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노폴리틱스 시대' 美·中 기술경쟁 언제까지? [여기는 논설실]
미국과 중국의 대결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통상과 산업, 기술과 기업 등 경제 이슈를 넘어 안보 쪽으로 대립의 전선이 넓어진 지도 오래됐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어 최근에는 대만해협에서의 긴장 고조로 갈등의 골도 깊어지고 있다. 이로 인해 흔들려버린 글로벌 공급망은 전 세계 산업 지형을 완전히 바꾸면서 인플레이션 폭풍을 세계 경제에 던졌다. 가스 석유 등 에너지에 이어 곡물 등 식량 자원까지 무기화된 지도 한참이다. 이 모든 변화의 기저에 미·중의 심각한 갈등이 자리 잡고 있다.

산업계에서는 반도체 동맹이 재편되고 있는 와중에 희토류 등이 필수인 배터리 등으로 미·중 대립은 복잡해지고 있다. 한국은 좌표설정이 어려워졌고, 운신의 폭에도 여유가 줄었다. 한국은 북한핵문제라는 한층 심각한 안보 문제까지 겹쳐 있다. 인플레이션과 자산시장 급변동의 근본 요인이기도 하다.

◆자국 정부에 쓴 소리 美 전문가, 옹호 일변도 中 전문가

이 문제를 놓고 한국 미국 중국의 입장 변화 여부를 재볼 수 있는 국제 토론회가 지난 주 열렸다. 대형 국제행사로 자리 잡아온 제주포럼의 여러 세션 가운데 하나였다. 국제적으로 저명한 전문가들도 다수 참석하는 제주포럼은 올해 17번째다. 중문단지 내 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사흘 간 연속된 여러 국제 세미나 토론회 세션 가운데 하나인 ‘테크노폴리틱스의 시대, 미-중 기술 경쟁과 한국의 선택’ 세션에 필자도 3국 공동 토론자로 참석했다. 제주특별자치도·외교부와 더불어 제주포럼의 공동 주최기관인 동아시아재단이 마련한 세션으로, 사회는 류상영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가 맡았다. ‘평화 공존 번영’의 표어답게 행사 명칭은 부드러웠으나, 오간 토론에는 날선 내용이 적지 않았다. 2021년도 제주포럼 때 이 세션은 ‘미-중 공급망 경쟁과 동아시아의 선택 –기회와 도전’이란 주제를 놓고 비슷한 형식의 토론을 했었다. 미·중 대결의 끝은 어디이며, 어떤 식일까.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참가한 기자의 눈에는 공세적인 미국보다 수세적인 중국 입장이 더 강경하고 단호해 보이는 게 인상적이었다. 체제의 특성인 듯, 중국의 관변 연구단체는 중국 정부의 입장을 매우 정확하고 분명하게, 확신적으로 전했다. 반면 미국의 싱크탱크는 나이브하고 자유스러운 게 명백하게 보였다. 이것도 미국 스타일일 것이다. 양국의 근본적 차이이기도 할 것이다.

한·미·중 3국의 핵심 국익과 기술 경쟁 전략에 대한 기조 발언을 돌아보면 입장차는 명확했다. ‘밸류 체인’ 혹은 ‘글로벌 공급망’의 갈등에 대한 미·중의 스탠스는 여전했고, 그런 만큼 대결의 행보와 패권적 전략도 당분간 지속될 수밖에 없어 보였다. 미국 측 참석자인 존 베이트먼 카네기국제평화재단 선임연구원이 “(미국에서는 갈등의 전개 양상이) 어떤 방향으로 흐르는지 알 수 없고, 명확한 전략도 없다”고 바이든 행정부를 향해 냉정하게 쓴 소리를 해대는 게 인상적이었다. 디커플링의 시작도 미국이 했고, 공세적인 것도 미국이지만, 미국 민주주의 특성으로 인한 현상이라는 부연이 있었다.

반면 중국 측의 류양성 타이허 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지정학적으로가 아니라 비즈니스 시각에서 보고 있는데, 미국은 (비즈니스를 위한) 전략이 없다”고 몰아세웠다. 그는 또 “미국이 애리조나, 텍사스에서 반도체 공장을 짓겠다는데, 지금 엔지지어도 없는 지역이어서 비용이 크고, (그곳에서 만든) 제품을 아시아에 보낸다면 운송에만 6개월이 걸리는 데, 미국의 (신설) 반도체 사업이 효율적인가”라며 비판하기도 했다. 연세대에서 강의도 맡고 있는 안준성 미국 변호사는 미국이 거칠게 추진해온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의 문제점과 요소수 파동에서 나타난 중국의 일방적 행태에 대한 진중한 문제 제기가 있었다.

◆ 좌장 류상영 교수 '4가지 소 주제', 정부 관심 가져야

좌장인 류 교수가 토론 주제로 사전 제기한 4가지 소 주제 자체도 사실 주목할 만 것이었다. △미·중의 디커플링 전략과 정책에 대한 양국 내부의 이견과 논쟁은 없는가? 모든 정책에는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있기 마련인데, 3국의 내부에 어떤 다양한 목소리가 있는가? 더구나 정부와 기업의 목소리와 이익은 다를 수 밖에 없지 않나 △정치가 시장과 기술을 압도하는 현재의 상황이 과연 바람직한가? 또 얼마나 지속가능할까? 이 같은 상황이 세계 경제와 기술혁신을 위하여 과연 어떻게 작용할 것인가? 이런 경쟁에서 누가 승자이고 누가 패자가 될까? △한국에는 어떤 전략이 바람직하고, 어떤 옵션이 가능한가? 한국의 정부 차원 이익과 각 기업 차원의 이익은 어느 선으로 수렴될 것인가? △현재의 첨예한 경쟁 속에서도 회복탄력적인 공급망을 위하여 미-중이 협력해야 할 부분은 상당히 많다. 어떤 협력이 관련국과 세계 경제를 위하여 필요하며, 각국의 입장은 무엇인가? 등 4 가지다. 이에 대한 토론이 이어졌다. 사실 이런 각론 하나하나도 매우 중요하다. 아울러 이에 대한 답은 정부 당국자가 외교 정책으로, 통상·산업 정책으로 실제 적용할 해법으로 모색해야 할 것이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 '인플레이션·자산 가격 급락' 2중고 야기

필자가 이 토론회에서 강조한 것은 안보 쪽으로 전선이 넓어진 미·중의 경제 대립이 단순히 치킨 게임이 아니라 일종의 메가트렌드가 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였다. 세계는 개방, 자유 무역, 상호 투자 확대 등 WTO체제로 과거 어느 때보다 부와 번영을 누려왔는데, 비교우위에 따른 글로벌 밸류 체인이 무너지면서 나타나는 치명적 부작용을 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현실적으로 가장 큰 문제가 인플레이션과 자산가격의 하락이다. 일반 대중들, 소비자에게 이 두 난제는 심각한 위협이 됐다. 공급망 이상으로 인플레이션이 생기자 미국을 필두로 금리를 올리고 있고, 한국은 그 뒤를 허둥지둥 따라가며 금리를 올리고 있다. 그래도 환율 급등, 주가 급락, 주택 등 자산가치의 과도한 조정 등이 현실적 문제로 부각되는 만큼 밸류 체인, 공급망을 가능한 한 복구하되 그게 어렵다면 현 수준에서 더 악화되지 않도록 하는 노력이 중요하다는 관점이었다. 한국은 더구나 북한핵문제라는 안보이슈까지 안고 있어 중국 전문가가 주장하는 것처럼 비즈니스 문제로 볼 수가 없는 어려운 형편이라는 사실도 강조했다.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테크노폴리틱스 시대' 美·中 기술경쟁 언제까지? [여기는 논설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