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주요국들이 탄소중립 대안으로 이산화탄소 배출이 없고, 기존 대형 원전보다 안전성도 뛰어난 소형모듈원자로(SMR)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사진은 美 뉴스케일사의 SMR 플랜트 조감도. /두산에너빌리티 제공
전 세계 주요국들이 탄소중립 대안으로 이산화탄소 배출이 없고, 기존 대형 원전보다 안전성도 뛰어난 소형모듈원자로(SMR)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사진은 美 뉴스케일사의 SMR 플랜트 조감도. /두산에너빌리티 제공
전 세계 주요국들이 탄소중립 대안으로 소형모듈원자로(SMR)를 주목하고 있다. SMR은 이산화탄소 배출이 없으며, 기존 대형 원전보다 안전성도 뛰어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화석연료의 대안을 마련하려는 움직임이 분주해지면서 SMR 주가가 한층 더 높아졌다. 영국 국립원자력연구원은 SMR 시장 규모가 2035년까지 65~85GW(기가와트)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왜 지금 SMR인가

美 뉴스케일
SMR 단면
美 뉴스케일 SMR 단면
SMR은 ‘small modular reactor’의 약자로, 전기 출력이 300㎿(메가와트)급 이하인 소형 원전을 의미한다. 기존 대형 원전 출력(1000~1500㎿급)의 3분의 1에서 5분의 1 이하 규모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300㎿급 이하를 소형원자로, 700㎿급 이하를 중형원자로로 분류한다. SMR은 송전망이 충분하지 않거나 외딴 지역에 소규모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개발됐다. 크기를 작게 하기 위해 대형 원전의 핵심 기기인 원자로, 증기발생기, 냉각재 펌프, 가압기 등을 하나의 용기에 넣은 원자로 모듈 형태로 일체화했다.

SMR은 여러 개 모듈의 전원을 개별적으로 끄고 켤 수 있어 출력 조절에 유연성이 높다. 풍력,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보완하기 위한 이산화탄소 배출 없는 백업(back-up) 전원으로 활용 가능하다. 외부 전력이 필요한 펌프를 이용해 냉각재를 순환시켜야 하는 대형 원전과 달리 자연 대류를 통해 냉각재를 순환시킬 수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전력이 끊기거나 운전원의 별도 조작이 없어도 안전성이 확보된다. 냉각재는 원자로 냉각에 사용되는 물질을 뜻한다. 기존 원전은 핵분열 과정에서 발생하는 열로 물을 끓여 증기를 만들고 이 증기로 터빈을 회전시켜 전기를 생성한다. 핵분열에서 생성된 열을 증기발생기로 운반하는 물질이 원자로를 계속 식혀주는 역할을 해 냉각재로 부른다. SMR은 공장에서 모듈로 제작할 수 있어 건설 시간과 비용이 적게 든다. 건설 부지 면적도 적어 운전 수명을 다한 석탄화력발전소 부지에 건설하는 것도 가능하다.

지금은 SMR 춘추전국시대

IAEA에 따르면 전 세계 약 70개 노형의 SMR이 개발되고 있다. SMR ‘춘추전국시대’가 펼쳐지며 한국 기업들의 움직임도 분주하다. 두산을 비롯해 삼성, 현대, GS, SK 등이 SMR 개발사와 손잡고 SMR 시장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특히 두산에너빌리티(옛 두산중공업)는 국내 유일의 원전 기자재 제작 기업이라는 점에서 다른 기업과 차별점이 있다. 원전 주기기 설계제작 경험을 바탕으로 미국 SMR 개발사 뉴스케일파워와 지난 4월 SMR 주기기 제작을 위한 협약을 체결하는 등 SMR 분야의 한·미 기업 간 협업에서 한발 앞선 행보를 보이고 있다.

SMR 개발사들은 설계인허가부지 선정 등 SMR 건립을 위한 절차와 함께 모듈 등 기자재 발주가 필요하다. 이르면 내년부터 SMR 기자재 시장도 확대될 전망이다. 업계에 따르면 원전 기자재 제작이 가능한 국가는 한국을 비롯해 캐나다, 프랑스, 일본, 러시아, 중국, 스페인 등으로 많지 않다.

한국에선 유일한 원전 주기기 제작사인 두산에너빌리티가 SMR 기자재 시장 선점에 나서겠다는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한국이 아랍에미리트(UAE)에 수출한 한국형 대형원전인 ARP 1400의 주기기를 비롯해, 1997년 캐나다 원전 노형(Candu 6 PHWR)인 중국 진산 원전 3단계 12호기의 증기발생기와 열교환기 등을 수주하며 중국 원전 시장에 진출했다. 2005년에는 중국 원전 노형인 진산 원전 2단계 3호기의 원자로를 수주했다.

이어 미국 AP1000 모델의 산먼 원전 1호기, 하이양 원전 1호기의 증기발생기와 원자로를 제작해 2012년 성공적으로 납품했고, 미국 보글 원전 3·4호기, 브시 섬머 원전 2·3호기의 증기발생기와 원자로도 공급했다.

SMR도 다 같은 SMR이 아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소형모듈원자로(SMR)는 크게 네 가지 형태로 분류된다. 사용하는 냉각재와 연료에 따라 경수로형, 고온가스형, 용융염냉각형, 소듐냉각형으로 분류하며 형태별로 특장점을 갖는다.
美 뉴스케일사의 SMR 플랜트 가상 조감도. /두산에너빌리티 제공
美 뉴스케일사의 SMR 플랜트 가상 조감도. /두산에너빌리티 제공
경수로형 SMR은 냉각재로 물을 사용하는 원자로다. 대형원전의 경수로 기술을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 덕에 인허가가 쉽게 떨어진다. 개발사로는 미국 뉴스케일파워와 영국 롤스로이스 등이 있다. 두 회사는 각국 정부의 조 단위 투자를 바탕으로 건설 인허가를 빠르게 진행하고 있다. 특히 뉴스케일파워는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로부터 2020년 표준설계인증을 얻어내 2029년 상용화가 예상된다. 미국 정부로부터 부지 제공, 개발 자금, 초도호기 건설비, 정부 간 협약 등 강력한 지원을 받고 있다.

한국에서도 두산에너빌리티, 삼성물산, GS에너지 등이 뉴스케일파워에 지분을 투자하며 사업 개발에 협력하고 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지분 투자를 통해 뉴스케일파워로부터 수조원 규모의 기자재 공급권을 확보했다. 2019년 SMR 제작성 검토 용역을 수주받아 작년 1월 완료했고, 현재 시제품을 제작하고 있다. 현대건설도 경수로형 SMR 사업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이 회사와 협약을 체결한 미국 홀텍사는 사막이나 극지에서도 쓸 수 있는 160MW급 경수로형 소형 모듈 원자로(SMR-160)를 만들고 있다.

고온가스형 SMR은 헬륨을 냉각재로 사용한다. 비활성 기체인 헬륨을 냉각재로 사용하기 때문에 섭씨 1000도 수준의 초고온에서도 화학반응이 없다. 이와 함께 기존 경수로 원전 원료 대비 우라늄 농축도가 높은 삼중피복(TRISO) 핵연료를 사용한다. 테니스 공 크기 핵연료를 세라믹 등으로 3중 코팅해 외부 전원이 상실되거나 운전원 조치가 불가능한 극한 상황에서도 노심 용융이 발생하지 않는다.

두산에너빌리티는 뉴스케일파워 외에 미국 엑스에너지가 개발 중인 고온가스형 SMR에서도 주기기 제작 설계를 맡았으며, 주기기 제작에 참여를 추진 중이다. 엑스에너지가 개발하는 고온가스로 SMR(모델명 Xe-100)은 총 발전용량 320㎿ 규모로, 80㎿ 원자로 모듈 4기로 구성돼 있다. 운전 중 750도 헬륨으로 가열된 물이 565도의 증기로 변해 터빈을 가동한다. 기존 물을 냉각재로 하는 경수로(증기 온도 275도) 대비 고온 운전이 가능해 전력 생산 효율이 상대적으로 높고 경제적으로 수소를 생산할 수 있다. 현대엔지니어링도 캐나다 정부, 한국원자력연구원, 미국 SMR 개발사인 USNC 등과 공동으로 캐나다에서 고온가스로 SMR 건설에 나설 예정이다. 2025년까지 캐나다 초크리버에 실증 플랜트 건설 및 시운전 완료를 목표로 하고 있다.

용융염냉각형 SMR은 핵연료가 냉각재에 녹아 있는 형태의 용융염을 연료로 활용하는 방식으로 액체연료 원자로라고 불린다. 용융염이 핵연료의 방사성 물질을 구속하고 핵분열 생성물이 운전 중에 지속적으로 제거돼 원자로 정지 시 잔열도 고체 핵연료 대비 40% 정도로 낮아 고유 안전성이 높다. 연료와 냉각재를 한데 뭉쳐놓기 때문에 SMR의 가장 큰 장점인 소형화를 극대화할 수 있어 ‘선박용 SMR’도 개발 중이다. 용융염원자로 개발사인 덴마크 시보그는 지난 4월 삼성중공업과 해상 원자력 발전 설비 개발을 위한 기술협력 양해각서(MOU)를 맺었다. 미국선급협회(ABS)가 선박 적용 타당성 조사를 2020년 완료했으며 이르면 2025년 상용화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주기율표의 11번째 원소 Na(나트륨)인 소듐을 냉각재로 활용하는 소듐냉각형 SMR 중에선 빌 게이츠가 투자한 미국 테라파워가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지난달 SK그룹은 테라파워와 포괄적 사업 협력을 위한 MOU를 맺었다. SK그룹은 테라파워의 SMR 기술, 방사성 동위원소 생산 역량과 SK의 사업 영역을 연계해 다양한 협력 기회를 발굴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출처=두산에너빌리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