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와 글로벌 공급망 차질 여파로 치솟던 원자재 가격이 최근 들어 일제히 급락하고 있다. 경기 선행지표 역할을 하는 원자재 가격이 급락하면서 하반기 경기 침체(recession) 공포가 엄습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5일 한국광물자원공사에 따르면 구리 현물 가격은 4일(현지시간) 런던금속거래소(LME)에서 t당 7976달러에 거래됐다. 구리 가격이 t당 8000달러를 밑돈 것은 작년 2월 이후 17개월 만이다. 지난 3월 초 대비 25.7% 급락했다. 송전, 건축·설비 등에 두루 쓰이는 구리는 경기선행지표 역할을 톡톡히 해 ‘닥터 쿠퍼’로 불린다. 구리와 함께 대표 비철금속인 아연과 알루미늄도 최근 석 달 새 각각 30.1%, 31.6% 급락했다. 철광석 가격도 지난 1일 t당 123달러로, 올 4월 초(154달러) 대비 20.1% 하락했다.
천연가스와 원유 가격도 떨어지고 있다. 올 들어 60% 넘게 급등한 천연가스 가격은 2분기 3.9% 하락했다. 배럴당 120달러를 넘었던 서부텍사스원유(WTI) 선물도 106달러 선에서 마감했다.
통상 원자재값이 내려가면 기업들은 당장은 비용 부담을 덜 수 있다. 문제는 원자재값 급락이 경기 침체의 신호탄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원자재 가격이 일제히 하락한 것은 수요자들이 경기 침체를 예상하고 생산을 대폭 줄였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경제계 한 관계자는 “건설과 자동차 등 전방 수요가 급격히 줄면 산업계 전반의 연쇄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6% 급등
지난달 소비자물가가 1년 전과 비교해 6.0% 상승했다. 외환위기 때인 1998년 11월(6.8%) 후 23년7개월 만의 6%대 물가 상승률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촉발된 글로벌 공급망 불안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석유와 원자재, 곡물 가격 급등세가 이어진 결과다. 경기침체 속 물가가 상승하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이 현실화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5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08.22(2020년=100)로 지난해 같은 달 대비 6.0% 상승했다. 5월(5.4%)보다 상승폭이 0.6%포인트 커졌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0~2%대를 유지하던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10월 3%대로 올라섰고 올 들어서는 1월 3.6%, 2월 3.7%, 3월 4.1%, 4월 4.8% 등 매월 상승률이 높아졌다.
소비자들이 민감하게 느끼는 품목을 중심으로 구성한 생활물가지수는 7.4% 상승했다. 1998년 11월(10.4%) 후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물가의 기조적 흐름을 보여주는 근원물가(농산물 및 석유류 제외)도 4.4% 올랐다.
분야별로 보면 석유류 등 공업제품과 외식을 비롯한 개인서비스 가격 인상이 물가 상승을 이끌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세계가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 가장 심각한 물가 충격을 받고 있다”며 “매주 비상경제민간회의를 주재해 민생 현안을 챙기겠다”고 밝혔다.
물가상승률이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6%대를 기록하면서 한국은행이 사상 처음 빅스텝(기준금리를 한 번에 0.5%포인트 인상)을 단행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이환석 한은 부총재보는 5일 물가 상황 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소비자물가가 당분간 높은 오름세를 이어갈 것”이라며 “임금·물가 상호작용이 강화되면서 고물가 상황이 고착되지 않도록 인플레이션 기대심리의 확산을 각별히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물가상승률은 올 들어 빠르게 확대됐다는 게 한은의 판단이다. 향후 물가 상승에 영향을 미치는 기대인플레이션까지 고공 행진하면서 물가를 제어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 한은이 오는 13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빅스텝을 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이달 또 한 번의 자이언트 스텝(0.75%포인트 인상)을 예고하면서 현재 연 1.75%로 같은 한·미 간 기준금리의 역전은 예정된 상황이다. 한·미 금리가 역전된 뒤 격차가 벌어질수록 원화 약세를 부추겨 수입품의 물가 상승을 더욱 자극할 수 있다.원·달러 환율은 지난달 13년 만에 처음으로 1300원을 돌파했다. 이에 따라 외환당국이 환율 방어를 위해 외환보유액을 대거 소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 한은이 발표한 6월 외환보유액은 한 달 새 94억3000만달러 감소한 4382억8000만달러였다. 글로벌 금융위기 시기인 2008년 11월(-117억5000만달러) 이후 13년7개월 만에 최대 감소 폭이다.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이미 국제통화기금(IMF)이 권고하는 적정 수준 아래로 내려간 상태다. IMF는 연간 수출액의 5%, 시중통화량의 5%, 유동 외채의 30%, 외국환 증권 및 기타투자금 잔액의 15% 등을 합한 규모의 100~150%를 적정 외환보유액으로 판단한다. 지난해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적정 수준의 98.94%였다. 관련 통계가 작성된 2000년 후 사상 최저 수준이다.일각선 한은이 0.25%포인트 올리는 데 그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ING그룹은 전날 “성급한 금리 인상은 소비 회복을 억제할 수 있다”며 “한은이 7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만 인상할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 있다”고 내다봤다.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998년 외환위기 후 처음으로 6%대를 기록하자 정부 안팎에서는 ‘물가 충격’이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올해 들어 매달 거의 1%포인트꼴로 오르는 추세라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 이달 이후가 더 문제라는 관측도 나온다. 전기·가스요금 등 공공요금이 줄줄이 인상된 데다 휴가철과 장마, 추석 명절 등이 대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당분간 6%대 상승률이 계속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공급 요인이 주도한 물가 상승5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공업제품의 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9.3% 상승했다. 등유(72.1%)와 경유(50.7%), 휘발유(31.4%) 등 석유 제품 가격이 크게 오른 결과다. 국제 유가 및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면서 국내 석유 제품 가격도 좀처럼 내려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농축수산물 물가지수도 4.8% 올랐다. 수입 소고기(27.2%), 돼지고기(18.6%), 포도(31.4%), 감자(37.8%) 등 다수 품목의 가격이 뛰었다. 이들 품목의 가격은 모두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이후 글로벌 공급망 붕괴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의 영향을 받고 있다. 글로벌 원자재 및 곡물 가격 상승은 공업제품, 농축수산물 외 외식비 등 개인서비스 물가도 끌어올리고 있다.정부가 물가 안정 대책을 내놓더라도 그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어운선 통계청 경제동향통계심의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물가 상승의 주된 원인이 공급 측에 있는 한 정부 대책이 실효성을 발휘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6%대 상승률 당분간 이어질 듯정부와 민간 전문기관들은 당분간 6%대 물가상승률이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어 심의관은 “물가 하방요인은 불확실하고, 상방요인은 더 많은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기획재정부도 소비자물가 동향 분석 자료를 통해 “당분간 어려운 물가 여건이 지속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물가상승률이 더 뛸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당장 이달 1일부터 전기 및 가스요금이 추가로 인상됐다. 전기·가스요금이 물가지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작지만, 다른 상품 및 서비스 가격에 영향을 미쳐 연쇄적으로 물가를 끌어올릴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또 여름 휴가철을 맞아 개인서비스 가격이 더 오를 가능성이 있다. 9월 초 추석연휴를 앞두고 농수산물 수요도 늘어날 수 있다. 장마 등 기후 관련 변수도 물가 상승을 부추길 우려가 있다. 어 심의관은 물가상승률이 7~8%까지 치솟을 가능성에 대해 “현재 추세가 계속된다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답했다. 6~8월이 물가 정점?일각에서는 오는 9월 이후 물가상승세가 꺾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이날 보고서를 내고 “물가상승률 정점은 6~8월 중일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과거 물가 급등기 지속 기간이 7~27개월 수준인 것을 감안할 때 이번 물가 급등기는 이미 20개월 이상인 만큼 종착역을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이다. 또 작년 10월부터 물가상승률이 전년 동기 대비 3%대로 올라선 것을 감안하면 기저효과 때문에라도 연말로 갈수록 물가상승률이 하락할 것이라는 분석이다.반면 한국경제연구원은 기업들이 국제 원자재 가격 급등에 따른 원가 부담 일부를 자체 흡수하고 있다는 점을 향후 소비자물가의 위험 요인으로 꼽았다. 한경연은 “국제 원자재 가격 급등이 지속되면 기업들의 원가 부담 흡수 여력이 약해져 소비자 물가도 가파른 상승세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정부도 물가 상승 정점을 거론하기는 이르다는 분위기다. 기재부 관계자는 “기저효과 때문에 상승률이 다소 진정될 수는 있지만, 한동안은 고물가 기조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도병욱/정의진 기자 dodo@hankyung.com
중국 민심의 지표로 꼽히는 돼지고기값이 급등하자 당국이 양돈업체들을 불러 모아 군기 잡기에 나섰다. 장바구니 물가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돈육 가격이 상승하면서 중국에서도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고 있다.5일 경제매체 차이신 등에 따르면 중국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국가발전개혁위원회(발개위)는 전날 대형 양돈업체 대표들과 한 회의에서 돼지고기 가격을 안정시키고 가격 담합 등 시장교란 행위에 단호히 대처하겠다고 선언했다.중국 다롄상품시장에서 돼지고기 선물 가격은 지난 4일 8% 상승한 t당 2만2695위안을 기록했다. 3월 중순 저점 이후 40%가량 올랐다. 농업농촌부가 매주 발표하는 전국 돼지고기 평균 가격은 1일 기준 ㎏당 24.55위안으로 1주일 새 13% 뛰었다.중국에서 돼지고기는 소비자물가지수(CPI) 구성 항목 가운데 2%(추정치)에 달할 정도로 비중이 높다. 전 세계 돼지고기 생산량의 40%, 소비량의 50%가 중국 몫일 정도로 중국인의 식생활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2020년 하반기 아프리카돼지열병(ASF) 확산으로 중국의 사육두수가 4억 마리에서 3억 마리로 줄면서 돼지 가격은 폭등했다. 이후 사육량을 늘려 작년 하반기부터 하락세로 돌아섰다.최근 양돈 농가들이 앞다퉈 돼지를 처분하면서 사육두수가 다시 감소하고 있다. 국제 곡물가 상승 영향으로 사료 가격이 급등한 영향이다. 여기에 코로나19 진정과 봉쇄 완화로 소비가 증가하면서 돼지고기 가격이 뛰고 있다. 남부지방 폭우로 돼지 출하가 막혀 도축업체들이 물량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다.중국 CPI는 4월과 5월 연속으로 전년 동월 대비 2.1% 상승하는 데 그쳤다. 주요국 물가가 급등하는 가운데 중국은 안정세를 보인 이유 중 하나로 돼지고기값 약세가 지목돼왔다. 6월 물가지수는 오는 9일 발표될 예정이다.하지만 최근 돈육 가격이 급등하면서 중국에서도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자 당국이 경고 메시지를 날린 것으로 풀이된다.베이징=강현우 특파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