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금리 상승기 은행들의 ‘이자 장사’를 경고하자 연 7%를 웃돌던 국내 은행 주택담보대출 금리 상단이 1주일 새 0.6%포인트 떨어졌다. 그럼에도 가계대출에서 비중이 큰 변동금리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 금리는 여전히 오름세가 지속되고 있어 은행들이 금감원의 서슬에 눈치만 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요 은행들은 “대출 금리를 추가로 낮추기 위한 검토 작업에 들어갔다”면서도 “자금 조달 여건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어 오히려 금리를 인상해야 할 판인데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일단 고정금리 대출 상단부터 인하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의 혼합형(5년 고정형)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지난 24일 기준 연 4.75~6.515%로 17일(4.33~7.14%)에 비해 1주일 새 상단이 0.625%포인트 떨어졌다. 고정금리 주택담보대출 최고 구간이 연 7%를 넘겨 주목받던 우리은행도 최근 우대금리 폭을 확대하면서 최종 적용 금리가 하락했다는 분석이다. 반대로 고정금리 주택담보대출의 하단은 전주 대비 0.42%포인트 올랐다.
4대 은행의 변동금리(신규 코픽스 기준) 주택담보대출 금리도 24일 기준 연 3.69~5.781%로 한 주 전(3.69~5.681%)보다 상단이 0.1%포인트 높아졌다. 신용대출 금리는 연 3.871~5.86%(1등급, 1년 기준)로 0.1~0.35%포인트 올랐다.
대출 이자를 인하하라는 금융당국의 압박에 은행들이 진퇴양난에 빠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 원장은 20일 은행장 간담회에서 “금리 상승기에는 예대금리차(예금금리와 대출금리 차이)가 확대되는 경향이 있어 은행의 지나친 이익 추구에 대한 비판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은행들은 시장에서 결정되는 ‘지표 금리’가 오르고 있어 대출 금리를 낮추는 데 한계가 있다고 주장한다. 대표적 지표 금리인 은행채 금리는 큰 폭으로 뛰고 있다. 1년 만기 은행채 금리는 연 2.91%(17일)에서 연 3.14%(24일)로 0.23%포인트 올랐고, 고정금리 주택담보대출에 적용되는 5년 만기 금리도 연 3.84%에서 연 4.03%로 0.17%포인트 상승했다. 한 은행 관계자는 “최근 예대금리차에 대한 압박이 심해지고, 자금 확보 필요성이 커지자 은행 예·적금 금리가 경쟁적으로 올라가고 있다”며 “이처럼 예·적금 금리가 인상되면 코픽스 금리도 오르기 때문에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다시 높아지는 악순환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은행들 “조달비용 더 올랐다” 울상
은행들이 그동안 대출 금리 인하에 소극적이었던 것도 아니다. 올 들어 가계대출 잔액이 줄면서 시중은행은 영업 강화를 위해 우대금리를 복원하고, 가산금리를 낮췄다. 은행들은 이 원장의 압박 이후 우대금리를 추가 상향하거나 영업점장 재량으로 금리를 깎아주는 등의 방법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은행들이 추가로 대출 금리를 낮춘다고 하더라도 지표 금리 자체가 더 높아지면 효과가 미미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은행들은 서민이 주로 이용하는 전세대출 금리가 급격히 올랐다는 비판이 커지자 최근 우대금리 등을 통해 금리를 0.1~0.4%포인트가량 인하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코픽스와 금융채 금리가 오르면서 전세대출 금리 상단은 연 6%를 넘어섰다. 24일 기준 신한은행의 ‘신한전세대출’은 연 3.83%(신규 코픽스 기준)~6.04%(2년 만기 금융채 기준)에 달했고, 국민은행과 하나은행의 전세대출 최고 금리는 각각 연 5.74%, 연 5.704% 수준이다. 은행 관계자는 “금리를 낮추려고 해도 경기 침체에 대비해 충당금을 확충하라는 금융당국 주문과 상충한다는 것이 문제”라며 “단기적으로 금리를 낮추면 ‘쏠림 현상’이 빚어질 수 있어 방식과 폭을 고심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국내 금값이 국제 금값에 비해 상대적 강세를 보이고 있다. 달러화 가치가 가격에 반영된 데다 안전자산 선호도가 높은 국내 투자자의 수요가 맞물린 결과다.한국거래소 KRX금시장에 따르면 24일 1㎏짜리 금 현물의 g당 가격은 7만6270원을 기록했다. 올해 10.62% 올랐고, 이달 들어서는 2.36% 상승했다.국제 금시세와는 다른 양상이다. 올 들어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금 선물은 온스당 0.07% 하락했고, 이달 들어서는 0.89% 떨어졌다. NYMEX의 금시세는 국제 금시세의 바로미터로 여겨진다. 국제 금시세는 3월 초 정점을 찍고 우하향했지만 국내 금시세는 4월 다시 전고점을 회복해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국내 금시세와 국제 금값이 다른 움직임을 보이는 건 달러 강세와 차별적인 수요가 이유로 꼽힌다. 국내 금시세는 국제 금시세에 달러 환율을 반영해서 산출한다. 전날 원·달러 환율이 장중 1300원을 넘어서는 등 올 들어 달러화 가치는 계속 상승하고 있다.국내 투자자의 위험자산 회피 성향도 국내 금가격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코스피지수가 3.52% 떨어진 지난 13일 1㎏짜리 금 현물 거래대금은 159억원을 기록해 전 거래일보다 일곱 배가량 많았다. 김소현 대신증권 연구원은 “국내 금값이 국제 시세에 비해 견조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환율이 반영됐기 때문”이라며 “국내 투자자가 강한 위험회피 성향을 나타낸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이슬기 기자 surugi@hankyung.com
인플레이션과 통화긴축으로 채권 금리가 연일 치솟으면서 카드사 캐피털사 등 여신전문금융회사가 ‘돈맥경화’ 우려에 빠졌다. 여전사의 주요 자금 조달처인 채권시장이 급격히 위축되고 있어서다. 자금난에 처한 일부 중소형 캐피털업체는 규모가 큰 기업 대출을 한시적으로 중단하며 유동성 관리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24일 금융권에 따르면 자산 규모 기준 업계 중상위권인 A캐피털사는 최근 기업 대출 신규 취급을 중단했다. 업계 관계자는 “조달 환경이 워낙 흉흉하다 보니 자금 마련이 쉽지 않아 대규모 대출을 할 여력이 안 되는 것”이라고 했다.여전사들의 자금난은 채권 금리 급등에 따른 시장 위축 때문이다. 은행과 달리 수신 기능이 없는 카드·캐피털사는 회사채의 일종인 여신전문금융채권을 발행해 운영 자금을 조달한다. 그런데 지난해 말 기준금리 인상이 시작되고 올 들어선 그 속도가 급격히 빨라지면서 여전채 금리도 하루가 다르게 급등했다. 채권 금리가 오르면 발행사의 부담은 커진다.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신용등급 AA+인 여전채 3년물 금리는 전날 연 4.467%로 올 들어서만 2%포인트 넘게 뛰었다. 대형 캐피털사가 주로 분포한 AA-등급 3년물 금리는 연 4.695%까지 올랐다. 2011년 10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여전채 금리가 유독 치솟으면서 국고채와의 격차(스프레드)도 1년 전 0.33%포인트에서 전날 0.86%포인트까지 벌어졌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금리가 급등하고 유동성이 말라붙으면서 체감하는 시장 상황은 금융위기 수준”이라고 했다.자금 마련에 비상이 걸린 여전사들은 앞으로의 금리 상승분까지 채권 이자에 반영하는 변동금리부채권(FRN)이나 단기 기업어음(CP)을 발행하며 급한 불을 끄고 있다. 지난달 카드사는 전체 채권 발행 규모의 40%에 이르는 8700억원을 FRN으로 조달했다. 그만큼 향후 이자 비용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채권에 비해 만기가 짧은 CP 발행도 크게 늘었다.금리 급등으로 카드·캐피털사의 수익성과 건전성에도 상당한 타격이 예상된다. 한국신용평가는 기준금리가 올해 연 2%, 내년에 연 2.5%로 오를 경우 국내 7개 카드사와 29개 캐피털사의 이자비용이 내년에 각각 4800억원, 1조4300억원까지 불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각각 추정 세전이익의 16.7%, 30.5%에 이르는 규모다.빈난새 기자 binthere@hankyung.com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오늘(23일) 국내 연구기관장들과 만나 "미증유의 퍼펙트 스톰(복합적 위기)이 밀려올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이 원장은 이날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연구기관장들과 간담회를 열고 "원자재 전반의 공급부족에 수요급증이 가중되고 정보통신·교통의 발달로 전세계 가치사슬이 상·하류에서 서로 복잡하게 얽혀있어 위기가 빠르게 전파될 수 있는 점 등을 고려하면, 훨씬 큰 위험이 닥쳐올 수 있다"며 이 같이 말했다. 이 원장은 이에 대비해 금융회사의 건전성 관리 강화, 금융시스템 복원력 제고, 금융선진화를 통한 경쟁력 지원 등을 강조했다. 그는 "전례없는 복합적 위기 상황에서는 기존의 시각이나 감독수단으로는 다가오는 위험을 놓칠 수 있다"며 "조그마한 리스크에도 확대가능성을 경계하고 잠재된 위험이 가까이 와있을 수 있음을 유념하며 시장 참여자들의 우려 목소리에도 귀기울이겠다"고 말했다. 은행의 공적 역할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이 원장은 "시장의 자율적인 금리 산정에 대해 간섭할 의사도 없고, 간섭할 수도 없다"면서도 "다만 은행의 공공적 기능은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고 그와 관련해 감독당국도 역할과 권한이 있기 때문에 그에 기초해 의견을 주고 받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서민 또는 취약계층이 금리인상, 자산시장 가격조정으로 과도한 상환부담을 겪지 않도록 연착륙 방안을 적극 모색하는 등 정책집행의 균형도 잃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장슬기기자 jsk9831@wowtv.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