기간 조달한 자금(111조7000억원)에 비해 3조1000억원 증가했다. 2018년 1~8월과 2019년 1~8월의 평균 조달액(53조500억원)보다 두 배 이상 많았다. 역대 1~8월 기준으로는 코로나19로 기업들이 유동성 확보에 적극 나선 2020년(117조4000억원)을 제외하면 가장 규모가 컸다.

조달 수단별로 보면 올 들어 은행 대출로 80조4000억원을 조달했다. 유상증자를 비롯한 주식 발행으로 19조9000억원, CP로 16조원을 마련했다. 하지만 회사채 시장에서는 1조5000억원을 순상환했다. 회사채로 조달한 금액보다 만기 도래에 따른 현금 상환 금액이 더 많았다는 뜻이다.

기업들의 은행 대출이 유독 급증했다. 지난달 말 기준 은행권 기업대출 잔액은 1146조1000억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지난해 말과 비교해선 80조4000억원(7.6%) 급증했다. 특히 대기업 대출 증가세가 두드러졌다. 지난달 말 기준 대기업 대출 잔액은 202조6000억원으로 올 들어서만 23조2000억원 늘었다. 작년 1~8월 대기업 대출 증가폭(3조9000억원)을 여섯 배가량 웃돌았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회사채 금리가 급등한 데다 수요 위축으로 회사채시장이 꽁꽁 얼어붙으면서 기업들이 은행 대출창구를 주로 찾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기업별로 보면 SK하이닉스의 자금조달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올 상반기 차입금은 15조6580억원으로 작년 상반기보다 4조7626억원 늘었다. 이 기간 삼성물산과 LG화학도 각각 2조3751억원, 2조2880억원 증가했다. 올 들어 국제 원자재 가격이 치솟자 원재료를 넉넉하게 확보하려는 자금 조달로 분석된다. 여기에 금리가 치솟자 선제적으로 유동성을 확보하려는 예비적 자금 수요가 늘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익환/이소현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