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 넘게 차기 금융위원장 유력 후보 신분에 머물러 있는 김주현 여신금융협회장.  /사진=연합뉴스
한달 넘게 차기 금융위원장 유력 후보 신분에 머물러 있는 김주현 여신금융협회장. /사진=연합뉴스
김주현 여신금융협회장이 차기 금융위원장 유력 후보로 거론된 지도 벌써 한달여가 지났습니다. 통상적으로 이 정도면 인사 검증 등에서 문제가 생겨 내부적으로 '선수 교체'가 진행 중이라거나 국회 및 시민단체 등의 반대로 대통령의 지명 자체가 쉽지 않은 상황이어야 하는데 어디서도 그런 얘기는 들려오지 않습니다.

이처럼 이례적인 장면이 연출되고 있는 것은 코앞으로 다가온 지방선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이제 막 출범한 윤석열 정부가 여소야대 국면을 돌파하고 향후 국정 추진동력을 얻기 위해 여당인 국민의힘의 승리가 절실하다는 점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때마침 청와대 개방과 한·미정상회담 등 굵직한 이벤트 효과로 국민 여론도 여당에 유리하게 흘러가고 있는 만큼 대통령실 역시 '부자 몸조심'에 유념해야겠지요.

대통령실의 이런 태도를 엿볼 수 있었던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보건복지부·교육부·식품의약품안전처 등 3개 부처 장차관 인선이었습니다. 모두 여성 후보를 내세운 이번 인사에 대해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조차 "(윤 대통령의) 순발력이 보통이 아니다"라고 혀를 내둘렀을 만큼 성공적이었다는 평가입니다.

금융위 내부에서 만약 김주현 회장이 여성이었다면 이번에 함께 발표됐을 것이라는 자조섞인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일반적으로 인사청문회 대상인 장관 후보자가 지명되면 곧바로 언론 및 야당의 검증이 시작됩니다. 하지만 야당이 내각에 여성 장관이 없다고 공격해왔던 만큼 이들 후보에 대한 검증의 칼날이 아무래도 무뎌질 수밖에 없겠지요,

김 회장도 오랜 기간 관료 생활을 해온 만큼 신상에 별다른 문제가 없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지만 굳이 지방선거 전에 리스크를 짊어질 이유도 없는 셈입니다. 게다가 한덕수 국무총리가 자신과 함께 일할 국무조정실장(장관급) 후보로 윤종원 기업은행장을 추천했지만 당의 반대로 진통을 겪고 있다는 점도 부담스럽겠지요.

그러나 올 들어 치솟고 있는 시중금리 탓에 금융시장 전반에 위기감이 팽배한 상황에서 금융당국의 신속한 정책 의사결정이 필요한 각종 현안들이 줄줄이 뒤로 밀리고 있다는 비판도 나옵니다.

임기가 만료된 산하기관 임원 인사는 여전히 올스톱돼 있는데다 대선 공약 및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국정 과제에 포함된 청년·실수요자 대출 규제 완화 등 주요 정책 발표도 차일피일 늦어지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금리 급등에 따른 보험사 자본 건전성 악화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관련 대책도 이미 골격이 다 완성됐음에도 금융당국의 책상 서랍 속에서 낮잠만 자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실제 한 보험사 최고경영자(CEO)는 "하루가 멀다 하고 치솟는 금리 탓에 속이 타들어가는데 금융당국은 여전히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한가한 얘기만 하고 있다"며 아쉬움을 토로했습니다.

더욱이 유임이 점쳐졌던 정은보 금융감독원장조차 지난 12일 전격 사의를 표명하면서 금융당국의 리더십도 사실상 실종됐다는 의견이 적지 않습니다. 다행히 대선 캠프 시절 경제 공약을 총괄했던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17일 금융위 부위원장에 임명됐지만 행정 경험이 없는 학자 출신인 만큼 상당한 적응 기간이 필요하다는 게 중론입니다.

이미 늦긴 했지만 지방선거가 끝난 이후에라도 하루빨리 금융 수장에 대한 인선을 마무리함으로써 밀려 있는 과제들이 조속히 추진되기를 기대해봅니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