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가운데)이 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가운데)이 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기획재정부가 내년 예산안을 짜면서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고 있다. 내년 예산을 올해 추가경정예산(679조5000억원) 대비 30조원 이상 줄이고 본예산(607조7000억원) 대비 5%대 늘리기로 하면서다. 기재부 내에선 ‘이대로는 급증하는 국가채무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위기 의식이 퍼져 있다. 문재인 정부가 임기 중 연평균 8.7%에 달하는 공격적 재정 확장을 한 결과, 국가채무는 2017년 660조2000억원에서 올해 말엔 1068조8000억원으로 불어났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이 기간 36%에서 50%로 높아졌고 GDP 대비 재정적자(관리재정수지 기준) 비율은 2017년 1.0%에서 올해 5.1% 수준으로 악화됐다. 기재부 고위 관계자는 “내년 예산을 (늘리지 않고) 올해 본예산 수준으로 동결해도 내년에 재정적자가 나는 구조”라며 “재정적자를 줄이지는 못하더라도 증가 속도를 최대한 늦춰야 장기적으로 재정을 제대로 운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출 구조조정 총력
"이대로는 감당 못해" 초비상…문재인 정부 사업에 칼 빼든다
기재부는 이에 따라 내년 예산안 편성 마무리를 앞두고 전방위적인 지출 구조조정 작업에 들어갔다. 내년 예산 증가율을 본예산 대비 5%대로 맞추고 전 부처에 예산 구조조정을 촉구하고 나섰다. 전년 대비 5%대 예산 증액은 박근혜 정부 마지막 해에 짠 2017년 예산(3.7%)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연평균 8.7%에 달하던 문재인 정부 5년의 ‘확장재정’ 기조를 되돌리는 행보다.

기재부의 지침에 전 부처도 고강도 예산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통상 새 정부 출범 첫해엔 국정과제 이행을 위해 각 부처가 경쟁적으로 신사업 확대에 나서면서 예산이 대폭 늘어난다. 문재인 정부도 집권 후 처음 마련한 2018년 예산안에서 예산 증가율을 7%로 높였다. 박근혜 정부 때는 4%였다.

정부가 이번에 수술대에 올린 건 문재인 정부 시절 대폭 확대된 현금성 지원 사업들이다. 정부는 2020년 이후 코로나19 확산으로 크게 늘어난 각종 지원 사업을 대대적으로 정리하겠다고 최근 밝혔다. 올해 총 1205개에 달하는 민간 보조사업 가운데 1차적으로 61개를 폐지하고 191개를 감축하기로 했다.

2020년부터 2025년까지 국비 114조원을 투입하기로 했던 전 정부의 대규모 ‘한국판 뉴딜’ 사업과 230여 개 지방자치단체가 우후죽순 도입했던 지역화폐(6000억원)도 구조조정 선상에 올랐다. 모 부처 관계자는 “전체 예산을 늘리지 말고 전 정부 정책에 투입되던 예산을 줄여 새 정부 국정과제 중심으로 예산을 짜라는 게 기재부 요구”라며 “필요성이나 시급성이 떨어지는 정책 중심으로 구조조정하고 있다”고 전했다.

경제부처 고위 관료는 “예년에는 1차로 예산 요구안을 제출한 뒤 7~8월에 추가 요구를 하는 방식으로 신규 사업 관련 예산을 타오던 관행이 있었다”며 “기재부가 이번에는 추가 요구를 받지 않겠다고 못 박아서 고민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더 이상 부채 늘면 위험”
정부가 임기 첫해부터 자칫 경기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는 지출 구조조정에 나선 것은 급속도로 악화되는 재무상태를 이대로 방치할 수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9년 “국가채무 비율을 GDP 대비 40% 선에서 관리해야 한다”는 홍남기 당시 부총리의 보고를 들은 뒤 “우리나라만 40%가 마지노선인 근거가 무엇이냐”고 반문했다. 이후 문재인 정부는 공공 일자리 창출과 복지 확대 등을 위해 공격적인 확장 재정에 나섰다. 그 결과 국가채무는 5년 만에 400조원 증가했다.

기재부 내에선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263%에 이르다 보니 역대급 엔저에도 이자 부담 때문에 기준금리를 못 올리는 일본의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한번 늘어난 재정지출은 줄이기 어렵고 늘어난 빚 때문에 모든 정책이 무력화되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 7월 초 윤석열 대통령 주재로 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올해 5.1%인 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을 3% 이내로 낮추고 현재 50% 수준인 국가채무 비율을 2027년까지 50%대 중반으로 억제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선 내년에만 재정적자를 40조~50조원가량 줄여야 한다.

황정환/정의진/도병욱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