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경영에서 청정생산기술은 지속가능발전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기술이며, 발생원으로부터 오염을 줄이는 예방전략에 기반을 둔 기술이다. 다만 범용성을 갖기보다 특정 산업에만 적용되는 제한적인 경우가 많다. 따라서 해당 산업의 특성을 잘 알아야 기술 개발과 적용이 가능하다
[한경ESG] 환경경영 ABC ⑮
에쓰오일 직원이 울산 울주군 온산공장에서 대기 오염 정도를 측정하고 있다. 사진=에쓰오일 제공환경 기술은 환경문제를 처리하는 시점이나 방식에 따라 사후 처리 기술(end‐of‐pipe technology), 청정생산 기술, 환경 복원 및 재생 기술 등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오염원으로부터 배출되는 오염물질을 사후적으로 처리하는 사후 처리 기술은 초기 단계부터 환경문제 해결에 활용해온 전통적 환경 기술이다. 하지만 1970년대 이후 생산현장에서 오염부하(pollution load)가 크게 증가하면서 사후 처리만으로는 다양한 오염물질을 감당하기 어려워지고, 환경문제의 사전 예방적 해결이 강조되면서 오염물질 발생원을 원천적으로 제거하거나 억제하는 사전 처리(front‐of‐pipe) 방식의 청정생산 기술이 주목받고 있다. 환경 복원 및 재생 기술은 이미 오염된 토양 및 자연을 재생하기 위한 것으로 최근 관심이 확대되고 있다.
이 가운데 환경경영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청정생산 기술은 생태·경제 효율성을 증가시키고 인간과 환경에 미치는 환경 위험을 줄이기 위해 종합적이고 예방적인 환경전략을 생산공정과 제품, 서비스에 지속적으로 적용하는 데 필요한 기술이다. 청정생산 기술의 특징은 우선 경제적 부의 창출과 환경보전을 동시에 추구하는 지속 가능 발전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기술이며, 발생원에서 오염을 줄이는 통합적 예방 전략에 기반을 두고 있다. 또 생산공정과 제품 및 서비스의 개선을 포함하며 원료부터 폐기까지 전과정을 고려한 기술인 동시에 설계 단계부터 환경성을 고려하는 기술이다.
다만 청정생산 기술은 여러 업종에 두루 활용되는 범용성을 갖기보다 특정 산업에 적용되는 제한적인 경우가 많다. 따라서 해당 산업의 특성을 잘 알아야 기술개발과 적용이 가능하며, 해당 업종의 첨단기술로 분류되어 보안상 접근이 어려울 수도 있다. 대체로 새로운 기술 분야인 경우가 많아 학계나 연구소와의 협력이 매우 중요하다. 폭넓은 지식과 경험, 관련 데이터베이스 및 네트워크 구축 등도 뒷받침되어야 한다.
청정생산 기술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가장 대비되는 개념인 사후 처리 기술과 비교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사후 처리 기술은 배출구에서 발생하는 오염물질을 처리하는 기술을 말하며, 이미 발생한 오염물질이나 폐기물을 사후적으로 처리하거나 폐기하는 기술이다. 반면 청정생산 기술은 원천적으로 오염물질 발생을 제거하거나 억제하는 기술을 말하며, 원재료 및 에너지 사용의 감축이나 폐기물 발생을 줄이기 위해 근본적으로 제조공정에 변화를 주는 기술이다. 즉 청정생산 기술은 오염물질이나 폐기물의 발생을 미리 예상하고 이를 감축하는 접근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사전 예방을 통한 접근 방법이 더 바람직하지만, 그렇다고 사후 처리 기법이 불필요한 것은 결코 아니다. 사후 처리 기술의 여러 장점도 충분히 활용할 필요가 있다. 우선 법규 준수 관점에서 두 기술을 비교해보자. 사후 처리 기술은 생산공정에서 발생한 오염물질을 법적 기준에 위배되지 않는 선에서 배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는 생산공정을 바꾸지 않고도 실행 가능하며, 특정 환경문제에 매우 효율적이고 신뢰성 있게 대처할 수 있다. 그러나 처리시설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오염물질이 그대로 주변에 배출될 위험이 있다.
이에 비해 청정생산 기술은 환경문제에 대해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공한다. 다만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 현장에 적용하기까지 기간이 오래 걸리는 데다 제대로 검증되지 않을 경우 규제당국이 불신할 수도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규제당국이 가용한 최상의 기법, 즉 BAT(Best Available Techniques)를 기준으로 법규 수준을 결정하는 경우가 많아 청정기술의 조기 도입에 유리한 여건이 조성되고 있다.
관리 방법 측면에서 보면 사후 처리 기술은 주로 기술적 방법에 의존하며 전문가가 책임지고 환경문제를 관리한다. 반면 청정생산 기술은 단순히 기술적 측면만이 아니라 제품의 생산공정 관리 및 다양한 경영상의 지원이 필요하고, 환경담당 부서를 비롯한 여러 부문의 직원이 참여하는 복합적 접근 방법이 요구된다. 이처럼 사후 처리 기술은 관리 방법이 용이하고 주어진 환경 기준을 달성하는 데 효율적일 수 있다. 하지만 환경오염 물질은 하나의 환경 매체에서 다른 매체로 전이되어 오염물질을 처리한 후에도 토양이나 지하수에 남아 잠재적 오염을 초래할 우려가 있는 등 오염물질 발생을 원천적으로 저감할 필요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어 처리 효과 측면에서는 청정생산 기술 도입이 유리하다.
경제성 측면에서도 두 기술은 서로 다른 특성을 지닌다. 사후 처리 기술은 별도의 환경설비나 장치를 설치하는 것이라 생산공정과 관련 없이 추가적으로 오염물질 처리시설 및 운전비가 소요된다. 오염물질 배출량이 많아지거나 법적 기준이 엄격해질 경우 다시 설비투자를 해야 하므로 장기적으로 더 많은 비용이 소요될 수 있다. 반면 청정생산 기술은 사후 처리 기술에 비해 초기에는 비교적 많은 투자가 필요하지만, 원료비와 오염물질 처리 비용을 줄임으로써 생산원가를 낮추고 폐기물 발생을 원천적으로 줄여 장기적으로 환경보호에 이바지할 수 있다. 오염물질 발생에 대한 미래 책임비용(liability cost)을 줄일 수 있다. 청정생산 기술은 적용 기술의 특성에 따라 투자비용의 회수 기간이 수개월에서 수년까지 다양하겠지만, 환경 개선 효과가 상대적으로 크기 때문에 종합적으로 볼 때 오히려 높은 경제성을 시현할 수 있을 것이다.
[한경ESG] 스페셜 리포트1위 현대건설: 스코프 3 배출량 공개현대건설은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5년 대비 연간 2.1%를 지속적으로 감축하겠다는 공격적 목표를 세웠다. 2045년까지는 연간 4.2%로 감축량을 대폭 강화한다. 현대건설은 스코프 1(직접 배출)·2(전력 사용 등 간접 배출)뿐 아니라 스코프 3(공급망을 포함한 총외부배출)까지 공개하고, 매년 온실가스 절감량을 함께 공시하며 투명한 소통을 이어가고 있다. 현대건설의 탄소경영은 꾸준히 선두에서 달려왔다. 2012년 전 세계 건설사 최초로 에너지경영시스템 국제표준인증(ISO50001)을 획득한 것을 시작으로 현장별 온실가스 발생량 예측 및 발생량 상시 모니터링 체계를 구축하기도 했다. 기존 석탄화력 조직은 신재생에너지 부문으로 개편해 포트폴리오도 적극 전환했다. 지난해 12월에는 탄소중립 대응 태스크포스(TF)를 발족해 더욱 적극적인 탄소중립 이행을 약속했다.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기술개발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현대건설은 지난 6월 산업통상자원부의 수전해 기반 수소생산기지 구축 사업 공모에 최종 선정됐다. 사업을 위해 2.5MV 규모의 수소를 하루 1톤 이상 생산·저장·운송이 가능한 국내 최대 상업용 청정수소 생산기지를 2024년까지 전북 부안에 조성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주관 탄소포집 및 활용 기술(CCU) 국책 과제 주관 연구개발 기관으로도 선정돼 평택수소특화지구에서 현장 실증을 거친 후 연간 100만 톤급 상용화 공정 설계 수행을 통해 기술을 내재화할 전망이다. 2위 KCC: 사업장별 마스터플랜KCC는 온실가스 배출 개선 비결로 사업장의 연료 사용 데이터 취합, 사업장·부서별 에너지 및 온실가스 배출 목표 설정 및 관리 등 데이터 기반의 철저한 관리를 꼽았다. KCC는 제품 생산 및 공장 운영을 위해 전기, LNG, B-C유 등을 주요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며, 주요 온실가스 배출 원인은 공장 생산설비 및 유틸리티 설비 운영을 위한 화석연료와 전기다. KCC는 사업장별로 온실가스 감축 마스터플랜을 도입하고 연도별 목표를 수립해 달성하기까지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다. 주요 목표는 배출권 거래제 전략 수립 및 시스템 도입, 고효율·에너지 절감 제품 개발 등이 있다. KCC ESG팀 관계자는 “KCC는 생산효율 향상이 곧 에너지 소비 축소와 연결된다는 접근으로 온실가스 감축에 대응해왔다. 전 사업장의 LED 등을 교체하고, 펌프 및 유틸리티 설비에 인버터를 설치하는 등 에너지전환책을 10여 년 전부터 도입했다”며 “향후 보일러 등을 비롯한 공용시설의 무탄소 기술 활용, 탄소포집 기술 도입 등을 통해 2050 넷제로 달성에 적극 임할 것”이라고 말했다. 3위 LG이노텍: 2030년 100% 재생에너지전환LG이노텍은 2040 넷제로를 선언하고, 글로벌 기조보다 빠른 목표 달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30년까지 전 세계 사업장 에너지를 100% 재생에너지로 전환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LG이노텍이 배출하는 온실가스의 90%가 전력에서 나온다는 점을 고려하면 상당히 공격적인 목표다. ‘폐기물 매립 제로’ 인증을 통해 매립 폐기물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대응도 이어간다. 업무용 차량 역시 100% 무공해 차량으로 전환할 계획이다. 협력사까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확장하기 위해 온실가스, 환경, 안전보건 등 자체 체크리스트 평가와 현장 방문 컨설팅을 지원한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서는 환경영향성 평가(LCA)를 통해 제품 개발부터 구매, 품질, 제조 전 과정의 온실가스 배출량 데이터를 산정하고 관리한다. 이후 제3자 검증을 통해 신뢰성까지 확보한다. 4위 DB하이텍: 공정가스 배출 공격적 개선DB하이텍은 환경안전보건(ESH) 전담 조직을 별도로 마련하고 환경과 안전·소방, 보건에 대한 선도적 대응을 이어왔다. 반도체 세정에 사용되는 공정 가스의 배출량에 대한 공격적 개선이 눈에 띈다. DB하이텍은 이를 축소하기 위해 매년 온난화지수(GWP)가 낮은 가스로 전환하는 방식을 선택하거나, 공정 내에서 발생하는 폐가스 처리를 위해 온실가스 배출 저감장치의 효율성을 개선하거나, 공정 내 유해가스를 제거하는 플라스마 스크러버를 사용하는 등 전략을 마련해 실천했다. 에너지전환 차원에서는 사업장 내 친환경에너지 전환과 함께 에너지 절감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온실가스 저감 목표에 따라 DB하이텍의 직접 배출량과 온실가스 총배출량은 생산량 증가와 무관하게 감소하는 추세다. 조수빈 기자 subinn@hankyung.com
[한경ESG] 편집장 레터최근 ‘2050 탄소중립’을 공약하는 기업이 늘고 있습니다. 2040년 달성이라는 야심 찬 계획도 눈에 띕니다. 공약대로라면 미래는 낙관적입니다. 기후 위기도 충분히 극복할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기고, 기업도 응원하게 됩니다. 하지만 쏟아지는 탄소중립 공약의 실현 가능성을 생각하면 걱정이 앞섭니다. 기업의 눈앞에 놓인 과제가 그리 간단하지 않기 때문입니다.이번 호에 실은 ‘한국의 기후 리더’ 선정 결과는 이를 잘 확인시켜줍니다. 블룸버그와 함께 온실가스를 연간 3만 톤 이상 배출하는 상장기업을 조사했는데, 그 결과가 충격적입니다. 2018년부터 2020년까지 3년간 온실가스 배출 집약도와 총배출량을 동시에 개선한 기업은 33곳에 그쳤습니다. 기후변화 대응을 잘하고 있다고 인식되던 회사들이 대거 탈락했습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포스코 등 국내 주력 제조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는 기후 위기 시대를 맞은 한국 경제의 취약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결과입니다. 탄소중립의 길은 생각보다 험난할 수 있습니다. 기업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할 수도 있습니다.이번 조사는 최근 기업들이 촉각을 곤두세우는 ESG 정보 공시 표준화와 관련해서도 시사점을 줍니다. 많은 기업이 지속가능경영 보고서를 통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보고하지만, 여전히 본사와 국내 사업장을 포함한 개별 기준 집계에 머물고 있습니다. 통계 범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없거나 연도별 또는 기업 간 비교를 어렵게 구성한 곳도 많습니다. ‘한국의 기후 리더’는 글로벌 이니셔티브와 평가기관이 요구하는 연결 기준 배출량을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조사 기간이 3개월가량 걸렸습니다.국제회계기준(IFRS) 재단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 등이 주도하는 공시 표준화 작업은 ESG 경영과 ESG 투자의 전환점이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많은 나라의 규제당국과 투자자들이 표준 제정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재무 분야의 IFRS처럼 전 세계로 확산돼 글로벌 스탠더드로 자리 잡는 건 시간문제로 보입니다. ESG 의무 공시 시대가 열리면 기업들은 완전히 달라진 경쟁 환경을 맞게 됩니다. 국경을 넘어 기업 간 비교 평가가 손쉬워집니다. 타사와의 차이가 한눈에 드러날 수밖에 없습니다.공시 표준화 동향은 이번 호 커버 스토리에서 집중 분석했습니다. 특히 ISSB와 유럽재무보고자문그룹(EFRAG),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초안을 상세히 다룬 ‘공통 키워드는 TCFD…3대 공시기준 비교’ 기사의 일독을 권합니다.장승규 <한경ESG> 편집장 skjang@hankyung.com
[한경ESG] 이슈 브리핑세계에너지위원회(WEC)는 매년 세계 각국의 에너지 공급 능력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에너지 삼중고 지표(Energy Trilemma Index)’를 발표하고 있다. 평가 기준은 에너지 안보, 에너지 형평성 그리고 환경의 지속가능성 3가지다. 한국은 2021년 조사 대상 101개 국가 중 종합순위 32위를 기록했다. 2015년 조사에서는 130개 국가 중 54위였다. 우리나라 경제 규모나 능력에 비하면 매우 저조한 성적이다. 아시아 국가들은 대체로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데다 에너지 소비는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에너지 안보가 취약할 수밖에 없다. 세계정세의 영향으로 우리나라 역시 에너지 안보 지수가 낮아졌지만, 에너지 형평성과 환경 지속가능성은 다소 개선됐다.에너지 형평성이 개선되었다는 의미는 에너지 구입 비용이 저렴해지거나 구입하기가 전보다 용이해졌다는 것을 뜻한다. 환경 지속가능성 개선은 정부의 2050년 탄소중립 달성 목표 공표와 지속적 신재생에너지 공급 비중 확대 노력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재생에너지 간헐성 보완하는 안전성문제는 앞으로다. 새 정부가 구상하는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실무안을 들여다보면, 지난해 10월 발표한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 상향안’에서 제시한 전환 부문 온실가스 배출 목표는 유지하되 전원별 발전량 비중을 조정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NDC 상향안과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비교해보면 원전은 23.9%에서 32.8%로 늘리고, 신재생은 30.2%에서 20.9%로 줄이되 석탄(21.2%)과 LNG(20.9%)는 동일한 수준으로 유지할 계획이다. 신재생 발전 비중을 30% 이상으로 늘리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생각된다. 신재생 전원의 비중을 늘리기 위해서는 신재생 발전의 간헐성에 대비하기 위한 예비 발전설비 확보와 전력 계통 보완 및 확대가 뒤따라야 하는 점 역시 큰 과제다.‘2050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온실가스 배출을 억제해야 하며, 에너지 형평성과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저렴하고 안정적인 공급을 보장해야 한다. 이 3가지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에너지원은 사실상 없다고 볼 수 있다.최근까지는 신재생에너지의 비중을 최대한 늘리고, 석탄 대신 LNG가스를 사용하는 것이 최선의 대안으로 인식되어왔다. 그러나 러·우전쟁에 따른 유럽 국가들의 제재에 반발해 러시아가 LNG 공급 중단을 선언하자 EU 대부분의 국가가 사상 초유의 고유가와 전력난을 겪고 있으며 기존의 석탄발전소를 재가동하기에 이르렀다. 이 시점에서 전 세계가 맞닥뜨린 탈탄소 발전 과제 해결을 위한 가장 유력한 수단으로 ‘소형모듈형 원자로(SMR)’가 급부상하고 있다. 러시아와 중국을 제외하면 미국이 가장 적극적이고 추진 속도도 빠르다. 바이든 정부는 탄소중립 달성 및 청정에너지 경제 전환을 위한 혁신기술 중 하나로 SMR을 선정하고 관련 지원 정책을 시행 중이다.뉴스케일파워는 2020년 9월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로부터 77MWe(메가와트일렉트릭)급 SMR인 ‘VOYGR’에 대한 표준설계 허가를 받았으며, 아이다호국립연구소(INL) 부지에 시범 플랜트를 건설해 2029년 송전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한국 기업도 뉴스케일파워와 협력 중이다. 두산에너빌리티는 뉴스케일파워와 사업 협력 계약을 체결했고, 불가리아·캐나다·체코 외에도 다섯 국가가 뉴스케일파워의 원자로 도입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미국 외에도 한국을 포함한 캐나다, 프랑스가 설계인가를 받았거나 신청을 준비 중이다. 일본은 고온시험연구로(HTTR)를 운전하고 있으며, 아르헨티나는 2014년 30MWe급 SMR을 착공했으나 몇 번의 공사 중단을 겪은 후 2021년 11월 건설을 재개했다. 러시아는 35 MWe급 가압경수로형(PWR) 원자로 KLT-40S를 운전하고 있으며, 제4세대 납 냉각 고속로 실증로를 건설 중이다. 중국은 210MWe급 고온가스로, HTR-PM 실증로 건설을 마치고 2021년 11월 송전을 개시했을 뿐 아니라 170MWe급 PWR, ACP-100 실증로까지 건설하고 있다. 다양한 SMR 모델의 공통적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피동형 안전 계통을 채택하고 안전성이 강화된 핵연료를 사용함으로써 대형 원전 대비 안전성이 대폭 향상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수요지 인근 분산형 전력 제공이 가능하다. 두 번째는 전력 계통의 요구에 따라 발전량 조절이 가능한 부하추종 능력이다. 즉 신재생에너지 발전과 유연한 연계가 가능하다.마지막으로 탄소배출 없이 수소 생산이나 해수 담수화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앞으로는 탈탄소 교통수단이 대세를 이룰 것이고, 가뭄으로 인한 물 부족이 심화될 것으로 예상되기에 이러한 점은 큰 유인책으로 작용한다. 게다가 제4세대 원자로 SMR의 경우에는 핵폐기물을 획기적으로 줄여 환경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효과가 있으며, 핵 비확산 및 물리적 방호에도 크게 기여하게 된다. 그 밖에도 SMR의 역할이 기대되는 중요한 분야 중 하나는 CF100(무탄소전원 100%), 즉 기업에 필요한 전력을 탄소 발생 없이 생산한 전력으로 구매 또는 자가 생산으로 조달하겠다는 자발적 캠페인을 위한 전력공급이다. 기술력·실효성 검증할 국내 실증로 필요CF100과 RE100은 탄소감축이라는 목적은 같지만, RE100은 재생에너지만을 인정하고 CF100은 원전까지 포함하는 점이 다르다. CF100은 글로벌 IT 그룹 구글과 유엔 에너지(UN Energy), 유엔 산하 지속가능에너지 기구(SE4ALL) 등이 함께 만든 캠페인으로,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재생에너지 선도 기업이 파트너사로 함께하고 있다.올 들어 러시아가 촉발한 에너지 공급망 균열이 에너지 가격 폭등과 고물가 시대를 열었다. 위험은 관리할 수 있지만, 에너지자원은 인위적으로 만들어낼 수 없다.다행히 한국원자력연구소는 이미 10년 전에 SMART 표준설계인가(SDA)를 획득했고, 한국수력원자력이 추진 중인 혁신형 SMR(iSMR) 사업은 지난 6월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했다.우리나라는 세계에서 대여섯 나라만 갖고 있는 대형 원전건설 및 수출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개발 또는 건설 중인 SMR 모델이 70개가 넘는 가운데 우리나라가 SMR 시장에서도 두각을 나타낼지 여부는 국민 수용성에 달려 있다. 한국형 SMR이 국제적으로 주목받기 위해서는 적어도 기술력과 실효성을 증명해 보일 실증로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장중구 한국전력국제원자력대학원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