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주항공 제공
사진=제주항공 제공
"한국 재벌 대부분은 한 번씩 항공사 인수를 검토했을 겁니다. 항공 기단의 웅장함과 기장·승무원의 밝은 이미지를 좇는 기업들이 많습니다."

주요 항공사의 임원들은 항공산업을 '독이 든 성배'로 평가한다. 항공기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항공사들은 상당액의 외화차입금을 조달한다. 금리와 환율이 치솟는 요즘 같은 때는 재무여력이 탄탄하지 않은 곳들은 '유동성 위기'를 겪는다. "항공사는 삼성 SK 현대차 LG 같이 재무구조가 단단한 기업들이 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최근 유동성 위기를 겪는 제주항공은 32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이 회사는 2020년부터 이번까지 7000억원에 이르는 유상증자를 추진하면서 모그룹인 애경그룹과 일반주주의 살림살이를 갉아 먹어 빈축을 사고 있다.

29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제주항공은 오는 11월 32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진행한다. 2020년 7월 1584억원, 지난해 10월 2066억원의 유상증자를 단행한 이 회사는 이번 11월 유상증자까지 총 6830억원을 주주로부터 수혈하게 된다.

재무구조가 훼손된 제주항공은 운영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세 차례 유상증자를 진행했다. 저비용항공사(LCC) 경쟁이 격화된 데다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으면서 이 회사는 2019~2021년 누적 영업손실이 6858억원에 달했다. 올 상반기 말 부채비율은 863.51%를 기록했다. 하지만 1년 내 갚아야 하는 유동부채보다 유동자산을 고려하면 부족한 유동성 규모가 2472억원에 달했다. 32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단행해야 만기도래하는 차입금을 상환할 수 있다.

제주항공의 부실은 모그룹의 애경그룹으로 번져가고 있다. 이 회사 지분 51.06%를 보유한 애경그룹 지주사 AK홀딩스는 제주항공 자금지원을 이어가는 과정에서 살림이 나빠지고 있다.
AK홀딩스가 이번 유상증자에 참여할 경우 1307억원을 출자하게 된다. 2020년과 지난해에도 제주항공에 각각 688억원, 884억원을 출자한 AK홀딩스는 이번에도 지원에 나설 경우 총 2879억원의 자금을 쏟게 된다.

AK홀딩스의 지난 6월 말 별도기준 현금성자산(기타유동성 자산 등)은 7억7900만원이다. AK홀딩스가 유상증자 추진하려면 결국 보유 자회사 주식을 팔거나 차입금을 조달할 수밖에 없다. AK홀딩스는 제주항공(지분율 51.06%) 애경케미칼(62.85%) 애경산업(45.42%) AK S&D(76.68%) 등 자회사 지분을 보유 중이다. 제주항공 주식을 기초자산으로 교환사채(EB)를 발행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EB는 투자자들이 일정 기간이 지나면 특정 회사 주식으로 교환할 수 있는 채권이다. 교환을 원하지 않으면 채권 금리를 받고 만기에 상환할 수 있다.

제주항공 유상증자가 이어지는 데다 주가도 출렁이면서 AK홀딩스와 일반주주들 살림살이도 나빠지고 있다. 제주항공 주가는 지난해 6월 27일 장중 2만7000원 선까지 치솟았지만, 현재는 1만6000원 선을 오가고 있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