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뒤집기 위한 에너지기본계획 작성에 착수했다. 최근 전문가 90여 명으로 에너지기본계획 제정위원회를 꾸려 원전 비중 확대를 위한 밑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파악됐다. 정부는 연내 새로운 에너지기본계획을 만들고 이를 토대로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 신규 원전 건설 등을 추진한다.

27일 한국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산업통상자원부와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지난달 ‘원전 복원’ 구상을 담은 ‘4차 에너지기본계획’ 제정 작업을 시작했다. 에너지기본계획은 에너지 분야 최상위 법정 계획이다.

에너지기본계획 제정위는 △공급 △인프라 △에너지 효율 △수요 예측 등 4개 분과로 구성됐다. 분과별로 전문가 20여 명이 참여하고 있다. 학계·산업계·연구기관·정부 관계자 등이 총망라된 것으로 알려졌다. 위원회는 ‘탄소중립 이행을 위해 원전을 활용한다’는 내용을 에너지기본계획에 구체적으로 담을 예정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원전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정해진 에너지기본계획을 원전 중심으로 다시 쓰겠다는 것이다.

중장기 국가 에너지계획을 담는 에너지기본계획은 5년 단위로 수립·실행한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2024년 4차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하지만 산업부는 원전 중심의 에너지계획을 짜기 위해 4차 계획을 올해로 앞당긴다는 방침이다. 이에 근거해 연내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 원전 계속운전 등 원전 확대 방안을 담는다. 에너지기본계획 내용에 따라 신규 원전 건설 계획도 전력수급기본계획에 포함될 수 있다.
원전 비중 35% 이상 땐 신규 건설 가능해져
에너지업계가 연내 수립될 4차 에너지기본계획에 주목하는 이유는 원전 비중의 목표치가 제시될 수 있어서다. 2008년 수립된 1차 계획에는 원전 비중이 2030년까지 41%로 제시됐다. 2014년 2차 계획에는 원전 비중이 29%로 축소됐다. 문재인 정부는 2019년 수립한 3차 계획에서 신규 원전을 건설하지 않고, 노후 원전 수명을 연장하지 않는 등 원전을 점진적으로 축소한다는 내용을 담아 ‘탈원전’을 명문화했다.

에너지업계는 윤석열 정부가 원전 부활을 선언한 만큼 4차 계획에 원전 비중 목표치가 제시될 것으로 보고 있다. 만약 원전 비중이 35% 이상으로 제시되면 신규 원전 건설이 필요하다. 이 경우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신규 원전 건설이 포함될 수 있다는 게 원전업계의 분석이다.

정부가 에너지기본계획의 밑그림을 서둘러 마련하고 있지만 탈원전 폐기의 문턱은 여전히 높다. 지난 3월 탄소중립 실행을 위한 법정 절차 등을 담은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이 시행돼 ‘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이 폐기됐기 때문이다. 녹색성장 기본법은 에너지기본계획의 근거법이어서, 최상위 에너지계획의 법적 근거가 사라진 셈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에너지기본계획의 근거법을 에너지법으로 이관하면 된다. 현재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에너지법 일부 개정 법률안(임종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돼 있다. 하지만 국회 논의는 지지부진하다. 정부 입법을 통해서 최상위 에너지계획의 법적 근거를 마련할 수 있지만, 이 또한 국회 문턱을 넘어야 한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에너지기본계획 제정위원회를 서둘러 구성한 것도 원전 복원의 방향성을 담은 기본계획을 미리 짜놓고, 추후 법적 근거가 마련되는 대로 4차 에너지기본계획을 수립하는 구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절차 문제가 계속해서 에너지 정책 전환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며 “에너지기본계획의 법적 근거가 만들어지지 않으면 윤석열 정부의 원전 복원 구상 자체가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지훈 기자 liz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