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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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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EA 사무총장 “탄소중립, 원전 제외해서는 안 돼”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윤석열 정부의 탈원전 폐기 정책을 공식 지지했다. IEA가 윤석열 정부가 역점 추진하는 원전 강화 정책에 대해 공개적으로 지지 의사를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파티 비롤 IEA 사무총장(사진)은 지난 6월 8일 덴마크 쇠네르보르에서 열린 ‘2022 IEA 에너지총회’에서 한국경제신문과 단독 인터뷰를 통해 “전 세계 국가의 에너지 정책 중심이 원자력으로 복귀하는 추세”라며 “새롭게 출범한 한국 정부가 원자력에 대해 지닌 ‘새로운 시각’에 동의한다”고 말했다.

K-택소노미 원전 제외 재고해야

1976년 출범한 IEA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하 에너지협의체로, 에너지 분야에서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한다. IEA는 세계 각국의 에너지·기후 분야 관료와 전문가들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지난 6월 7일부터 9일까지 쇠네르보르에서 에너지총회를 열었다.

비롤 사무총장은 “탄소중립과 기후변화에 제대로 대응하기 위해선 우리의 선택지에서 원전을 제외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에너지믹스(에너지원 혼합)’ 정책에서 원전을 활용하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비롤 사무총장은 “최근 에너지 안보에 대한 우려로 유럽 국가들도 다시 원전을 강화하고 있다”며 “한국 정부가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는 데 원전이 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은 원전을 절대로 폐쇄해선 안 되고, 운영 및 투자를 계속해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미국 유럽과 달리 한국은 자연환경상 태양광이나 풍력 등 재생에너지에 의존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만큼 원전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와 함께 그는 원전이 배제된 한국의 ‘K-택소노미(녹색 분류체계)’도 다시 짜야 한다고 지적했다. K-택소노미에 포함된 에너지원은 친환경에너지원으로 인정받아 정부와 금융권의 자금 지원 등을 받을 수 있다. 문재인 정부가 지난해 12월 탈원전 정책을 명분으로 K-택소노미 최종안에서 원전을 뺀 것을 재고해야 한다는 것이 비롤 사무총장의 조언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과 맞물려 두산, 삼성, SK, GS 등 국내 주요 대기업의 소형모듈원전(SMR) 사업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새 정부는 ‘탈원전 정책 폐기 및 원자력 산업 생태계 강화’를 국정과제로 선정하면서 정책 지원에 나설 태세다.

두산에너빌리티, GS에너지, 삼성물산은 SMR 사업 역량을 확보하기 위해 지난 4월 세계 1위 SMR 기업인 미국의 뉴스케일파워와 SMR 발전소를 공동 건설·운영하는 내용의 양해각서(MOU)를 맺었다.

뉴스케일파워는 세계 1위 SMR 기업으로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로부터 유일하게 설계 인증을 받았다. SMR은 대형 원전과 비교해 10~20분의 1 크기인 소형 원전이다. 영국 국립원자력연구소는 SMR 시장이 2035년까지 연간 150조원 규모로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SK㈜와 SK이노베이션 등 SK그룹도 5월 미국 SMR업체인 테라파워와 포괄적 사업 협력을 위한 MOU를 체결했다. 테라파워는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가 2008년에 설립한 회사다. 차세대 원자로인 SMR의 소듐냉각고속로(SFR) 설계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달 한미 정상회담에서 ‘원전 동맹’을 공식화하면서 한국 기업의 SMR 수출 역량도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 기업들은 새 정부의 정책과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중국과 러시아가 장악하던 원전 시장에서의 주도권을 되찾아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오일쇼크’보다 심각한 에너지 대란 우려

한편 IEA 총회에선 미국과 유럽에서 석유, 가스 등 에너지 부족 현상이 갈수록 심해지면서 1970년대 오일쇼크보다 훨씬 심각한 위기가 찾아올 것이란 우려도 제기됐다. 코로나19와 러·우 전쟁으로 촉발된 에너지 대란이 올여름 휴가철에 극에 달할 것이란 관측이다. 이번 위기를 계기로 원전 등을 앞세운 새로운 에너지 정책을 세워야 한다는 데 각국이 의견을 같이했다.

파티 비롤 IEA 사무총장은 “유럽은 배급제를 도입해야 할 정도로 에너지 위기가 심각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드라이빙(휴가철) 시즌이 다가오면서 경유, 휘발유, 항공유 모두 공급이 부족해질 것”이라며 “천연가스 역시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이번 겨울은 굉장히 길고 추울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유럽연합(EU)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제재의 일환으로 최근 러시아산 석탄과 석유를 금수하기로 했다. 조만간 천연가스 수입을 중단하는 방안도 논의할 예정이다. IEA는 이날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를 없애기 위한 구체적 로드맵을 공개했다. 내년까지는 태양광·풍력발전에서 35TWh의 발전량을 추가로 확보하고, 2030년 전까지 EU의 러시아에 대한 가스 의존도를 ‘제로’로 만든다는 것이 골자다. 로드맵의 마지막 단계는 2040년이다. 세계 빌딩 중 절반에서 탄소중립을 이루고, 석탄·석유로 돌아가는 모든 화력발전소를 폐쇄하는 것이 궁극적 목표다.

대체 에너지원을 마련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도가 워낙 높은 탓이다. 현재 러시아 국영 가스 기업 가스프롬은 폴란드, 핀란드, 네덜란드 등 일부 유럽 국가에 가스 공급을 차단하고 있다. 이는 유럽 역내 에너지 수급 불안, 에너지 가격 폭등으로 이어지는 모양새다.

비롤 사무총장은 “배급제를 피하는 방법은 단시간에 에너지 사용 효율을 높이는 것뿐”이라며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를 줄이고, 이번 위기를 전환점 삼아 새로운 에너지 정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IEA 사무총장 “탄소중립, 원전 제외해서는 안 돼”
쇠네르보르(덴마크)=남정민 한국경제 기자 peu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