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대출이 20년 만에 처음 감소했다. 정부의 고강도 대출 규제와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여파다.

한국은행이 24일 발표한 ‘2022년 1분기 가계신용’(잠정치)에 따르면 1분기 가계대출은 1752조7000억원으로 전 분기보다 1조5000억원 줄었다. 가계대출이 전 분기 대비 감소한 것은 관련 통계를 작성한 2002년 4분기 이후 처음이다.

가계대출 20년 만에 처음 줄었다
신용대출 등이 포함된 기타대출이 전 분기보다 9조6000억원 감소한 영향이 컸다. 주택담보대출은 전 분기 대비 0.8%(8조1000억원) 증가하는 데 그쳤다. 가계대출 감소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없었을 만큼 이례적인 현상이다. 대출 총량을 제한하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와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 등의 여파로 가계가 부채 줄이기에 나선 것으로 분석된다. 이른바 ‘빚투(빚 내서 투자)’ 열기가 식은 것도 가계대출 감소에 영향을 미쳤다.

가계대출에 신용카드 할부금 등 판매신용(외상)을 합한 가계신용(가계 빚)은 2003년 1분기 이후 9년 만에 감소했다. 올 1분기 말 가계신용 잔액은 1859조4000억원으로, 전 분기 대비 2000억원 줄었다. 송재창 한은 금융통계팀장은 “신용대출을 비롯한 기타대출은 대출금리 상승과 정부·금융회사의 관리 강화 등으로 감소 폭이 더 커졌다”며 “주택담보대출 증가 폭은 주택 거래 둔화 등으로 작년 4분기보다 축소됐다”고 설명했다.

2008년 금융위기 때도 가계빚 늘었는데…
대출규제에 '빚투' 시들…주담대 증가폭도 둔화

가계대출 감소는 대출 규제와 금리 인상으로 가계가 ‘부채 구조조정’에 들어갔다는 신호탄으로 볼 수 있다. 올 들어 대출액이 2억원을 초과하는 가계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적용받아 추가 대출이 어려워진다. 여기에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과 미국 중앙은행(Fed)의 고강도 긴축에 따라 한국은행도 기준금리 인상 압박을 받고 있다. 시장에선 한은이 지난달 기준금리를 연 1.25%에서 연 1.5%로 올린 데 이어 5월에도 기준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시장금리도 오름세다. 한은이 발표한 3월 예금은행 가계대출 평균 금리는 연 3.98%로, 2014년 5월(4.02%) 후 최고치다. 가계가 빚을 늘리기 어려워진 데다 기존에 갖고 있는 대출의 이자 상환 부담도 커지고 있는 것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늘었던 가계대출이 올 1분기 20년 만에 감소한 이유다. 송재창 한은 금융통계팀장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금리가 떨어질 것이란 기대가 컸지만 지금은 금리가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라며 “가계가 금리 인상을 예상하면서 대출을 추가로 늘리지 않거나 줄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올 1분기 가계대출 증감(전분기 대비)을 기관별로 보면 예금은행은 4조5000억원, 상호저축은행·신용협동조합 등은 2조5000억원 줄었지만 보험회사 등은 5조5000억원 늘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