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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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6월과 7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5월(5.4%)보다 높을 것"이라며 "가파른 물가상승 추세가 바뀔 때까지 물가 중심으로 통화정책을 운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기준금리 추가 인상을 시사한 것이다. 이 총재는 그러나 "물가만 보고 빅스텝(기준금리를 한 번에 0.5%포인트 인상)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총재는 21일 서울 태평로 한은 본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한 달 전에 비해 인플레이션 위험이 커졌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날 기자간담회는 한은이 매년 6월과 12월 두 차례 내놓는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보고서 발표에 맞춰 이뤄졌다.

이 총재는 "올해 들어 물가 오름세가 가파르게 높아지고 있다"며 "연초 3%대 중반을 기록하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월 중 4%를 웃돈 데 이어 불과 두 달 만에 5%를 상당폭 상회하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나타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앞으로의 물가 흐름은 우크라이나 사태 전개 양상, 국제원자재가격 추이, 물가상승에 따른 임금 상승 정도 등과 관련한 불확실성이 큰 상황이지만 전반적으로 상방 리스크가 우세해 보인다"며 "지난달 금통위 이후 4주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간 적지 않은 물가 여건의 변화가 있었다"고 했다.

이어 "미국의 인플레이션 정점 기대가 당초 예상보다 늦춰지면서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커졌다"며 "또한 EU의 러시아산 석유 수입 제한 등으로 수급 차질 우려가 커짐에 따라 국제유가가 지난 금통위 직전 109달러 수준에서 6월 들어 평균 120달러 내외로 크게 상승하면서 지난 전망 당시의 전제치를 상당폭 웃돌고 있다"고 전했다.

이 총재는 " 이미 단기 기대인플레이션이 물가 목표인 2%를 넘어 3%를 상회하고 있는 가운데 장기 기대인플레이션은 2% 수준까지 상승했다"며 "국내외 물가 상승압력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적절히 제어하지 않을 경우 고물가 상황이 고착화될 수 있다"고 했다.

동시에 경기 침체 우려도 내비쳤다. 이 총재는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 중국의 성장 둔화, 주요국의 금리인상 가속 등으로 연말로 갈수록 글로벌 경기의 하방 압력이 커질 수 있다"며 "향후 국내 경기의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물가와 성장 간 상충관계가 더욱 커질 수 있다"고 했다.

이 총재는 "앞으로의 통화정책은 물가, 경기, 금융안정, 외환시장 상황 등 향후 발표되는 경제지표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서 데이터에 근거해 유연하게 수행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하지만 현재와 같이 물가 오름세가 지속적으로 확대되는 국면에서는 가파른 물가상승 추세가 바뀔 때까지 물가 중심으로 통화정책을 운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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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총재는 6월과 7월 소비자 물가상승률이 14년 만에 최고치(5.4%)를 기록한 5월보다 높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 총재는 "6·7월 물가상승률이 6%를 넘을지에 대해서는 확신하기 어렵다"면서도 "지난달 금통위 예상보다 유가 상승 속도와 국내 전파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지난달 예상했던 물가상승률보다 높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물가상승률이 6%를 넘어가면 빅스텝을 할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빅스텝은 물가 하나만 보고 결정하지는 않는다"며 "물가가 올랐을 때 경기에 미치는 영향과 가계 부채 부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금통위원들과 상의해서 결정할 것"이라고 답했다.

이 총재는 한국 경제의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 가능성에 대해서는 "한 달 전에 비해 인플레이션 위험이 커진 것은 사실"이라며 "아직 잠재성장률인 2% 이상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한은은 이날 발표한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보고서에서 "향후 물가 흐름은 국제유가 상승세 확대 등 최근 여건 변화를 고려할 때 지난 5월 전망 경로(연간 4.5%)를 상회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물가 급등기였던 2008년의 4.7%를 넘어설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