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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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금융권 건전성 관리 기준을 제시하는 국제결제은행(BIS)이 디파이(탈중앙 금융)을 정조준하고 나섰다. 신용평가를 통해 예금주들의 돈을 최적의 차주에게 공급하는 금융 본연의 역할을 지키기는 커녕 담보의 4배에 달하는 암호화폐를 빌려주면서 투기를 부추겼다는 비판이다. 익명인 소수 채굴자와 검증인 중심으로 돌아가는 지배구조 때문에 ‘불공정거래’가 관행처럼 자리잡았다는 지적도 나왔다.
"LTV 300%가 말이 되냐"…디파이 정조준한 BIS
BIS는 이번 테라 폭락 사태와 암호화폐 은행인 셀시우스 네트워크의 출금 중단 사태를 계기로 14일과 16일 연달아 짤막한 리포트를 발간하면서 디파이 대출과 지배구조를 조목조목 비판했다. BIS는 “테라 블록체인의 앵커 프로토콜과 셀시우스 네트워크 등 디파이 대출은 암호화폐의 신뢰성을 뒤흔들었다”고 평가했다.

BIS의 비판 포인트는 디파이의 ‘익명성’이다. 대출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신용도를 제대로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이다. BIS는 “핀테크의 경우 차주의 신용도를 여러 비금융 데이터를 통해 기존 금융권보다 정교하게 평가하면서 금융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며 “디파이는 이와 정반대 방향으로 나아간 것”이라고 비판했다.

디파이 대출은 익명성 때문에 ‘코인담보대출’로만 가능하다. BIS는 담보로 맡긴 암호화폐도 실물자산에 근거를 두고 있지 않을 뿐더러 담보인정비율(LTV)의 4배까지 레버리지를 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통상 디파이 대출 서비스의 최대 담보인정비율(LTV)은 66%~83% 수준이라는 게 BIS의 분석이다.
BIS 보고서에 담긴 분석
BIS 보고서에 담긴 분석
문제는 디파이에서 대출받은 코인을 다시 담보로 맡기고 대출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LTV가 83%인 디파이에서 담보제공→대출→담보제공을 10차례 반복하면 LTV의 300%까지 대출을 일으킬 수 있게 된다. BIS는 “암호화폐가 상승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며 “하락장에서는 순식간에 붕괴하는 이유”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대출은 실물자산을 담보로 발행한 코인으로만 내줘야한다”며 “익명성도 포기하고 규제권 우산 아래에서 개인 신용점수에 근거해 대출을 해야한다”고 권고했다.
작년 11월 예치금이 2495억달러에 달했던 디파이는 현재 686억달러까지 쪼그라들었다.  출처=Defilama
작년 11월 예치금이 2495억달러에 달했던 디파이는 현재 686억달러까지 쪼그라들었다. 출처=Defilama
BIS는 소수 익명 중심으로 의사결정이 내려지는 코인의 지배구조에 대해서도 비판을 이어갔다. 16일 보고서에서 “비트코인과 이더리움도 소수의 채굴자, 검증인(validator)이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불공정거래를 벌일 수 있다”며 “기존 금융기관들은 중개자로서 투자자 이익을 최우선으로 둬야한다는 의무가 있지만 코인은 그렇지 않다”고 지적했다. BIS는 “동시호가가 불렸을 때도 가장 먼저 계약이 체결되는 등 익명의 소수 중심으로 블록체인이 짜여있다”고 했다. 이런 특혜로 이더리움에서만 6억달러에 달하는 이익을 누렸다는 게 BIS 분석이다.

초기 ICO(코인 발행) 비중이 50%에 달하는 바이낸스USD와 솔라나(48%), 테라(46%) 등 상당수 코인이 익명의 검증인 중심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불공정거래가 발생하는 이유는 모두 채굴자들과 검증인들의 ‘익명성’이 보장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박진우 기자 jw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