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반도체의 최대 수요처로 꼽히는 데이터센터 전경(왼쪽)과 SK 계열 팹리스(반도체 설계전문 업체) 사피온이 2020년 공개한 AI 반도체 ‘X220’(오른쪽).  한경DB
인공지능(AI) 반도체의 최대 수요처로 꼽히는 데이터센터 전경(왼쪽)과 SK 계열 팹리스(반도체 설계전문 업체) 사피온이 2020년 공개한 AI 반도체 ‘X220’(오른쪽). 한경DB
국내 통신사들이 인공지능(AI) 반도체 사업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직접 AI 반도체를 개발하거나 유망 스타트업의 지분을 사고 협력을 모색하는 사례가 부쩍 늘었다. 글로벌 AI 반도체 강자 엔비디아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동시에 AI 경쟁력도 강화한다는 포석이다. AI 반도체는 데이터 학습·추론에 필수적인 ‘대규모 연산’을 빠르고 효율적으로 실행하는 칩으로 AI의 두뇌 역할을 한다. 구글 검색, 유튜브의 동영상 추천 등에 AI 반도체가 쓰이고 있다.

○신경망처리장치 개발 나선 KT

"AI반도체 시장을 잡아라"…통신사들, 투자 경쟁 불 붙었다
KT의 AI 사업 목표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동시에 제공하는 ‘풀 스택’ 사업자로 도약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KT는 AI 반도체 생태계 구축에 적극 나서고 있다. 반도체 경쟁력이 올라가야 데이터 학습과 추론 등 AI 기술 수준을 높일 수 있다.

KT는 지난 6일 AI 반도체 전문 팹리스(설계전문 업체) 회사인 리벨리온에 300억원을 투자했다고 발표했다. 사업 협력도 강화한다. 리벨리온은 2020년 설립돼 주문형 반도체(ASIC) 설계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카카오벤처스와 신한캐피탈 등도 과거 1000억원 규모 자금을 투자한 바 있다.

KT가 AI 관련 기업에 투자하는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지난해엔 국내 AI 인프라 솔루션 전문 기업 ‘모레’에 투자했다. KT는 리벨리온, 모레와 함께 차세대 AI 반도체 설계와 검증, 대용량 언어모델 협업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KT그룹의 AI 인프라·응용 서비스와 모레의 AI 반도체 구동 소프트웨어, 리벨리온의 AI 반도체 역량을 융합해 그래픽처리장치(GPU) 수천 개가 들어가는 ‘GPU팜’을 연내 구축할 계획이다. 내년에는 GPU팜에 자체 개발한 AI 반도체를 접목한다.

KT는 우선 AI 알고리즘 연산에 최적화된 신경망처리장치(NPU)를 개발할 예정이다. 이를 KT의 모빌리티, 금융 디지털전환(DX)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용하고, 국내 사업 성과를 바탕으로 해외 판로도 확보할 계획이다. 회사 관계자는 “국내 주요 기업과 AI 스타트업, 대학 등에 저렴하고 성능 높은 AI 인프라를 제공해 국가 AI 생태계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SK, ‘X330’ AI 반도체 출시 예정

SK는 그룹 차원에서 AI 반도체를 직접 개발하고 있다. 사피온이 주력 업체다. 사피온은 SK텔레콤과 SK스퀘어, SK하이닉스 등 3개 회사가 투자해 설립한 팹리스다. 작년 말 SKT에서 분사했다. 본사는 미국 실리콘밸리에 있다.

사피온의 주력 사업은 AI 반도체 설계다. 사피온은 2020년 AI 반도체 X220을 출시했다. 내년 상반기 차세대 제품인 ‘X330’ 칩을 출시할 계획이다. 류수정 사피온 대표는 지난 4월 실리콘밸리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성능과 활용도 측면에서 모두 경쟁력이 있다”고 강조했다.

사피온은 데이터 학습보다는 ‘추론’에 특화된 반도체를 개발할 계획이다. AI의 추론은 학습된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하고 답을 찾는 과정이다. 류 대표는 “자율주행용 반도체는 오프라인으로 학습된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다가 (돌발상황 같은) 문제가 들어오면 답을 내는 추론이 중요하다”며 “사피온 칩은 추론에 최적화돼 있어 문제를 풀 때 효율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사피온의 강점 중 하나로 ‘SK그룹 소속’이란 점이 꼽힌다. 계열사가 테스트 시장 역할을 할 수 있고 세계적인 반도체 기업 SK하이닉스의 지원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류 대표는 “사피온은 SK 계열사들이 제품을 써보도록 해 성능에 대한 검증 자료를 확보한 뒤 글로벌 시장에 나갈 수 있다”며 “동시에 외부 고객사도 적극적으로 확보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사피온은 NHN의 클라우드 서비스에 AI칩을 제공하기로 했다. 미국에선 미디어그룹 싱클레어와 동영상의 해상도나 초당 프레임(화면) 수를 높이는 업스케일링(upscaling) 사업을 함께하기로 했다.

고급 인력 확보에도 적극 나섰다. 최근 김태진 부사장을 영입한 게 대표적이다. 김 부사장은 반도체 영업 분야에서 오랜 기간 일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4~2018년엔 엠텍비젼 미국법인에서 글로벌 스마트폰 제조사와 완성차 업체를 상대로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모바일멀티미디어플랫폼(MMP) 등을 공급한 경험도 있다. 직전 직장은 정보기술(IT) 인프라 기업인 슈퍼마이크로다. 사피온의 김 부사장 영입은 AI 반도체 제품의 고객 확보에 적극 나서겠다는 의미로 분석된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