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몬 장윤석 대표
티몬 장윤석 대표
직장인들에게 해마다 돌아오는 연봉 협상만큼 걱정되는 일도 없다. 회사 측에 자신의 성과를 제대로 증명하고, 인정받기가 쉽지 않아서다. 게임처럼 경험치를 쌓아 승진도 하고, 그에 따라 연봉도 오르면 시스템이라면 어떨까. 1세대 e커머스 기업 티몬이 최근 이런 아이디어를 현실화해 그 성공 여부에 산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공정한 평가와 보상
6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티몬은 연봉 책정이 게임처럼 이뤄지는 ‘게이미피케이션 레벨제’를 이달 초 도입했다. 이 제도는 해마다 연봉 협상을 하고, 연말·연초 인사철에만 승진할 수 있는 일반적 인사 시스템을 완전히 파괴한 제도다.

직원들은 팀장 등 간부들이 준 단기 임무를 완수하거나, 스스로 설정한 미션을 수행하면 포인트를 얻는다. 포인트는 게임 속 경험치와 같은 역할을 한다. 포인트가 쌓이면 레벨이 오르고, 레벨에 따라 급여 인상 등 보상도 즉각적으로 이뤄진다.

레벨제는 구글과 페이스북 등 미국 빅테크 기업이 먼저 도입해 국내에서도 쿠팡 등이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점수 따기 등 게임적 요소를 접목한 이런 방식은 티몬이 처음 고안했다는 회사 측 설명이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물 건너온 레벨제가 한국에서 한 단계 더 진화한 셈이다.

티몬이 이런 시스템을 도입한 것은 공정한 평가와 확실한 보상을 원하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 직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서다. 기존 인사평가 제도는 평가자의 주관적 요소가 크게 작용해 객관성이 떨어질 우려가 있는 데다 1년 치 업무 성과를 한 번에 평가한다는 한계가 있다는 게 티몬의 판단이다. 연봉 협상과 승진 인사 이후 이에 대한 불만으로 불필요한 잡음과 소모적 갈등이 이어지는 사례도 많다.

게이미피케이션 레벨제가 도입되면 크고 작은 미션을 기준으로 객관적 평가가 가능하고, 직원들은 연봉 협상 시기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즉각 보상받을 수 있다. 티몬 관계자는 “레벨제는 직급 체계를 없애 승진 개념 자체가 희미해진 기업에 새로운 동기부여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며 “임무 단위로 포인트를 제공함에 따라 업무 지시 또한 보다 명확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혁신적 인사제도 더 빠르게 확산”
수평적 조직 문화를 지향하고, 성과에 따른 확실한 보상을 제공하는 실리콘밸리식 인사제도는 스타트업들이 먼저 받아들이기 시작해 최근엔 삼성, CJ 등 대기업들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1월 종전의 직급 체계인 커리어 레벨(CL)을 사실상 폐기했다. 직급 연한을 폐지해 능력만 있으면 대졸 신입사원이 9년 만에 임원 자리에 오를 수 있도록 했다.

CJ는 지난해 말 사장 이하 상무대우까지 6개 직급으로 나뉘었던 임원 직급을 경영리더(임원)로 통합했다. 역량 있는 젊은 인재는 조기 발탁해 최고경영자(CEO)로 빠르게 키우기 위한 제도다. 산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대기업의 인사제도가 산업계 전반으로 퍼져나갔다면 최근에는 스타트업의 혁신적인 인사제도를 대기업이 채택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과도한 경쟁 우려도
일각에선 직급제 파괴와 동료·다면평가, 레벨제 등 실리콘밸리식 인사제도가 지나친 경쟁을 조장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토스는 팀 내에서 경고를 세 번 이상 받은 직원에게 퇴사를 권고하는 ‘스트라이크 제도’를 운영하다가 “동료 평가가 지나친 스트레스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여론이 높아지자 지난해 이 제도를 폐지했다. 카카오는 ‘살인 평가’라는 말이 나올 만큼 적나라한 다면평가 제도로 논란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도 실리콘밸리식 인사제도의 확산은 피할 수 없는 변화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이경묵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평생직장의 개념이 희미해지면서 젊은 직원들은 연차가 쌓여야 큰 보상을 받는 연공서열제보단 공정한 평가와 그에 따른 즉각적인 보상을 선호하고 있다”며 “이 같은 변화에 발맞춰 실리콘밸리식 인사제도를 도입하는 기업들이 더 빠른 속도로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박종관 기자 p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