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지난 20일까지 무역수지 적자가 100억달러를 넘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8년보다 빠른 속도다. 당시엔 8월에 무역적자가 100억달러를 넘었다.

23일 관세청에 따르면 이달 1~20일 무역적자(통관 기준 잠정치)가 48억2700만달러로 집계됐다. 수출액은 386억1700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4.1% 늘었고, 수입액은 434억4400만달러로 37.8% 증가했다. 이달 말까지 무역적자가 이어지면 2008년 이후 14년 만에 3개월 연속 무역적자를 기록하게 된다.

올 1월 1일부터 이달 20일까지 무역적자도 109억6400만달러로 불어났다. 작년 같은 기간엔 97억1100만달러 흑자였는데 올해는 적자 전환했다. 역대 최대 무역적자를 낸 1996년(연간 206억달러)에도 1~5월 누적 무역적자는 75억달러였고, 7월이 돼서야 100억달러를 넘어섰다.

지금 추세가 이어지면 올해 연간 기준으로도 무역적자를 기록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이 2000년 이후 연간 무역적자를 낸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8년(133억달러)이 마지막이었다.

무역적자가 장기화하면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는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크다. 대외 신인도가 하락하고 외국인 투자자금이 이탈하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

원유·가스·석탄 수입액 급증…올 무역적자 가능성
정부, 1월만 해도 "일시적 현상"…에너지가격 예측 완전히 빗나가

올해 무역적자의 최대 원인은 원자재 가격 상승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글로벌 공급망이 불안해진 상황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기폭제 역할을 했다. 지난 1~20일 수출입 통계(통관 기준 잠정치)를 보면 원유 수입액은 71억700만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84.0% 늘었다. 가스(60.4%), 석탄(321.3%) 등 다른 원자재 수입액도 급증했다. 국가별로 봐도 사우디아라비아(105.9%)와 호주(94.2%), 중국(37.3%) 등 이른바 자원 부국으로부터의 수입액이 크게 늘었다.

무역적자 기조는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무역수지는 지난해 12월부터 적자로 돌아섰고, 이후 올 2월을 제외하면 매월 적자다. 현재 추세가 이어져 이달 말까지 무역수지가 개선되지 않으면 3월 이후 3개월 연속 무역수지 적자가 불가피하다. 3개월 이상 무역적자가 연속적으로 난 것은 2008년(6∼9월) 이후 14년 만이다.

올초 정부가 무역적자에 너무 안이하게 대응했다는 지적도 있다. 정부는 지난 1월만 해도 “큰 폭의 무역적자는 겨울철 에너지 수입액 증가에 따른 일시적 현상”이라고 설명했지만, 결과적으로 완전히 빗나갔다.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석유 등 에너지 사용 규모는 줄었지만, 원유 등의 가격이 급등하면서 수입액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일각에선 연간 무역적자는 물론 연간 경상수지 적자를 낼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경상수지에는 서비스수지와 소득수지, 경상이전수지 등이 포함되기 때문에 무역수지와 직접 비교할 수 없지만 통상 비슷하게 움직인다. 경상수지는 지난 3월에도 흑자 기조를 이어갔지만, 규모는 전년 동월 대비 10.2% 줄었다. 한국은행은 3월 경상수지를 발표하면서 “지난달 무역적자와 12월 결산법인 배당 일정 등을 감안하면 일시적 경상수지 적자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전망했다.

연간 경상수지 적자를 내면 1997년 이후 처음으로 재정수지와 경상수지가 동시에 적자를 기록하는 ‘쌍둥이 적자’가 나타날 수 있다. 다만 현재로선 올해 경상수지 적자 가능성은 낮다는 게 중론이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