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보험사의 전·현직 설계사들까지 직접 보험사기에 가담한 사실이 적발돼 무더기 제재를 받았다. 보험업계에서 최근 늘어나는 보험사기에 대해 처벌 강화와 환수권 도입 등의 대책을 요구하는 가운데 정작 업계 종사자들의 도덕적 해이가 드러난 것이어서 비판이 커지고 있다.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 보험사기대응단은 보험사와 보험대리점(GA)에 대한 검사를 통해 13개사의 전·현직 보험설계사 25명이 보험 사기에 연루된 사실을 적발하고 과태료와 영업 정지 등의 제재를 내렸다. 적발된 설계사들의 소속 회사는 삼성생명 교보생명 DB손해보험 등 대형 보험사부터 세안뱅크, 프라임에셋, 케이지에이에셋 등 GA까지 다양했다.
교보생명 소속 설계사 A씨는 2018년 입원 치료를 받은 적이 없는데도 10일간 입원 치료를 받은 것처럼 허위로 입원확인서를 발급받고, 총 374만원의 보험금을 타낸 사실이 드러나 180일의 업무 정지 제재를 받았다.
삼성생명도 보험 사기와 관련해 설계사 1명이 등록 취소되고, 3명은 업무 정지 180일의 제재를 받았다. 이 회사 소속 설계사 B씨는 자신이 보험금을 청구한 도수치료 18회 중 7회만 실제로 받고, 나머지는 비만 치료를 받은 사실이 확인됐다. DB손해보험 설계사 C씨는 경미한 질병으로 찾은 병원에서 사무장의 권유로 위조 진단서를 끊은 뒤 보험금을 청구했고, 허위 입원한 환자 9명이 보험금을 받도록 도운 사실이 드러났다.
프라임에셋 소속 설계사 D씨는 골프 경기 중 홀인원을 한 뒤 카드 매출전표를 허위로 속여 보험금을 타냈다가 적발됐다. 케이지에이에셋 소속 설계사 E씨는 간호조무사로 일하면서 진료명세를 조작해 130명의 피보험자가 총 2억9000만원의 보험금을 타내도록 도왔다가 적발됐다.
이와 별개로 금감원 보험영업검사실은 GA에 대한 검사를 통해 8개 회사 보험설계사들에게 중징계를 내렸다. 계약자들에게 유모차 상품권 순금 등 과도한 경품을 제공했다가 제재를 받았다. 보험업법은 연간 납입보험료의 10%와 3만원 중 적은 금액을 초과한 금품 제공은 특별이익으로 간주한다.
금감원에 따르면 보험사기 적발액은 2018년 7982억원에서 지난해 2021년 9434억원으로 해마다 늘고 있다. 대책 마련을 위해 국회에는 6건의 보험사기방지 특별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다. 법안은 △보험업 종사자에 대한 가중처벌 △보험금 환수권 도입 △전담 조직 마련 △보험사기 알선 행위 처벌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삼성생명과 교보생명, DB손해보험 등 대형 보험사와 지에이코리아, 글로벌금융판매, 메가, 에이플러스에셋 등 법인보험대리점(GA) 설계사들이 보험사기에 가담한 사실이 적발돼 금융감독원의 제재를 받았다. 27일 금감원에 따르면 최근 13개사의 전·현직 보험설계사 25명이 보험사기에 연루된 사실이 적발돼 과태료와 영업정지 등의 제재가 내려졌다. 삼성생명의 설계사는 실제 입원이 필요하지 않는데도 한 한방병원에서 좌측신경통을 동반한 요통 등의 병명으로 28일간 입원해 입퇴원확인서를 발급받아 제출하는 방법으로 866만 원의 보험금을 편취한 것으로 드러났다. 교보생명의 설계사는 모집과 관련해 받은 보험료와 대출금, 보험금을 다른 용도에 유용해서는 안 되는데도 불구하고 입금처리하지 않고 본인과 가족, 계약자의 유지보험료로 납입하는 방법으로 보험료를 유용하다 적발됐다. 업무정지 180일을 제재받은 DB손해보험의 설계사는 비교적 경미한 상해와 질병이 있는 상태에서 병원 사무장의 권유로 입원한 후 정상적인 입원치료를 받은 것처럼 위조한 진단서를 발급받아 제출하는 방법으로 보험금을 청구했다. GA 설계사가 홀인원 보험사기에 가담한 것도 적발됐다. 프라임에셋 보험대리점의 설계사는 골프 경기 중 홀인원을 한 뒤 홀인원 축하비를 카드 결제한 후 즉시 승인을 취소했는데도 카드 매출전표를 제출해 보험금을 받았다. 이밖에 메가 보험대리점의 설계사는 42건의 생명보험계약 모집과 관련해 보험계약자 42명에게 현금, 상품권 등 1,200만 원을 특별이익으로 제공했다 적발됐다. GA업계 1위인 지에이코리아 설계사들 역시 실제 입원이 필요하지 않은데도 병원과 공모해 과도하게 보험금을 편취받은 사실이 적발돼 1명이 등록취소되고 4명에 대해선 업무정지 180일이 내려졌다. 장슬기기자 jsk9831@wowtv.co.kr
검사 출신인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최근 민간 금융회사에 대한 압박성 발언을 쏟아내면서 또다시 ‘관치금융’이 부활하는 게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금융 선진화로 가는 길은 아직 멀기만 한데 관치금융 시도가 민간 금융사의 자율과 창의를 해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 정부에서도 금감원이 각종 금융사고와 민원에 대한 사후 검사·제재에만 몰두해 정작 사전 예방을 위한 감독 업무에 소홀했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최근 잇달아 터져 나오는 대형 은행과 저축은행 등 금융사 직원들의 횡령 사건도 같은 맥락이다. 금감원의 사전 감독 시스템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면서 금융 소비자와 금융사 양측 모두로부터 불신을 자초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27일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이 공개한 국제경쟁력 평가(총 63개국)에서 한국은 ‘은행 및 금융서비스’ 부문에서 47위로 전년보다 다섯 계단 내려갔다. 종합순위가 27위임을 감안하면 금융 후진성이 전체 국가경쟁력을 갉아먹고 있는 셈이다.한국경제신문이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을 통해 입수한 금감원 업무수행 만족도 조사에서도 이런 사실이 확인된다. 금감원이 지난해 효성ITX에 의뢰해 111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민원 및 분쟁조정 업무에 대한 평점은 69.6점(100점 만점)으로 겨우 낙제를 면한 수준이다. 지난 5년간 금감원의 분쟁조정 처리 기간은 최대 열 배 이상(은행 부문) 늘었고, 제재 결과 등에 불복해 금감원을 상대로 제기한 각종 행정·민사소송만 200여 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윤 의원은 “금감원은 금융사 분담금으로 운영하는 감독 서비스 제공 기관”이라며 “새 정부 첫 신임 원장의 최우선 과제 역시 (관치금융이 아닌) 금융사의 건전성 관리와 금융 소비자 권익 향상을 위한 개혁 과제 실천이 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이호기/김대훈 기자 hglee@hankyung.com
서울 여의도에 있는 금융감독원 건물 앞은 ‘시위꾼’들이 점령한 지 오래다. 어지럽게 내걸린 각종 현수막에는 금감원과 금융회사에 대한 분노와 저주가 가득 차 있다. 곳곳에 설치된 확성기와 스피커에서 이른 아침부터 퇴근 시간까지 고성방가가 이어지다 보니 금감원 직원은 일상 업무를 하기가 힘들다고 토로한다. 금융권 관계자는 “윤석헌 전임 원장 시절 강도 높은 사후 검사와 제재를 통해 금융사를 강하게 압박하다 보니 민원인들도 일단 ‘금감원 앞에 판을 깔고 보자’는 인식이 생긴 것 같다”고 했다. 또다시 드리우는 ‘관치금융’의 그림자새 정부 첫 금감원장에 윤석열 대통령의 신뢰와 지지를 받는 검사 출신 이복현 원장이 취임했지만 금감원의 ‘여의도 저승사자 DNA’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평가가 많다. 이 원장은 취임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이미 금감원 검사 및 제재가 종결된 ‘라임·옵티머스 사태’에 대해 “시스템을 통해 다시 볼 여지가 있는지 점검하겠다”며 재조사 의지를 나타냈다. 지난 20일 은행장들과의 간담회에서도 “(은행들의) 지나친 이익 추구에 대한 비판이 커지고 있다”고 질타했다. 이런 발언이 나오자마자 은행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예금금리를 올리고 대출금리를 내리는 등 납작 엎드리는 모습이다.이 같은 ‘관치금융’은 금융 선진국으로 가는 가장 큰 걸림돌이란 지적이 나온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63개국을 대상으로 국제경쟁력을 평가한 결과 한국은 ‘은행 및 금융서비스(banking & financial service)’ 부문에서 47위에 그쳤다.윤상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1인당 주식시장 시가총액(4위), 국내총생산 대비 은행 자산(8위), 1인당 신용카드 발급량(8위) 등 양적 지표에선 선진국 수준에 도달했지만 질적 차원에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했다.지난해 금감원 업무만족도 조사에서도 민원 및 분쟁조정 업무에 대한 점수는 69.1점으로 낙제점을 받았다. 분쟁조정 처리 기간이 늘어나고 그 결과 소비자 불만이 커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2017년 금융투자분야 금융분쟁 처리기간(인용 사건 기준)은 평균 49일에 불과했지만 2021년엔 127일로 늘어났다. 검사 후 처리에도 ‘하세월’피감기관인 금융회사들의 불만도 적지 않다. 검사가 끝난 뒤에도 징계·제재 절차가 길어지면서 경영에 큰 지장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윤 의원이 금감원으로부터 제출받은 ‘검사 종료 이후 절차가 진행 중인 목록’ 자료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기준 50건의 검사 종료 사건에 대해 징계 등 최종 처리가 이뤄지지 않았고, 검사 종료 후 경과 시간은 평균 555일에 달했다. 이에 따라 금융회사 직원들은 검사 종료 후에도 제재심의위원회 등에 제출할 소명 자료를 준비해야 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 윤 의원은 “민원처리 패스트트랙 도입을 검토할 시점”이라며 “보험민원 등 사실 확인이 필요한 경우 전문기관에 예비검토를 위탁해 처리 시한을 줄여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금융사나 민원인의 불복으로 소송을 당한 사례도 적지 않다. 2017년 이후 금감원장 혹은 금감원이 피고로 제기된 소송은 총 218건에 달했다. 피소 금액만 529억원 규모다.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감독 서비스의 핵심은 속도와 내용”이라며 “금융사의 신사업 허가를 회피하고 징계와 관련된 의사결정을 최대한 뒤로 미루는 감독 관행을 쇄신하는 게 금감원 개혁의 최우선이 돼야 한다”고 했다.김대훈/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