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에서 점심식사를 마친 직장인들이 일터를 향해 걸어가고 있다. 사진=임대철 한경디지털랩 기자
서울 여의도에서 점심식사를 마친 직장인들이 일터를 향해 걸어가고 있다. 사진=임대철 한경디지털랩 기자
정부가 중산층의 세금 부담을 낮추기 위해 소득세 과세표준 구간을 15년만에 개편하기로 했다. 낮은 세율이 적용되는 과표 구간을 확대해 세금 인하 효과를 내겠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징벌적으로 높아진 최고세율 구간은 조정하지 않기로 했다.

6% 세율 적용구간 1200만→1400만원 이하로

기획재정부가 21일 발표한 '2022년 세제개편안'에 따르면 소득세 최저세율인 6%가 적용되는 과표 구간이 1200만원 이하에서 1400만원 이하로 확대된다. 기재부는 이 조치로 연봉 3000만원(과세표준 1400만원) 직장인의 소득세액은 30만원에서 22만원으로 27.0% 줄어들 것으로 추정했다.

15%의 세율로 소득세를 부과하는 1200만~4600만원 이하 구간은 1400만~5000만원 이하로, 24% 세율 구간은 4600만~8800만원 이하에서 5000만~8800만원 이하로 각각 조정된다. 이에 따라 연봉 5000만원(과세표준 2650만원) 직장인은 세금이 170만원에서 152만원으로 10.6%, 7800만원(과세표준 5000만원)을 버는 경우는 530만원에서 476만원으로 5.9% 각각 줄어든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3일 오후 제주 서귀포 해비치 호텔에서 열린 '제45회 대한상의 제주포럼'에 참석, '새정부 경제정책방향'을 주제로 정책 강연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3일 오후 제주 서귀포 해비치 호텔에서 열린 '제45회 대한상의 제주포럼'에 참석, '새정부 경제정책방향'을 주제로 정책 강연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높은 물가상승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민의 세 부담을 적정화하기 위해 소득세 하위 2개 과세표준 구간을 상향조정해 세 부담을 전반적으로 경감했다"며 "직장인 식대 비과세 한도를 월 10만원에서 20만원으로 상향한 조치를 포함해 평균 80만원 가량의 세부담이 줄어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정훈 기재부 조세총괄정책관은 "소득세 과표구간 조정으로 인한 근로자의 세부담 감소분은 1조6000억원"이라고 덧붙였다.

"검토 안한다"→"과표 조정" 전격 결정

과세표준 8800만원 이하 구간의 과표 금액이 조정된 것은 지난 2008년 이후 15년만이다. 세율까지 고정된 것은 2010년이었다. 2000년대 초반만해도 세율이나 과표를 2~3년마다 조정해 물가 상승에 따른 세부담 상승을 완화했지만 최근 10여년간은 아무런 조정이 없어 '자동 증세'를 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소득세 과표구간 조정 필요성을 제기한 지난 4일자 한경 1면.
소득세 과표구간 조정 필요성을 제기한 지난 4일자 한경 1면.
이번에도 기재부는 소득세 과세표준 조정에 소극적이었다. 기재부 관계자는 "소득세 과표 조정은 세수에 미치는 영향이 크고 복잡한 작업이라 올해는 할 여력이 안될 것 같다고 봤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 4일 한경이 <'샐러리맨만 봉' 만든 15년 묵은 소득세법>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한 이후 상황이 급변했다.

지난 11일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중산층 세부담 경감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하면서 과표 조정 방안이 떠오른 것이다. 여당인 국민의힘에선 강대식 의원이,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도 고용진 의원과 노웅래 의원이 소득세 과표 조정 방안을 담은 소득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정부와 여야가 함께 소득세법 개정을 추진하게 되는만큼 법 개정에 속도가 붙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고소득 징벌과세 계속…반쪽 개편 비판도

하지만 정부의 이번 소득세법 개정안이 '반쪽 개편'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문재인 정부가 40%에서 45%로 크게 높인 최고세율 등 고소득자에 대한 징벌적 고율 과세는 그대로 둬서다.

정부는 이번 세제개편안에서 8800만원을 초과하는 과표 구간은 그대로 두기로 했다. 8800만~1억5000만원 이하는 35%, 1억5000만~3억원 이하는 38%, 3억~5억원 이하는 40%, 5억~10억원 이하는 42%, 10억원 초과 구간을 45%의 세율이 그대로 유지된다.

오히려 총급여 1억2000만원 초과자에 대해 근로소득세액공제를 축소해 소득세의 징벌적 성격을 강화했다. 근로소득세액공제는 소득구간별로 일정 금액을 세액에서 빼주는 제도다. 현재 3300만원 이하는 74만원, 3300만원~7000만원 이하는 66만~74만원, 7000만원 초과자는 50만~66만원을 공제해주고 있다.

이번 소득세법 개정안에는 50만~66만원 공제 구간을 7000만원~1억2000만원 이하로 정하고 1억2000만원 초과자는 20만~50만원 범위 내에서 공제하는 방안을 포함했다. 총급여가 1억2060만원이 넘으면 일괄적으로 공제액이 50만원에서 20만원으로 줄어들기 때문에 대다수의 억대연봉자들의 공제가 크게 축소되게 된다. 공제 축소 영향으로 총급여 3억원 직장인의 세부담은 저세율 구간 과표 조정에도 불구하고 0.3% 정도만 감소해 사실상 변하지 않는 것으로 추정됐다.

미국과 캐나다 등에서 시행하고 있는 과표 물가연동제도 도입하지 않기로 했다. 고광효 기재부 세제실장은 "물가연동제로 매년 과표를 변경하면 과세체계가 지나치게 복잡해질 우려가 있다"며 "저율 구간이 확대돼 면세자가 늘어나는 문제 등도 고려해야한다"고 말했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