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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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화폐는 증권일까 상품일까.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특정 알트코인(비트코인이 아닌 암호화폐) 9종을 '증권'으로 규정하면서 암호화폐의 법적 성격을 둘러싼 논쟁이 다시 달아오르고 있다.

발단은 미국 최대 암호화폐거래소 코인베이스에서 발생한 선행매매 사건이었다. 미국 SEC와 뉴욕 남부연방지방검찰청은 21일(현지시간) 코인베이스에서 자산상장팀 상품매니저로 일했던 이샨 와히 등 3명을 '암호화폐 내부자거래' 혐의로 기소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지난해 8월부터 올해 5월까지 최소 14차례에 걸쳐 코인베이스에 상장될 예정이었던 25종의 암호화폐를 상장 직전에 사들여 모두 150만달러(약 19억7000만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를 받는다.

미국 검찰이 암호화폐 관련 범죄에 증권법 위반 사항인 내부자거래 혐의를 적용해 기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데이미언 윌리엄스 연방검사는 "블록체인에서 벌어지든 월스트리트에서 벌어지든 사기는 사기일 뿐"이라고 했다.

특히 SEC는 고발장에 문제가 된 25종의 암호화폐 중 앰프(AMP) 랠리(RLY) 드리바(DDX) 오라클네트워크(XYO) 라리거버넌스토큰(RGT) LCX 파워렛저(POWR) DFX파이낸스(DFX) 크로마티카(KROM) 등 9종을 '증권'이라고 명시했다.

SEC는 62장짜리 고발장에 이 9종의 암호화폐에 대해 ‘하위 테스트(Howey Test)’를 진행한 결과를 상술하고 증권법상 증권의 정의에 부합한다고 주장했다. 하위 테스트는 미국 법원에서 특정 자산이 증권법 적용 대상인지 판단하기 위해 적용하는 기준이다. SEC는 "(해당 암호화폐를 발행한) 9개 회사는 향후 투자 가치를 증대시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하면서 투자자들을 모집했다"며 "이번 사건을 통해 수많은 암호화폐가 증권의 성격을 띠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했다.

이번 사건으로 암호화폐의 증권성 여부에 대한 논란이 더 첨예해졌다. 암호화폐를 상품으로 규정해야 한다고 주장해온 미국 상품거래위원회(CFTC)의 캐롤라인 팜 위원은 즉각 성명을 내고 "SEC가 소송을 통해 유틸리티 토큰이나 거버넌스 토큰으로 해석될 수 있는 다수의 암호화폐를 증권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강제적 규제"라고 비판했다.

미국의 금융감독원 격인 SEC는 암호화폐가 주식·채권 등과 같은 '증권'이라고 주장해온 반면, 석유·금·곡물 같은 원자재와 그 파생상품 등에 대한 규제를 관할하는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는 암호화폐를 '상품'으로 취급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여기에는 암호화폐에 대한 규제 권한을 둘러싸고 당국 간 알력 다툼도 얽혀있다.

암호화폐의 법적 성격이 어떻게 정해지느냐에 따라 향후 규제 방향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증권으로 분류되면 암호화폐 발행자·사업자 등은 앞으로 SEC 등록, 엄격한 공시 등의 제도를 준수해야 한다. 이 때문에 암호화폐 업계에서는 SEC가 아닌 CFTC가 관할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빈난새 기자 binthe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