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디스플레이 장비 업체 A사는 최근 디스플레이 업체인 B사에 “심각한 부품난으로 인해 이달 건식식각기 공급이 불가능해졌다”며 “연말께나 가능할 것 같다”고 읍소했다. 이 장비에 들어가는 필수 부품인 드라이 펌프를 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B사는 당초 계획한 설비 교체와 증설 일정을 늦출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렸다.

27일 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에 따르면 최근 들어 주성엔지니어링, 원익IPS, 선익시스템 등 국내 디스플레이 장비 업체들이 부품을 구하지 못해 장비 납품 기일을 맞추지 못하는 사태가 속출하고 있다. 글로벌 공급망 불안으로 해외에서 핵심 부품을 제때 조달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장비 핵심 부품은 평균 4.5개월 이상 납기 지연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존엔 주문 후 2~3개월이면 공급받던 부품을 6개월이 지나서야 겨우 받고 있다. 통상 2.5개월 내 납품받던 필터는 1년 뒤에나 받을 수 있어 평상시보다 조달이 8.5개월 늦어지고 있다.

부품이 동나면서 디스플레이 장비 공급은 물론 디스플레이 업체 증설까지 차질을 빚는 등 공급망 불안 여파가 도미노처럼 번지고 있다.

장비업계에선 부랴부랴 국내에서 대체 가능한 부품 업체를 수소문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외국 기업이 부품 공급을 맡으면서 국내 업체는 더 이상 부품을 생산하지 않고 있어서다. 일부 디스플레이 장비 업체는 울며 겨자 먹기로 중국산 중고 부품을 두 배 이상 웃돈을 주고 구입해 쓰는 것으로 알려졌다.

디스플레이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공급망이 무너지면서 처참한 현실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며 “국내 디스플레이 장비 부품업계 실태가 이 정도로 심각한 줄 몰랐다”고 말했다.

정지은 기자 je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