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한국은행이 16일 '경영혁신 방안'을 발표했습니다. 지난 2020년 창립 70주년을 맞아 세운 중장기 발전 전략인 'BOK 2030'의 일환으로 추진된 일로 3년에 걸쳐 완성됐습니다. 전임 이주열 총재 시절 머서코리아, 맥켄지컴퍼니 등 글로벌 컨설팅 업체의 자문을 거쳤고, 새로 취임한 이창용 총재의 의견도 반영됐다고 합니다.

경영혁신 방안은 조직의 수평적 문화를 확산해 역동성을 끌어 올리고 한은 직원의 전문성을 강화하는 방향이 핵심입니다. 한은은 지금까지 직원 개인의 성과보다는 팀 단위의 성과를 강조했다고 합니다. 예컨대 연구 보고서를 만들 때 일반 직원인 원저자의 의견이 수직적 결재 과정에서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 총재가 지난 10일 한은 72주년 창립기념식에서 "한은은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중압감 때문에 행여 정책적 함의나 대안 제시가 불러올 논쟁을 피하려 하지는 않았는지, 그래서 현황에 대한 단편적, 기술적 분석으로만 끝내려는 경향은 없었는지 자문해 보자"고 했던 것도 이런 분위기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는 다양한 리뷰 과정을 통해 원저자의 의견과 상급자, 유관 부서의 의견이 공유되는 방식으로 바뀝니다. 이 과정을 통해 활발한 토론과 논쟁이 있을 것으로 한은은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 총재 역시 "계급장 떼고, 할 말은 하는 문화를 만들자"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 팀 단위로 작성된 연구보고서는 개인의 이름을 걸고 작성하도록 했습니다. 평가 역시 수평적이고 구체적으로 바꿔 직원들의 평가 수용도를 높이기로 했습니다. 엄격한 상대평가 방식이었던 점수 부여 방식을 폐지하고, 5개 성과 등급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개편합니다. 또 부서 및 팀에 대한 집단업적평가를 폐지하고, 평가면담을 활성화할 예정입니다. 팀원들이 상급자를 평가하는 리더십 리뷰와 동료들끼리 서로 평가하는 제도를 강화해 성과 평가 때 참고하기로 했습니다.

각자 분야에서 전문성을 축적할 수 있도록 전문가 경로 제도도 신설됩니다. 3급 이상의 직원들을 대상으로 전문가 경로 지원을 받지만, 성과가 저조하거나 리더십 리뷰 결과 등이 불량한 경우 직책 보임 해제도 가능하게 하면서 평가와 보상을 확실히 하도록 했습니다.

전문가 경로의 직원들은 경쟁을 통해 직급 승진이 될 수 있고, 동일 직급의 관리자와 유사한 수준의 보수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또 전문 분야 관련 국내 기관 근무 기회, 국내외 연수 기회 및 연구환경 등을 인센티브로 제공하기로 했습니다.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한은은 일반적으로 40대 중반이 된 3급이 되어서야 '팀장'이라는 관리자에 오를 수 있는데요. 이번 경영혁신 방안에는 4~5급 이하 직원들에게도 리더로서의 역량을 발휘할 기회를 늘리는 안도 담겼습니다. 임시조직(TF) 등의 구성을 활성화해 이 자리에 4~5급 직원들이 리더로 선임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한은 관계자는 "개인의 성취를 중시하는 젊은 직원들의 호응이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습니다.

간부들의 권한도 하부로 위임하기로 했습니다. 총재·부총재의 권한을 부총재보에게, 부총재보는 국장, 국장은 부장에게 직책별 권한을 나눠주는 것입니다. 배준석 한은 부총재보는 "관리자들이 주어진 권한 범위 내에서 책임 경영을 수행하면서 결재 단계가 불필요하게 중첩되는 중층화를 방지하고 의사결정 신속성 확보 등 업무 효율성을 제고할 수 있을 것"이라며 "중간관리자의 역할을 강화해 젊고 유능한 관리자가 배출될 수 있는 체계"라고 설명했습니다.

그간 방만한 경영을 해왔단 지적이 있던 지역본부 역시 '지역사회의 싱크탱크'로의 변신을 추진합니다. 이는 이 총재가 취임 전부터 강조해온 일이기도 합니다.

국내 최고의 전문가들이 모인 한은은 지금까지는 존재감이 없다는 외부의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번 경영혁신 실험으로 어떤 변화된 모습을 보일지 주목됩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