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서 외면받고도 매출 3억 반전…품절대란 벌어진 토마토 [박종관의 유통관통]
‘왜 대형마트에선 설익고, 밍밍한 토마토를 팔까.’

강원도 화천에서 ‘안스퓨어팜’을 운영하는 안수민 사장(63·사진)의 고민은 여기서 시작됐다. 대형마트 등 오프라인 채널에서 판매하는 토마토는 대부분 덜 익은 상태에서 수확한다. 완전히 익은(완숙) 토마토는 대개 산지에서 출발해 소비자에게 도착하는 동안 물러지기 때문이다.

외면받은 ‘마틸다 토마토’

안스퓨어팜은 신선식품 분야에서 막강한 경쟁력을 자랑하는 마켓컬리의 히트 상품 ‘마틸다 토마토’를 생산한다. 12일 안스퓨어팜에 따르면 이곳의 토마토 생산량은 컬리로의 공급을 본격화한 2016년 8만㎏에서 지난해 11만㎏으로 37.5% 늘어났다.

‘기존 방식으론 가장 맛있는 토마토를 팔 수 없다’고 생각한 안 사장이 완숙 토마토를 유통업체에 공급하기 시작한 건 2013년이었다. 유통기한이 짧아지더라도 가지에 끝까지 매달려 맛과 향이 최고로 올라온 토마토만 수확했다.

종전까지 한국에서 볼 수 없었던 캄파리 품종도 유럽에서 들여왔다. 캄파리 토마토는 방울토마토보다는 크고, 일반 토마토보다는 작다. 과육이 탄탄하고 맛이 진한 게 특징이다. 안 사장은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 ‘레옹’의 주인공 이름을 따 마틸다 토마토라는 브랜드명도 붙였다.
마트서 외면받고도 매출 3억 반전…품절대란 벌어진 토마토 [박종관의 유통관통]
마틸다 토마토는 생산 초기 시장에서 외면받았다. 우선 대형마트 바이어들부터 완숙 토마토를 원하지 않았다. “가장 맛있는 상태의 완숙 토마토를 들고 가면 이것보다 덜 익은 토마토를 가져오라고 퇴짜 놓는 유통업체가 태반이었다”는 게 안 사장의 설명이다.

가까스로 매대에 올려도 이번엔 소비자들이 낯설어했다. 일반 토마토보다 두 배 이상 비싼 가격도 문제였다. 안스퓨어팜이 있는 화천의 한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토마토를 나눠주는 등 직접판매에 나서면서 입소문이 나기는 했다. 하지만 수확량에 비해 수요가 턱없이 부족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품절 토마토’로 인기몰이

완숙 토마토를 포기할까 고민하던 안 사장에게 손을 내민 건 “화천에 끝내주는 토마토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2015년 찾아온 마켓컬리(당시 더파머스)의 한 상품기획자(MD)였다.

2015년만 해도 콜드체인 시스템을 활용한 컬리의 새벽배송은 낯선 개념이었다. 그런데도 안 사장은 컬리가 자신의 철학과 딱 맞는 업체라고 확신했다. 그는 “당시만 해도 컬리는 이름 없는 작은 회사였지만, 가장 맛있는 상태에서 수확한 토마토를 소비자에게 전달할 수 있는 유일한 판로였다”고 회상했다.

컬리의 새벽배송에 올라탄 마틸다 토마토는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기 시작했다. 덜 익은 토마토에 익숙했던 소비자들은 완전히 익은 토마토가 자기 집 문 앞으로 배달된다는 사실에 열광했다. 안스퓨어팜은 지난해 마틸다 토마토를 팔아 컬리에서만 3억50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마틸다 토마토는 컬리 마니아들 사이에 ‘품절 토마토’로도 불린다. 새벽에 수확한 완숙 토마토를 다음 날 아침 소비자에게 전달하다 보니, 판매할 수 있는 수량이 넉넉지 않다는 한계가 있다. 주문 가능한 시간보다 '품절'이라고 공지된 시간이 더 많아 붙은 별명이다.

안 사장은 “새벽배송이라는 시스템이 등장하지 않았다면, 완숙 토마토의 대중화는 어려웠을 것”이라며 “물류·유통혁신이 과거엔 불가능했던 초신선식품의 공급을 가능케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종관 기자 p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