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ESG] 이슈 브리핑
실증사업 진행하고 있는 뉴스케일파워.사진 제공=뉴스케일 파워
실증사업 진행하고 있는 뉴스케일파워.사진 제공=뉴스케일 파워
세계에너지위원회(WEC)는 매년 세계 각국의 에너지 공급 능력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에너지 삼중고 지표(Energy Trilemma Index)’를 발표하고 있다. 평가 기준은 에너지 안보, 에너지 형평성 그리고 환경의 지속가능성 3가지다. 한국은 2021년 조사 대상 101개 국가 중 종합순위 32위를 기록했다. 2015년 조사에서는 130개 국가 중 54위였다. 우리나라 경제 규모나 능력에 비하면 매우 저조한 성적이다.

아시아 국가들은 대체로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데다 에너지 소비는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에너지 안보가 취약할 수밖에 없다. 세계정세의 영향으로 우리나라 역시 에너지 안보 지수가 낮아졌지만, 에너지 형평성과 환경 지속가능성은 다소 개선됐다.

에너지 형평성이 개선되었다는 의미는 에너지 구입 비용이 저렴해지거나 구입하기가 전보다 용이해졌다는 것을 뜻한다. 환경 지속가능성 개선은 정부의 2050년 탄소중립 달성 목표 공표와 지속적 신재생에너지 공급 비중 확대 노력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재생에너지 간헐성 보완하는 안전성

문제는 앞으로다. 새 정부가 구상하는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실무안을 들여다보면, 지난해 10월 발표한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 상향안’에서 제시한 전환 부문 온실가스 배출 목표는 유지하되 전원별 발전량 비중을 조정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NDC 상향안과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비교해보면 원전은 23.9%에서 32.8%로 늘리고, 신재생은 30.2%에서 20.9%로 줄이되 석탄(21.2%)과 LNG(20.9%)는 동일한 수준으로 유지할 계획이다. 신재생 발전 비중을 30% 이상으로 늘리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생각된다. 신재생 전원의 비중을 늘리기 위해서는 신재생 발전의 간헐성에 대비하기 위한 예비 발전설비 확보와 전력 계통 보완 및 확대가 뒤따라야 하는 점 역시 큰 과제다.

‘2050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온실가스 배출을 억제해야 하며, 에너지 형평성과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저렴하고 안정적인 공급을 보장해야 한다. 이 3가지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에너지원은 사실상 없다고 볼 수 있다.

최근까지는 신재생에너지의 비중을 최대한 늘리고, 석탄 대신 LNG가스를 사용하는 것이 최선의 대안으로 인식되어왔다. 그러나 러·우전쟁에 따른 유럽 국가들의 제재에 반발해 러시아가 LNG 공급 중단을 선언하자 EU 대부분의 국가가 사상 초유의 고유가와 전력난을 겪고 있으며 기존의 석탄발전소를 재가동하기에 이르렀다.

이 시점에서 전 세계가 맞닥뜨린 탈탄소 발전 과제 해결을 위한 가장 유력한 수단으로 ‘소형모듈형 원자로(SMR)’가 급부상하고 있다. 러시아와 중국을 제외하면 미국이 가장 적극적이고 추진 속도도 빠르다. 바이든 정부는 탄소중립 달성 및 청정에너지 경제 전환을 위한 혁신기술 중 하나로 SMR을 선정하고 관련 지원 정책을 시행 중이다.

뉴스케일파워는 2020년 9월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로부터 77MWe(메가와트일렉트릭)급 SMR인 ‘VOYGR’에 대한 표준설계 허가를 받았으며, 아이다호국립연구소(INL) 부지에 시범 플랜트를 건설해 2029년 송전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한국 기업도 뉴스케일파워와 협력 중이다. 두산에너빌리티는 뉴스케일파워와 사업 협력 계약을 체결했고, 불가리아·캐나다·체코 외에도 다섯 국가가 뉴스케일파워의 원자로 도입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미국 외에도 한국을 포함한 캐나다, 프랑스가 설계인가를 받았거나 신청을 준비 중이다. 일본은 고온시험연구로(HTTR)를 운전하고 있으며, 아르헨티나는 2014년 30MWe급 SMR을 착공했으나 몇 번의 공사 중단을 겪은 후 2021년 11월 건설을 재개했다. 러시아는 35 MWe급 가압경수로형(PWR) 원자로 KLT-40S를 운전하고 있으며, 제4세대 납 냉각 고속로 실증로를 건설 중이다. 중국은 210MWe급 고온가스로, HTR-PM 실증로 건설을 마치고 2021년 11월 송전을 개시했을 뿐 아니라 170MWe급 PWR, ACP-100 실증로까지 건설하고 있다.

다양한 SMR 모델의 공통적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피동형 안전 계통을 채택하고 안전성이 강화된 핵연료를 사용함으로써 대형 원전 대비 안전성이 대폭 향상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수요지 인근 분산형 전력 제공이 가능하다. 두 번째는 전력 계통의 요구에 따라 발전량 조절이 가능한 부하추종 능력이다. 즉 신재생에너지 발전과 유연한 연계가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탄소배출 없이 수소 생산이나 해수 담수화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앞으로는 탈탄소 교통수단이 대세를 이룰 것이고, 가뭄으로 인한 물 부족이 심화될 것으로 예상되기에 이러한 점은 큰 유인책으로 작용한다. 게다가 제4세대 원자로 SMR의 경우에는 핵폐기물을 획기적으로 줄여 환경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효과가 있으며, 핵 비확산 및 물리적 방호에도 크게 기여하게 된다.

그 밖에도 SMR의 역할이 기대되는 중요한 분야 중 하나는 CF100(무탄소전원 100%), 즉 기업에 필요한 전력을 탄소 발생 없이 생산한 전력으로 구매 또는 자가 생산으로 조달하겠다는 자발적 캠페인을 위한 전력공급이다.

기술력·실효성 검증할 국내 실증로 필요

CF100과 RE100은 탄소감축이라는 목적은 같지만, RE100은 재생에너지만을 인정하고 CF100은 원전까지 포함하는 점이 다르다. CF100은 글로벌 IT 그룹 구글과 유엔 에너지(UN Energy), 유엔 산하 지속가능에너지 기구(SE4ALL) 등이 함께 만든 캠페인으로,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재생에너지 선도 기업이 파트너사로 함께하고 있다.

올 들어 러시아가 촉발한 에너지 공급망 균열이 에너지 가격 폭등과 고물가 시대를 열었다. 위험은 관리할 수 있지만, 에너지자원은 인위적으로 만들어낼 수 없다.

다행히 한국원자력연구소는 이미 10년 전에 SMART 표준설계인가(SDA)를 획득했고, 한국수력원자력이 추진 중인 혁신형 SMR(iSMR) 사업은 지난 6월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했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대여섯 나라만 갖고 있는 대형 원전건설 및 수출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개발 또는 건설 중인 SMR 모델이 70개가 넘는 가운데 우리나라가 SMR 시장에서도 두각을 나타낼지 여부는 국민 수용성에 달려 있다. 한국형 SMR이 국제적으로 주목받기 위해서는 적어도 기술력과 실효성을 증명해 보일 실증로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장중구 한국전력국제원자력대학원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