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드 인 아메리카, 바이 아메리칸(Made in America, Buy American).’

7일(현지시간) 미국 상원이 통과시킨 ‘인플레이션 감축법안(IRA)’에 대한 글로벌 자동차업계의 평가다. 3690억달러(약 481조원)에 달하는 ‘기후변화’ 지원 예산을 무기로 중국에 의존하고 있는 밸류체인을 미국 주도로 탈바꿈시키겠다는 의도다. 미국은 막대한 보조금을 지급해 2030년까지 미국 내 신차 판매 중 전기차 비중을 50%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현재는 중국이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이지만 미국의 계산대로 흘러갈 경우 중국 전기차산업이 자국 내로 고립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단기간 내 ‘脫중국’ 가능할까

문제는 현재 전기차 밸류체인의 중국 의존도가 쉽게 돌이킬 수 없는 수준까지 높아졌다는 점이다. 일본의 도요타뿐만 아니라 제너럴모터스(GM)와 포드 등 미국 업체가 속해 있는 자동차혁신연합(AAI)이 “법안이 급진적”이라며 반발하는 이유다. 리튬과 니켈, 코발트 등 광물을 채굴하는 광산은 미국 호주 남미 중국 아프리카 등에 산재해 있지만 캐낸 광물을 제련하는 중간 과정은 대부분 중국이 맡고 있다.
전기차 밸류체인서 '중국 배제' 美 야심에…완성차업계는 초비상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배터리 원재료 제련의 70% 이상을 중국이 담당하고 있다. 중국 업체들이 북미를 제외한 세계 각지의 광산 지분을 사들이고, 채굴한 원료를 중국 또는 현지에서 제련해 각지에 공급하는 구조다. 제련 이후 양·음극재 제조, 배터리셀 생산의 중국 의존도는 각각 66%와 73%에 이른다. 세계 최대 전기 완성차 업체인 미국의 테슬라 또한 간펑리튬, 화유코발트 등 중국 업체로부터 광물을 공급받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이 IRA를 통해 중국 주도 전기차 공급망에 균열을 시도하면서 글로벌 업체들은 ‘초비상’이 걸렸다. 당장 내년부터 법이 시행될 예정이지만 단기간에 공급망을 재편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반발하고 있다.

당장 중국을 대신할 대안이 없다는 게 문제로 꼽힌다. 음극재 주요 원료인 흑연이 대표적이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피치솔루션스에 따르면 이르면 올해 흑연 수요가 공급을 앞지를 전망이지만 흑연의 중국 채굴 비중은 75%가량인 반면 북미 생산량은 1.2%에 그친다. 미국 웰즐리대는 미국 원자재 채굴·제련 시설이 현재 거의 없으며, 계획 단계인 데만 12곳 정도라고 조사했다.

게다가 중국과 달리 미국은 환경단체 입김이 센 ‘민주주의’ 국가다. 제련 시설을 갖추는 데도 마찰이 생길 수밖에 없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조 바이든 행정부 들어서만 6개 이상의 광산 프로젝트가 지연됐다”고 보도했다.

한국 배터리 업체들은 소재 공급망 정비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SK온 관계자는 “배터리 원자재의 현지 조달 방안 등을 다각도로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은 IRA의 가장 기본적인 요건인 완성 전기차 미국 내 조립조차 충족하지 못한 상황이다. 올해 10월께 GV70 전기차를 앨라배마 공장에서 생산할 예정이지만 노동조합 허락을 받아야 하는 데다 생산량을 늘려가는 데도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조지아 전기차 전용 신공장은 2025년에나 가동할 수 있다.

아시아 편중 우려에 유럽 ‘전기차 감속’

미·중 공급망 갈등뿐 아니라 또 하나의 주요 전기차 시장인 유럽에서도 정책 혼선이 일고 있다. 유럽연합(EU)의 급진적인 전기차 전환 정책에 내연기관 위주 유럽계 완성차 브랜드들이 잇따라 ‘반기’를 들자 유럽 각국 정부가 이에 동조하고 있다.

최근 유럽자동차제조업체협회(ACEA)를 탈퇴하겠다고 나선 스텔란티스가 대표적이다. 스텔란티스는 2035년까지 내연기관 자동차 판매를 금지하는 정책에 반발하며 ‘총대’를 멨다.

카를로스 타바레스 스텔란티스 최고경영자(CEO)는 “(전기차 전환을 서두를 경우) 2025~2026년 배터리 공급이 더 어려워지고, 결국 아시아 의존도가 상당히 커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에 전기차 밸류체인의 아시아 편중을 우려한 유럽 국가들은 서서히 전기차 전환 속도를 조절하고 있다. 독일은 전기차 보조금을 단계적으로 줄인 뒤 완전 철폐하겠다고 밝혔다. 영국은 지난달 2011년부터 시작한 전기차 보조금 제도를 11년 만에 폐지했다. 시장조사기관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1~10위 배터리셀 회사 중 중국 기업은 6곳, 한국 3곳, 일본 1곳이었다. 유럽 기업은 한 곳도 없었다.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전기차 산업을 둘러싼 미국과 유럽, 중국의 다른 셈법에 기업들이 커다란 혼란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한신/김형규 기자 p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