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돈을 남의 사업에 투자해 수익을 얻는가.”

미국과 한국의 금융당국이 밝힌 ‘증권성 판단 기준’의 공통점은 이렇게 요약된다. 암호화폐 규제를 주도하는 미국에선 “비트코인 외에는 모두 증권”이라는 증권거래위원회(SEC) 주장에 “모든 암호화폐는 상품”이라며 상품거래위원회(CFTC)가 맞서는 등 규제 기관 간 알력다툼도 벌어지고 있다.

증권으로 분류된 암호화폐는 자본시장법이 적용돼 강력한 규제를 받는 만큼 상장 폐지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업계와 투자자들도 예의주시하고 있다.
암호화폐는 '증권'인가…판단 기준 놓고 논란 여전
지난 4월 금융위원회는 뮤직카우의 저작권료 참여청구권을 증권으로 분류하면서 △이익을 얻거나 손실을 회피할 목적으로 △공동 사업에 금전 등을 투자한 경우 △타인이 수행한 사업의 결과에 따라 손익이 귀속될 것을 증권성 판단 기준으로 제시했다. 암호화폐 위믹스의 경우 위믹스 생태계에 따라 가격이 변동한다는 점을 들어 위믹스 발행사인 위메이드가 자본시장법을 위반하고 있다며 금융위에 민원이 접수되기도 했다.

금융위는 암호화폐를 증권형과 비증권형으로 나눠 증권형은 자본시장법, 비증권형은 앞으로 도입될 디지털자산기본법으로 규제한다는 방침이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외국의 사례를 보고 가상자산의 법적성격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증권성 판단 기준을 둘러싼 논쟁이 가장 뜨거운 곳은 미국이다. 미국 SEC와 뉴욕 남부연방지방검찰청은 지난달 21일 암호화폐거래소 코인베이스 상장팀 매니저로 일한 이샨 와히 등 3명을 암호화폐 내부자거래 혐의로 기소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증권법 위반 사항인 내부자거래 혐의를 적용하려면 암호화폐가 증권으로 분류돼야 한다는 게 포인트였다. SEC와 뉴욕 검찰은 문제가 된 25종의 암호화폐 가운데 앰프 등 9종을 증권으로 규정했다. 그러면서 증권으로 판단한 기준으로 1943년의 ‘하위테스트’를 들었다.

하위테스트는 미국의 하위컴퍼니가 임차한 땅에서 거둔 오렌지 재배 수익 청구권을 SEC가 증권으로 분류하면서 마련된 기준이다. 하위테스트는 △일정 수익을 기대한 투자자들이 △여러 사람이 출자한 기업에 △금전을 투자한 경우를 전제하면서 투자자 스스로의 노력이 아니라 제3자의 노력으로 투자 이익이 발생할 것 등을 기준으로 들었다. 문제는 이 하위테스트가 금융위의 기준과 사실상 같다는 점이다. 게리 겐슬러 SEC 위원장은 이 기준에 따라 “비트코인을 제외한 암호화폐는 모두 증권”이라는 입장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다른 규제기관과 업계, 미국 상원까지도 반대 의견을 내고 있다. 상품 규제를 맡고 있는 CFTC의 캐롤라인 팜 위원은 “SEC가 소송을 통해 유틸리티·거버넌스 토큰으로 해석될 수 있는 다수의 암호화폐를 증권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강압적 규제”라고 비판했다.

미국 상원에서 발의된 암호화폐 규제법안들도 CFTC의 손을 들어주는 모양새다. 미국 공화당 의원들은 암호화폐에 대한 관리감독권한을 CFTC에 부여하는 ‘디지털상품거래법’을 발의했다. 초당적으로 발의된 ‘책임있는 금융혁신법’에서도 CFTC가 암호화폐 규제권한을 갖도록 했다. 지난 6월 유럽연합(EU)에서 합의된 암호화폐규제법(MiCA)은 암호화폐를 실물자산에 연동된 증권형과 비트코인·이더리움 등의 비증권형으로 나눠 별도 규제를 적용한다.

국내 거래소업계 관계자는 “미국의 암호화폐 논쟁이 마무리되고, 이를 반영한 디지털자산기본법 제정안이 나오기까진 최소 연말까지 기다려야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박진우 기자 jw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