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 중 기업 이의제기 절차 신설…의무고발기한 명시
지배력 남용·담합 등 시장 반칙행위는 엄단…중기 기술 탈취 과징금 인상
'수장공백'에 부위원장이 새정부 출범 100일 하루 앞두고 대통령 업무보고
공정위, 처벌보다 분쟁조정·피해구제 주력…기업 방어권 강화
공정거래위원회가 기업 처벌보다 사건 관련 소비자나 기업의 피해 구제와 자율적 분쟁 해결에 주력하기로 했다.

조사를 받는 기업에는 구체적인 조사 범위를 명확히 고지하고 이의제기 권한을 주는 등 방어권을 보장한다.

윤수현 공정위 부위원장은 1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이런 내용을 담은 '공정거래법 집행 혁신 방안' 등을 윤석열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윤 대통령 취임 후 첫 공정위 업무보고다.

◇ 처벌보다 피해구제…이의제기 반영·의무고발기한 명시
공정위는 조사·사건 처리의 예측 가능성과 투명성을 높이고 법 집행 효율화로 신속하고 실효성 있는 피해 구제를 추진한다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를 위해 사건을 처리할 때는 처벌보다 빠른 피해 구제에 초점을 두고, 자율준수프로그램(CP) 제도, 분쟁조정 등 민간의 자율적인 분쟁 해결도 활성화하겠다고 밝혔다.

실시간 사건현황판 설치, 장기사건 특별점검, 대형사건 전담팀 구성 등을 통해 사건 처리 기간을 관리하고 단순한 사건은 지방자치단체에 이관한다.

송상민 공정위 경쟁정책국장은 업무보고에 앞서 진행한 브리핑에서 "행정제재에만 의존하는 법 집행 시스템으로는 신속한 사건 처리도, 효과적인 피해 구제도 쉽지 않다"며 "사적 분쟁 성격의 사안에서 조사 대상 기업이 자율적으로 피해를 구제할 경우 과징금 감면을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기업의 절차적 권리도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게 강화한다.

조사를 시작할 때는 피조사 기업에 구체적인 조사 대상과 범위를 명확하게 고지하고, 조사과정에서 기업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절차도 신설할 계획이다.

공정위가 특정한 자료 제출을 요구했을 때 기업이 조사 범위를 벗어난다고 이의를 제기하면, 검토를 거쳐 증거자료로 채택하지 않는 방식 등이 거론된다.

법원이 발부한 압수수색 영장에 기초해 자료를 압수하는 검찰과 달리 공정위는 지나치게 광범위한 자료를 요구한다고 기업들은 불평해왔다.

관계기관 간 업무협약(MOU)을 통해 중소벤처기업부(중기부) 장관, 조달청장 등이 공정위에 의무고발을 요청할 수 있는 기한을 제한하고 절차를 투명화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행정제재 후 상당 기간이 지나고 검찰 고발이 이뤄지면 기업 활동이 장기간 위축될 수 있어서다.

중기부는 작년 7월 미래에셋 그룹 계열사들을 검찰에 고발해달라고 공정위에 요청했는데, 공정위가 일감 몰아주기로 제재를 결정한 지 13개월여 후였다.

공정위는 스스로 검찰 고발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도 더 객관적으로 바꾸고, 고발하지 않기로 한 경우 의결서에 미고발 사유를 명시할 방침이다.

개정 고발지침은 내년 3월께부터 시행하는 것이 목표다.

공정위, 처벌보다 분쟁조정·피해구제 주력…기업 방어권 강화
◇ 반칙 행위는 엄단…공정위 넉 달째 사실상 수장 공백
공정위는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의 독과점 사업자가 시장 지배력을 남용하는 행위와 담합 등 시장 반칙행위는 엄정하게 제재하겠다고 밝혔다.

공정위는 삼성전자 등 국내 기업에 갑질을 한 혐의를 받는 미국 반도체 기업 브로드컴과 앱 개발자들에게 자사 앱마켓에만 독점 출시하도록 강요해 경쟁 앱마켓 영업을 방해한 혐의를 받는 구글에 대해 제재 절차를 진행 중이다.

공정거래법 개정으로 사익편취 규제 대상이 작년 5월 265개에서 올해 5월 835개로 늘어난 만큼 계열사 간 일감 몰아주기 등도 점검할 계획이다.

규제 대상에 새로 포함된 기업에 대해서는 법 위반 예방 교육을 우선 시행한다.

중소기업을 위한 공정한 거래 기반 조성과 관련해서는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납품단가를 원자잿값에 연동하도록 유도하고 납품단가 연동제 법제화 여부는 추후 검토한다.

또 중소기업 기술 탈취를 막기 위해 신고 포상금, 과징금을 올리는 한편 감시 조직·인력을 확충해 수시로 직권조사를 할 방침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액 확대 등 피해 구제 실효성을 높이는 방안도 마련한다.

가맹본부, 대형 유통업체, 대리점 본사의 우월적 지위 남용을 중점적으로 감시하고, 특히 최근 급속히 성장한 온라인 유통업체의 납품업체 경영 간섭 행위도 감시한다.

플랫폼과 관련해서는 민간 중심 자율기구를 통해 자율규제 방안을 구체화하되 과도한 수수료, 불투명한 검색 노출 기준, 짝퉁 유통, 리뷰 조작 문제 등을 해소하기 위한 논의를 배달앱·오픈마켓 등 업종별로 지원할 방침이다.

공정위는 정부 출범 100일(오는 17일)이 되도록 새 수장을 맞지 못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조성욱 위원장이 자리를 지키고 있으나 국무회의 참석, 대통령 업무보고 등 주요 업무는 차관급인 윤 부위원장이 대신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11일부터 취임 후 첫 부처 업무보고를 받기 시작했으나 위원장이 사실상 공석인 공정위는 다른 부처보다 늦게 업무보고를 하게 됐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