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업계에서 라면은 제조원가 부담이 커지더라도 가격을 올리기 가장 어려운 품목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서민 음식’이란 상징성 때문에 가격을 올리면 받게 되는 정치·사회적 압력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농심, 오뚜기 등 라면 업체들은 지난해 8월 각각 4년, 13년 만에 가격을 인상한 바 있다. 이후 올 들어선 글로벌 인플레이션 가속화로 수익성이 급격히 악화하는데도 추가 인상은 꿈도 꾸지 못했다.

급기야 농심은 지난 2분기 국내 법인이 24년 만에 영업적자를 낸 2분기 ‘성적표’를 16일 공개했다. 원재료로 쓰이는 곡물 가격, 유류비, 포장재 비용 등이 급등한 영향이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하반기 추가 가격 인상이 없으면 뚜렷한 실적개선은 어려울 것이란 분석을 내놨다.
'인플레 덫' 빠진 농심, 24년만에 국내 적자
해외법인이 버텼지만…
농심은 2분기에 매출 7562억원, 영업이익 43억원을 각각 거뒀다고 이날 발표했다.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6.7%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75.5% 급감했다. 증권가에서는 실적발표 전 농심의 2분기 영업이익이 118억원일 것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실제론 컨센서스(증권가 추정치 평균)의 절반 이하에 머문 ‘어닝쇼크’였다.

국내 법인의 수익성이 떨어진 게 큰 영향을 줬다. 농심은 별도 기준(해외법인 실적 제외)으로 30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농심 국내법인이 분기 적자를 낸 것은 1998년 2분기 이후 24년 만이다.

그나마 ‘K푸드 열풍’에 힘입어 해외법인에서 73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린 게 연결 기준으로 영업흑자를 내는 데 도움이 됐다. 농심은 “국제 원자재 시세 상승, 높은 환율로 인해 원재료 구매 단가가 높아졌고, 물류비 등 제반 경영비용이 큰 폭으로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편중된 사업구조에 타격
매출의 78.9%를 라면류가 차지하는 ‘몰빵형 사업 구조’도 어닝쇼크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인도네시아의 팜유 수출 중단 조치(4월), 인도의 밀 수출 중단 조치(5월) 등으로 밀가루, 팜유 등 라면 원료 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한 게 경쟁사보다 더 큰 타격을 입혔다는 것이다.

‘진라면’ 외에 유지, 소스류 등의 비중이 높은 오뚜기는 상반기에 비(非)라면 제품 가격을 기업 간 거래(B2B) 시장에서 인상했다. 이를 통해 ‘주력’인 라면에서의 수익성 악화를 어느 정도 상쇄했다.

오뚜기의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보다 24.5% 늘었다. ‘불닭볶음면’의 해외 인기에 힘입어 수출 부문 매출(올 상반기 3161억원)이 내수(1319억원)의 2.4배에 달하는 삼양식품은 수출 호조에 힘입어 2분기 영업이익이 1년 전에 비해 1.9배 불어났다.

농심이 지난 8월 이미 한 차례 가격을 올린 바람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를 가격에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박은정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가격 인상 이전에 비축했던 재고가 소진되면서 2분기부터 원가 부담이 본격화했다”고 말했다.
“하반기가 더 두렵다”
증권업계에서는 농심이 하반기 수익성 개선 작업에 어려움을 겪을 공산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국제 곡물 가격이 정점에 달했던 3~6월 구입한 원재료가 3분기에 국내에 들어올 예정이다.

정부가 물가 관리를 국정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는 만큼 라면 가격을 추가로 올리기도 조심스러운 처지다. 라면은 스낵과자, 빵 등과 함께 소비자 물가지수 산정에 반영되는 대표적인 서민 음식이다. 정부 정책에 협조해야 하는 부분이 있어 국내 판매가격 인상에 부담이 된다는 게 농심의 속내다. 농심은 일단 수출제품 가격을 올리고 제조 원가 절감에 힘을 쏟겠다는 방침이다. 심은주 하나증권 연구원은 “라면 가격 인상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3분기와 4분기 영업이익은 각각 전년 동기 대비 13%, 15%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경제 기자 hanky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