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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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1년 풀무원과 CJ제일제당 등 주요 두부업체들은 정부로부터 "사업 확장을 하지 말라"는 지침을 받았다. 두부가 김(조미김), 김치, 면류, 순대, 어묵, 세탁비누, 부동액, 레미콘 등 등과 함께 중소기업적합업종으로 지정되면서 대기업은 사업에서 철수하거나 신규로 진입하지 못하게 됐다.

대기업의 사업을 막은 결과 중소 두부업체가 크게 성장했을까. 만 10년이 넘게 지난 현재 대부분의 업종 구조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마트엔 여전히 풀무원과 CJ의 두부가 주로 팔린다. 대기업의 투자가 막히면서 산업의 성장은 오히려 정체됐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지난 2008년부터 2018년까지 중기적합업종 지정의 효과를 분석한 결과 중소기업의 1인당 인건비가 감소한 것 외에는 생산성 향상 등의 효과는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풀무원 음성공장 자료=한경DB
풀무원 음성공장 자료=한경DB

중기적합업종, 근로자 임금만 줄였다

김민호 KDI 연구위원은 3일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의 경제적 효과와 정책 방향'이라는 제목의 KDI정책포럼 보고서를 통해 이같은 분석 결과를 내놨다. 김 위원은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가 도입된 이후 대기업의 생산 및 고용 활동은 위축됐지만, 중소기업의 활동은 크게 변화하지 않았다"며 "실효성이 없는 정책을 폐기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김 위원은 2008년부터 2018년까지의 광업·제조업 조사 자료를 활용해 2011년 중기적합업종 제도 도입 이전과 이후의 해당 중소기업 생산액, 부가가치, 노동생산성, 총요소생산성, 고용, 유형자산, 1인당 인건비, 직접생산비 등을 비교하는 방식으로 분석했다.

분석결과 성과 지표인 생산액, 부가가치, 노동생산성, 총요소생산성 등은 제도 도입으로 인한 변화가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지표는 소폭 증가했지만 통계적으로는 0과 다르지 않았다.

효과가 확인된 것은 1인당 인건비가 줄었다는 점 정도였다. 두부 등 적합업종 품목을 생산하는 사업체의 1인당 인건비는 적합업종 지정 이후 약 1.3%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존 근로자들의 임금 인상률을 낮추거나, 신규 고용자에게 적은 임금을 줬을 가능성이 있다고 김 위원은 설명했다. 임금 수준이 높은 대기업의 진입이 막히면서 근로자들 입장에서는 더 안좋은 근로조건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중소기업의 퇴출은 상당부분 막은 것으로 나타났다. 경쟁력이 없는 기업들의 생명연장을 해준 것이다. 김 위원은 "적합업종제도는 ‘중소기업 보호를 통해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목적 중 사업체의 퇴출확률을 낮춰 사업을 유지하는 측면에서의 보호 역할은 했지만, 중소기업의 성과 혹은 경쟁력 제고에는 한계를 보였다"고 지적했다.

중기적합업종 중에서도 더 강력한 진입 제한을 받은 업종일수록 부정적인 효과가 컸다. 대기업이 '사업 신규 진입 제한' 정도가 아니라 '사업 이양', '사업 축소' 권고를 받은 경우엔 중소기업의 고용과 1인당 인건비가 줄었고, 퇴출을 막는 효과도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대기업이 빠지면서 산업 자체가 생명력을 잃은 것이다.

중기적합업종이 전체 산업에 미친 영향은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산업 단위의 분석 결과는 적합업종제도가 해당 품목이 속한 산업 전반의 성과에 유의한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히려 중기적합업종 권고가 해제될 무렵인 2017년부터 해당 산업이 성장하는 추이를 보였다.

"기업 성장 막는데 누가 투자하겠나…중기적합업종 폐지해야"

오영교 동반성장위원장이 24일 서울 서초구 JW 메리어트호텔에서 열린 제70차 동반성장위원회 회의를 마친 뒤 관계자와 논의하고 있다. 동반성장위는 이날 회의에서 대리운전업을 새 정부 들어 첫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했다. /연합뉴스
오영교 동반성장위원장이 24일 서울 서초구 JW 메리어트호텔에서 열린 제70차 동반성장위원회 회의를 마친 뒤 관계자와 논의하고 있다. 동반성장위는 이날 회의에서 대리운전업을 새 정부 들어 첫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했다. /연합뉴스
김 위원은 "중기적합업종은 대기업의 확장 혹은 진입을 제한하는 강력한 수단을 통해서도 중소기업의 성과에 유의한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며 "제도 운영의 실효성이 낮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어느 업종이든 시장활동에 제한을 받을 수 있는 불확실성이 존재할 경우 해당 시장에 진출해 국내 생산 시설에 투자하고자 하는 기업의 유인이 떨어지게 된다"며 "기업규모만을 기준으로 특정 업종에서 생산활동을 제한하는 제도는 경제 전반의 자원배분의 효율성을 저해한다"고 덧붙였다.

김 위원은 이같은 결과를 바탕으로 중기적합업종을 점진적으로 폐지할 것을 제안했다. 신규 신청을 중지하고 현재 지정된 업종은 해제 시기를 예고하라는 것이다. 중소기업 보호를 위해선 특정 사업영역의 보호보다는 부정경쟁행위 방지 및 불공정행위에 대한 실효성 있는 규율을 통해 경쟁력 있는 중소기업의 성장을 효과적으로 지원하는 것을 동반성장정책의 목표로 설정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