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전기차 배터리 소재를 생산하는 엘앤에프의 미국 공장 건설을 불허했다. 한국 정부가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대응하는 상황에서 내려진 결정이어서 주목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14일 서울 남대문로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산업기술보호위원회를 열고 이같이 결정했다. 산업부는 2차전지 관련 소재·공정·생산기술이 배터리산업 경쟁력의 근간이 되는 최첨단 기술이며 해외로 유출될 경우 국내 산업과 국가 안보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기술 이전에 대한 구체적인 사유가 없고 기술 보호와 유출 방지를 위한 보안대책이 부족하다는 점도 지적했다.

산업기술보호위는 반도체 설계·공정·소자 기술, 리튬 2차전지 및 소재 관련 설계·공정·제조·평가 기술 등 73개의 국가핵심기술에 대한 수출 승인과 산업기술 보호 정책 등을 심의·의결하는 기구다. 국가핵심기술을 수출(매각·이전)하거나 인수합병(M&A)하려는 경우 위원회의 의결 절차를 거쳐 산업부 장관의 허가를 받도록 했다. 심의 기준은 국가안보(국방·치안, 국가경제·산업, 기술분야, 기술보호대책 등)와 국민경제(GDP·수출·고용 및 지역경제 영향, 국내투자 가능성 등) 파급 효과다.

엘앤에프는 니켈 비중이 높은 하이니켈NCM(니켈·코발트·망간) 소재를 제조하는 회사로, 전기차와 에너지저장시스템(ESS) 등 고성능 제품을 만드는 맞춤형 소재를 생산하고 있다. 엘앤에프는 세계 최고 수준의 NCM 개발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한국 정부가 엘앤에프의 미국 진출을 불허해 IRA에 간접적으로 대응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IRA에는 전기차 보조금을 받기 위해 북미에서 최종 조립되고 일정 수준 이상 미국산 부품과 광물을 사용한 배터리를 장착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엘앤에프가 미국에 진출하지 못할 경우 이곳의 소재를 사용하는 테슬라 등 미국 기업 역시 전기차 보조금을 받기 어려워질 수 있다. 다만 엘앤에프가 추후 문제가 된 부분을 보완해 다시 승인을 신청하면 산업기술보호위가 재심사 후 승인을 내릴 수도 있다.

정부는 이와 함께 산업기술보호법을 개정해 산업경쟁력과 공급망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김소현/이지훈 기자 alp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