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재 서울대 교수
이유재 서울대 교수
“우유 엎지르고 나서 울어봐야 소용없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속담이다. 일단 잘못을 저지르면 끝이라는 의미다. 과연 그럴까?

필자의 지인은 오래 전 동료 여직원에게 잘 보이려고 커피를 건네 주다가 긴장한 나머지 하얀 원피스에 엎지르는 실수를 했다. 그런데 “정말 미안하다, 사과하는 의미로 저녁을 사겠다”고 제안하며 두 사람의 만남이 시작되었다. 결국은 둘이 결혼해 지금 애 둘 낳고 잘 살고 있다. 산통 다 깨졌다고 생각했던 순간이 평생 가는 관계를 만드는 기회가 된 것이다.

유튜버 ‘시나쓰’는 어머니가 사용하던 삼성 폴더폰 Z플립의 문제를 발견했다. 핸드폰을 접기만 하면 전원이 갑자기 꺼져버렸다. 구매한 지 1년 반이 지난 시점이라 당연히 유상 수리일거라고 걱정하며 서비스 센터를 방문했다. 그런데 서비스 센터 직원은 접히는 부분(힌지)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며 무상으로 힌지, 화면, 외관을 모두 새 부품으로 교환해 줬다.

감동한 그는 이 내용을 정리해 ‘접을 수 없는 갤럭시 Z플립? 삼성 서비스 센터를 다녀왔습니다’라는 제목의 영상을 올렸다. 그는 손뼉을 치며 “역시 이 맛에 삼성 쓴다”고 말한다. 그리고 엄지척을 해 보이며 “고맙습니다. 삼성”이라는 말로 영상을 마무리한다. 이 영상은 공개한 지 1년 만에 500만 회가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삼성을 칭찬하는 수 많은 댓글이 달린 것은 물론이다.

고객이 항상 제품이나 서비스에 만족하는 것은 아니다. 제품이든 서비스든 실패가 발생할 수 있다. 이런 실패로 인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기업의 노력을 서비스 회복(service recovery)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여기서 서비스 회복 패러독스 (service recovery paradox)라는 흥미로운 개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서비스 회복 패러독스란 실패가 잘 회복된 경우 애당초 실패가 없었던 경우보다도 오히려 더 높은 고객만족과 로열티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즉 실패가 있었더라도 회복을 잘 하면 고객의 불만을 줄이는 것은 물론 로열티까지도 높이는 기회가 된다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필자는 문제가 발생했을 때의 고객을 ‘물에 빠진 사람’이나 ‘몸이 아픈 환자’에 비유한다. 물에 빠진 사람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다. 그 때 손을 뻗어 도와준 사람에 대해 무척 고마워할 것이다. 몸이 아픈 환자도 의사나 가족의 따뜻한 한 마디에 큰 위안을 얻는다. ‘어려울 때 친구가 진짜 친구다(A friend in need is a friend, indeed)’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슬픔이나 고통을 함께 하면 더 고맙고 더 오래 가슴에 남는다.

스포츠 경기도 마찬가지다. 1998년 US여자오픈에서 박세리 선수가 보여준 맨발 투혼 샷을 기억해 보자. 연장전 18번홀에서 공이 해저드에 빠지자 맨발로 연못에 들어가 날린 샷은 아직도 팬들의 마음에 생생하다. 당시 IMF 외환위기로 실의와 절망에 빠져있던 국민들에게 위로와 감동을 준 것은 물론이다. 박세리도 자신의 골프 인생 최고의 한 방으로 꼽는다. 또 1 대 3으로 다 꺼져가던 대한민국 올림픽 야구팀이 9회말 2사에서 끝내기 안타로 역전했던 경기도 기억해보자. 인생이든 스포츠 경기이든, 고통에는 역전드라마의 감동이 숨겨져 있다.
박세리는 위기 상황에서 국민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박세리는 위기 상황에서 국민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고객은 기업을 두 가지 측면에서 평가한다. 첫째, 기업이 약속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가? 둘째,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기업이 이를 어떻게 처리하는가?

대부분 평범한 기업들은 첫 번째 측면에만 신경 쓰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 대응이 소극적이다. 마지못해 ‘의무방어전’식으로 대응하며 임무를 마쳤다고 한숨 돌리는 것이다. 그러나 탁월한 기업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고객의 요청 이상으로 성실하게 대응해 오히려 고객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기회로 삼는 것이다. 여기가 평범한 기업과 탁월한 기업이 구분되는 지점이다.

그래서 우유 관련 속담은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우유 엎지르고 나서 그 다음이 중요하다” 잘못을 범하고 나서 어떻게 하느냐가 판세를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포기하지마” 오래 전 유행했던 노래로만 생각하지 말자. 실수한 순간이야말로 전화위복의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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