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현대제철, 철강값 내려
고려아연·풍산도 타격 불가피
中企 "가격하락 아직 체감 못해"
지난해부터 ‘슈퍼 사이클’에 힘입어 사상 최대 호황을 누렸던 국내 철강·비철금속 업체들이 원자재 가격 하락 여파로 올해 하반기 실적이 대폭 둔화할 전망이다. 글로벌 경기 침체에 따른 전방산업 수요 위축으로 포스코와 현대제철, 고려아연, 풍산 등 국내 후방산업 대표주자들의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5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포스코홀딩스는 지난 2분기 매출 22조4000억원, 영업이익 1조9300억원을 올린 것으로 추정됐다.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12%, 전 분기 대비 15% 감소한 수치다. 네 분기 연속 2조원 이상 영업이익을 냈다는 점을 감안하면 호황이 꺾였다는 분석이다. 국내 2·3위 철강사인 현대제철과 동국제강도 3분기부터 실적이 내리막길에 접어들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철강업체는 지난해 철광석 가격이 t당 200달러까지 급등하자 가격 인상분을 열연·후판 제품 등에 고스란히 반영했다. 하지만 올 들어 철광석 가격이 거꾸로 하락하면서 제품 가격을 일제히 내리고 있다. 특히 지난해 4년 만에 가격 인상을 단행한 뒤 세 차례에 걸쳐 추가로 가격을 올린 조선용 후판 가격도 올 하반기엔 인상이 어려울 전망이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수요 부진으로 재고가 쌓이고 있는 데다 계절적 비수기까지 겹치면서 가격 조정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국내 비철금속 양강 업체인 고려아연과 풍산도 올 3분기부터 실적 상승세가 둔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고려아연과 풍산은 각각 아연과 구리 가격 급등세에 힘입어 작년 창사 이후 최대 이익을 냈다. 국내 최대 아연 제련업체인 고려아연은 아연 가격이 오를수록 정광을 제련해준 대가로 광산업체에서 받는 제련 수수료(TC)가 상승해 이익을 낼 수 있다. 구리를 가공해 금속판이나 봉, 동전 등을 제조하는 구리 가공업체인 풍산은 구리값 급등에 따른 ‘롤마진’(제품가-원재료가) 상승의 수혜를 톡톡히 봤다. 하반기부터 경기 침체가 본격화하면 전방산업 수요 위축에 따라 추가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철강·비철금속 원자재 가격 하락에도 중소기업들은 이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알루미늄 중소 제조업체 대표는 “알루미늄 국제 시세가 하락했는데도 국내 대형 유통업체들은 아직까지 가격 인하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며 “중소기업이 원자재 가격 하락을 체감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토로했다.
한국무역협회가 최근 공개한 수출산업경기전망조사(EBSI)에 따르면 올 3분기 철강·비철금속 제품 지수는 74.2로 수출 경기가 크게 나빠질 것으로 예상됐다. 지수가 100을 밑돌면 향후 수출 여건이 지금보다 악화할 것으로 전망된다는 뜻이다. 올 1분기(91.8) 대비 큰 폭으로 떨어진 것으로, 주요 업종 중 하락폭이 가장 컸다.
코로나19와 글로벌 물류대란을 거치며 치솟던 국제 원자재 가격이 최근 들어 연일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철광석 구리 아연 알루미늄 등 산업 생산의 기반이 되는 철강·비철금속 원자재 가격은 최근 3개월 새 20~30% 가량 급락했다. 이들 원자재 가격 상승세가 일제히 꺾인 것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2년여 만이다. 주요 철강·비철금속 원자재 가격이 일제히 하락하면서 올 하반기 글로벌 경기침체 조짐이 뚜렷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원자재 가격 추이에 희비가 엇갈렸던 국내 전방·후방산업 분야 기업 모두 수요 부진에 따른 실적 악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일제히 하락한 철강·비철금속4일 한국광물자원공사에 따르면 중국 칭다오항 수입 기준 철광석 현물 가격은 지난달 말 t당 113달러로, 3개월 전인 4월 초(154달러) 대비 26.6% 하락했다. 코로나19 사태 직전인 2020년 초 t당 90달러 초반대였던 철광석 가격은 공장 가동 중단에 따른 공급 부족으로, 지난해 중반께 사상 처음으로 200달러를 돌파했다. 이후 수급이 안정화되면서 작년 말 90달러대로 떨어졌지만 올 초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 여파로 160달러까지 치솟았다가 다시 하락한 것이다.철강업계는 인플레이션과 세계 각국의 긴축재정으로 경기침체 우려가 커지면서 철강석 수요가 감소한 것으로 보고 있다. 철강 수요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중국이 올해 경기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철광석 가격이 하락하는 원인으로 꼽힌다. 업계 관계자는 “올 하반기부터 건설과 자동차, 가전 등 전방수요가 급격히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가 감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기 선행지표 역할을 톡톡히 해 ‘닥터 카퍼’로도 불리는 구리는 지난달 16개월 만에 가장 낮은 가격에 거래됐다. 런던금속거래소(LME) 현물 기준 구리 가격은 지난달 말 t당 8245달러로, 3개월 전 대비 19.5% 하락했다. 작년 중순까지 1만 달러대를 유지했던 구리 가격은 이후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구리가 ‘닥터 카퍼’로 불리는 이유는 수요량 추이를 통해 글로벌 경기를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다. 구리 가격은 송전, 공장 설비, 건축자재, 차량, 기계장비 등 모든 전방산업에 영향을 줘 경기선행지표 역할을 한다. 구리 가격은 지난달 11% 하락해 월간 손실 기준 30년 만에 가장 큰 하락폭을 보였다. 구리 선물 가격은 지난달 24일 t당 8122.5달러로, 16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기도 했다.구리와 함께 대표 비철금속인 아연과 알루미늄은 최근 들어 30% 안팎의 급락세를 보였다. LME 현물 기준 아연 가격은 지난달 말 t당 3252달러로, 최근 3개월 새 27.3% 급락했다. 아연 가격은 코로나19 사태 직후인 2020년 3월부터 2년 넘게 상승세를 이어오다가 지난 4월부터 급락하고 있다. 알루미늄은 지난달 말 t당 2397달러로, 최근 석 달 새 31.2% 하락했다. 비철금속업계 관계자는 “경기침체 우려와 함께 중국 시장의 수요 부진으로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전방·후방산업 모두 막대한 피해통상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 전방산업 분야 업체들은 원자재 구입비용 증가로 어려움을 겪는다. 반면 원자재를 가공하는 후방산업 기업들은 비용 상승분을 제품가에 반영할 수 있어 원자재 가격이 오를수록 이익을 내는 구조다. 포스코와 현대제철이 지난해 ‘철강 슈퍼사이클’에 힘입어 역대 최고 실적을 낸 것도 이 때문이다. 급등한 철광석 가격 인상분을 열연·후판 제품 등에 고스란히 반영한 것이다. 국내 비철금속 ‘양강’으로 꼽히는 고려아연과 풍산도 각각 아연과 구리 가격 급등세에 힘입어 작년 창사 이래 최대 이익을 냈다. 국내 최대 아연 제련업체인 고려아연은 아연 가격이 오를수록 정광을 제련해 준 대가로 광산업체에서 받는 제련 수수료(TC)가 상승해 이익을 낼 수 있다. 구리를 가공해 금속판이나 봉, 동전 등을 제조하는 구리 가공업체인 풍산은 구리값 급등에 따른 ‘롤마진’(제품가-원재료가) 상승으로 작년 사상 최대 이익을 냈다.문제는 원자재 가격 급락이 경기침체 신호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산업생산의 기반이 되는 철강·비철금속 원자재 가격이 일제히 하락한 것은 수요자들이 향후 경기침체를 예상하고 생산을 대폭 줄이려 한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일각에선 코로나19 이후 과도하게 오른 ‘원자재값의 정상화’ 과정으로 보기도 한다. 다만 미국와 유럽의 경기침체가 기정사실화된 상황에서 원자재 가격 하락이 올 하반기 경기침체를 예고하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본격적인 경기침체가 찾아오면 후방산업 업체뿐 아니라 전방산업도 큰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전방산업 기업들은 원자재값 하락으로 비용이 일시적으로 하락할 수 있지만 경기침체에 따른 수요 부진으로 제품 판매가 급감해 실적이 추락하는 피해를 입게 된다. 포스코와 현대제철, 고려아연, 풍산 등 후방산업 업체들도 전방산업 수요 위축에 따른 제품 가격이 하락하고, 판매도 줄어드는 악순환이 빚어질 수 있다.실제로 한국무역협회가 최근 공개한 수출산업경기전망조사(EBSI)에 따르면 철강·비철금속 제품 지수는 74.2로 수출경기가 크게 나빠질 것으로 예상됐다. 지수가 100을 밑돌면 향후 수출여건이 지금보다 악화될 것으로 전망한다는 뜻이다. 올 1분기(91.8) 대비 큰 폭으로 떨어진 것으로, 주요 업종 중 하락폭이 가장 컸다. 강경민 기자
현대제철 주가가 1년 동안 반토막 나는 등 극도로 저평가받고 있다. 올해 사상 최대 실적을 갈아치울 것이라는 전망에도 주가는 지지부진하다. 하반기부터 제품가격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와 함께 전기료와 탄소배출권 가격 상승 등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다.1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현대제철의 올해 영업이익 컨센서스(증권사 추정치 평균)는 2조7289억원으로, 작년보다 11.5% 증가할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할 전망이다.이 같은 높은 실적 기대치와 달리 주가는 1년 새 곤두박질쳤다. 현대제철은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 750원(2.34%) 오른 3만2850원에 마감했다. 이날은 반등했지만 작년 장중 최고가(2021년 5월 14일·6만3000원) 대비 47.86% 떨어졌다. 주가 급락에 주가수익비율(PER)과 주가순자산비율(PBR·12개월 선행 실적 기준)은 각각 0.24배, 2.72배에 머물렀다.주가가 저평가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실적이 고점을 찍었다는 관측에서다. 대신증권은 현대제철의 열연강판·냉연강판·후판 등 철강판재류 평균 판매 가격이 올 2분기 t당 128만1000원에서 3분기에 125만4000원으로 하락할 것으로 예상했다. 철근·형강 등의 봉형강 제품 평균판매가도 2분기 t당 137만5000원에서 3분기에 131만9000원으로 내려갈 것이라고 전망했다.한국전력이 7월부터 전기요금을 ㎾h당 5원 인상한 것도 부담 요인이다. 연간 전기료로 1조원가량을 쓰는 현대제철은 요금 인상으로 생산비가 올해 수백억원가량 불어날 것으로 추정된다.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조합원들이 특별격려금을 지급하라며 충남 당진공장 사장실을 60일 넘게 점거하는 등 회사 안팎이 뒤숭숭한 것도 주가에 부정적으로 작용했다. 최근 현대차증권은 현대제철 목표주가를 기존 5만8000원에서 5만1000원으로 하향 조정했다.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
미국 메모리칩 기업 마이크론테크놀로지가 1일 세계 시장의 반도체 수요 감소에 따른 실적 악화 우려에 불을 지폈다. 시장 예측에 못 미치는 3분기 가이던스(전망 제시)를 냈기 때문이다. 비슷한 시기에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반도체 가격 하락 전망이 나오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는 이날 나란히 장중 52주 신저가를 경신했다. 증권사들은 두 회사의 목표주가를 잇따라 하향 조정하고 있다. 반도체 슈퍼사이클(장기 호황)이 마침표를 찍었다는 분석에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실적·가격 전망치 모두 하락이날 반도체 시장은 연이은 악재로 몸살을 앓았다. 마이크론은 지난달 2일 끝난 지난 분기에 매출 86억4000만달러(약 11조2000억원), 순이익 26억3000만달러(약 3조4000억원)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매출은 16%, 순이익은 51% 증가하면서 전문가들의 추정치에 부합했다.시장의 불안감을 키운 건 3분기 예상치였다. 마이크론은 3분기 매출이 전문가 전망치(91억4000만달러)에 크게 못 미치는 72억달러(약 9조3000억원)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주당순이익(EPS)도 1.63달러로, 전문가 전망치인 2.57달러를 크게 밑돌 것으로 제시했다. 마이크론은 소비자 지출 감소 등으로 PC와 스마트폰 수요가 예상보다 안 좋다고 설명했다.실제 반도체 수요 감소는 메모리반도체 가격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날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홍콩 D램 스폿(현물)시장에서 지난달 DDR4 8GB 제품 가격이 개당 3.3달러 수준에 형성됐다고 보도했다. 작년 6월과 비교해 1.495달러(31%) 떨어졌다. 작년 8월 기록한 직전 최고가와 비교하면 1.77달러(35%)나 내려갔다. DDR3 4GB 제품은 개당 2.445달러 안팎에서 거래됐다. 지난해 8월 직전 최고가에서 0.56달러(19%) 하락했다. 업계 관계자는 “스폿 거래는 D램 전체 거래의 10%가량을 차지한다”며 “수급 상황에 민감하게 반영하기 때문에 현재 메모리 반도체 수요를 보여주는 가장 좋은 사례”라고 설명했다.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메모리카드·USB에 쓰이는 낸드플래시 범용제품(128Gb 16Gx8 MLC)의 6월 고정거래가격도 4.67달러로 전달 4.81달러보다 3.01% 내렸다. ○인플레·수요 감소 직격탄전문가들은 반도체 가격 하락에 대해 인플레이션(물가 상승)과 이에 따른 소비 감소를 비롯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국 경제 둔화 등을 원인으로 보고 있다. 글로벌 공급망 문제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식량·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물가가 오르면서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고 있기 때문이다. 가전과 모바일 등 전자제품 소비 감소가 반도체 수요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반도체 기업 관계자는 “2분기까지는 기존 계약 물량 등으로 시장 예상에 부합하는 실적을 낼 수 있지만 3분기부터는 실적 악화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증권가에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목표주가를 줄줄이 하향 조정하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삼성전자의 목표주가를 기존 10만3000원에서 9만원으로, JP모간은 10만원에서 8만5000원으로 낮췄다. 골드만삭스는 “D램 가격이 지속해서 하락해 내년 1분기까지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며 “스마트폰과 PC 수요, 서버 수요가 점점 줄고 있다”고 설명했다. KB증권도 SK하이닉스에 대해 하반기 수급 개선이 지연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목표주가를 기존 14만원에서 12만5000원으로 내렸다.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