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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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와 기업 모두 마찬가지다. 디지털 전환에 아무리 투자해도 만족할 만한 진전이 이뤄지지 않는다. 스위스 제약회사 노바티스는 비슷한 실패를 경험한 수많은 기업 중 하나다. 디지털 전환을 위해 기술 인프라를 클라우드로 이전하고, 데이터를 통합했으며 인공지능(AI) 전문가와 데이터 과학자를 채용했다. 획기적인 개선을 기대했던 바람과 달리 조직의 비효율성은 더 커졌다.

도메인 지식의 중요성

다행히 모든 프로젝트가 실패한 것은 아니었다. 일부 파일럿 프로젝트에서 만족할 만한 결과를 확인하면서 비즈니스 리더들은 실패한 프로젝트와 성공한 케이스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디지털 전환은 기술자나 데이터 관리자가 아니라 일선 비즈니스 현장의 실무자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노바티스는 비즈니스 현장의 실무자들이 직접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도록 교육을 시작했다. 모든 종류의 기회에 대응하는 능력이 갖춰지자 변화는 강하고, 빠르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판매예측 분야에서, 의료서비스 고객을 위한 주문 프로세스에서, 처방전 작성 시스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접근과 개선이 이뤄진 것이다. 파편적인 혁신은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되면서 전사적인 측면으로 확장됐다. 각 사업부문이 데이터 과학자와 협력해 공급망 중단을 관리하고, 심각한 물량 부족을 예측했으며, 병원 진료를 받지 못해 위험한 상황에 놓인 환자를 찾기 위한 분석이 이어졌다. AI의 가치를 직접적으로 깨닫게 된 것이다.

테크 인텐시티의 개발

마르코 이안시티 하버드대 교수와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은 노바티스의 사례를 모든 기업에 적용할 수 있는지 관심을 갖고 분석했다. 이들은 제조와 헬스케어, 소비재, 금융서비스, 항공우주, 제약·생명공학 분야의 150개 기업을 조사했다. 그 결과 디지털 전환에 성공한 기업들은 정보통신(IT)부서에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 구성원 모두가 기술을 활용할 수 있도록 역량을 키우고, 문화를 형성하고, 이를 구조화하는 데 투자하고 있다는 점을 밝혀냈다. 이들은 ‘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 기고한 칼럼 ‘혁신의 민주화’를 통해 ‘테크 인텐시티(Tech Intensity)’라는 개념으로 이를 설명한다. 테크 인텐시티는 직원들이 디지털 혁신을 주도하고 비즈니스 성과를 달성하기 위해 기술을 사용하는 정도를 의미한다. 기술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고, 다양한 데이터와 기술에 숙련된 직원이 적합한 도구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한 기업은 깊이와 범위 면에서 뛰어난 테크 인텐시티를 달성할 수 있었고, 이는 더 높은 성과로 이어졌다. 반면 직원들의 기술과 데이터 관련 역량을 개발하지 못하고, 기술에 대한 접근을 제한한 기업은 뒤처졌다. 기술에 돈을 쓰는 것만으로는 더 큰 성장이나 성과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부서 간 갈등을 키우거나 목표 간 상충을 발생시켜 비즈니스 전체의 비효율을 키우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기업에서 배우는 디지털 전환

이안시티 교수와 나델라 회장이 전달하는 시사점은 기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많은 정부 조직과 기관도 디지털 전환을 위한 노력을 기울인다. 문제는 모든 구성원의 테크 인텐시티를 향상하는 방향이 아니라 권한을 가진 특정 부서나 위원회의 설립을 통해 진행한다는 점이다. 기술부서에만 투자한 기업은 막대한 자원을 사용하고도 디지털 전환에 실패한 것과 같은 모습이다.

김동영
KDI 전문연구원
김동영 KDI 전문연구원
디지털 전환은 이를 추구하는 모든 구성원이 먼저 이해할 때 성공할 수 있다. 기업이라면 더 큰 수익 창출이 가능하도록 비즈니스를 발전시킬 수 있고, 정부기관이라면 디지털 전환에 대한 명확한 이해로 실질적으로 작동 가능한 정책을 설계할 수 있다. 내로라하는 AI 전문가를 영입했다고 해서, 디지털 혁신을 리드하는 부처를 새로 만들었다고 해서 달성할 수 있는 미션이 아니라는 것이다. ‘혁신은 민주적’이어야 한다는 사회 리더들의 구호는 혁신의 혜택이 미치는 범위뿐만 아니라 이를 만들어내는 구성원에게도 해당하는 것을 이해할 때 디지털 시대의 혁신은 완성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