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이 오는 15~16일 이틀간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리는 G20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14일 출국한다. 소위 ‘신냉전’ 시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미국과 유럽연합(EU)을 중심으로 한 자유 진영과 중국, 러시아 등 구 공산권이 공급망을 두고 갈라지는 시점에서 열리는 회의다.

G20은 에너지·식량 안보 위협과 물가 상승 압력 등 최근 세계 경제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국제 합의를 이끌어내겠단 계획이지만 중국이 코로나19 재유행을 이유로 화상으로만 참석하겠다며 서방권과의 접촉을 피하고 나서 유의미한 합의를 도출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이번 G20 재무장관회의는 △세계경제 △보건 △국제금융체제 △금융부문 △지속가능금융 △인프라△국제조세 등 총 7개 세션으로 진행된다. G20 회원국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와 국제통화기금(IMF)·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주요 국제기구 대표가 참석한다.

추 부총리는 ‘세계경제’, ‘보건’, ‘국제금융체제’, ‘지속가능금융’, ‘국제조세’ 등 5개 세션에서 발언해 세계경제 주요 현안에 대한 우리측 입장을 개진할 예정이다. 회의 기간 중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와 인도·인도네시아·싱가포르 등 주요국 재무장관과의 면담도 예정돼있다.

세션 가운데 가장 큰 관심이 쏠리는 것은 첫 세션인 ‘세계경제’다. 기재부에 따르면 이 세션에서 G20 참석자들은 최근 에너지, 식량 안보 위협과 물가 상승 압력 등 세계경제 불안 요인에 대해 논의한다. 천연가스 등 에너지를 무기로 유럽을 위협하고 있는 러시아와 코로나19 대응을 이유로 주요 항만을 봉쇄하면서 공급망 불안을 야기한 중국이 논의 선상에 오를 수밖에 없는 주제다.

추 부총리도 이 세션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야기된 세계적 물가상승, 금융 불안 등 복합위기 대응을 위해 자유무역 원칙과 선진국-개도국간 균형적 회복을 추구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할 예정이다.

하지만 중국이 화상 참석을 통보하면서 사실상 맥 빠진 회의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번 G20 재무장관 회의엔 한국을 비롯해 미국, 일본, EU 등 기존 자유 진영 국가들은 각국 경제 사령탑이 직접 참여한다. 하지만 중국은 류허 경제담당 부총리가 화상 참석하는데 이어 러시아도 차관급을 파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지만, 중국과 러시아에 최근 공급망 위기의 책임을 묻고자 하는 서방권의 뜻대로 끌려가지 않겠다는 의사를 간접적으로 표출한 것으로 해석된다.

지난 4월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G20 재무장관 회의에선 미국을 비롯한 서방측 재무장관들이 화상으로 참석한 러시아 재무장관 연설에 집단 퇴장하며 결국 합의된 회의 결과를 정리한 코뮤니케(공동성명)를 발표하지 못했다. 재무장관 회의에 앞서 지난 8~9일 열린 외교장관 회의엔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직접 회의장인 발리를 찾았지만, 러시아가 일으킨 전쟁과 경제 제재 문제를 두고 미국 등 서방과 이견을 좁히지 못해 이 역시 공동성명 도출에 실패했다.

중국이 불참하면서 한중 재무장관의 1대1 면담도 이뤄지지 않게 됐다. 관심을 모은 스즈키 슌이치 일본 재무상과의 면담도 예정에 없다. 로이터 보도에 따르면 지난 12일 일본을 방문한 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장관과 회담을 가진 스즈키 재무상 역시 발리 회의에 직접 참석할 계획이다.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추 부총리가 잡은 재무장관 양자 면담 일정은 의장국인 인도네시아와 내년 의장국인 인도, 동남아시아 지역 경제 협력 이슈가 있는 싱가포르 등 세 곳이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와도 만나 세계 경제 현황과 전망, 지속가능성기금(RST)운영 등 IMF 현안에 대한 한국 측 의견을 전달할 예정이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