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IC·칭화유니 등 상용화 돌파구
'메모리 강국' 한국 협력 유지 절실
신냉전 최전선 반도체…中 '반도체 굴기' 어디까지 왔나
중국 견제에 초점이 맞춰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한일 순방 첫 행선지로 경기도 평택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택했다.

미국이 세계 반도체 업계의 지형을 자국에 유리하게 재편함으로써 중국을 견제하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어디까지 왔는지에도 새삼 관심이 쏠린다.

◇ '중국판 TSMC·퀄컴' 키우는 중국…본격 상업화 단계 진입
중국은 미중 전략경쟁 시대를 맞아 반도체 분야가 자국이 가장 취약한 아킬레스건이라고 판단하고 반도체 자급률 향상을 위해 총력전에 나선 상태다.

지난해 중국의 반도체 수입액은 3천500억 달러(약 444조원)로 중국 전체 수입액의 13%나 차지했다.

반도체 수입액이 원유와 전체 농산물 수입액보다도 많다.

중국은 정부와 국영기업들이 직접 출자한 반도체 산업 육성 펀드인 '대기금'(국가집적회로산업투자펀드)을 통해 유망 반도체 사업을 골라 투자를 선도한다.

대기금이 움직이면 다른 국영기업과 지방정부 관할 산업 육성 펀드들이 추가로 투자에 나서 막대한 자금을 공격적으로 쏟아붓고 있다.

직접투자 외에도 파격적 세제 혜택, 연구·개발비 지원 등 다양한 수단을 동원해 전폭적으로 지원한다.

우한훙신반도체제조(HSMC)의 사례처럼 비효율적 투자와 도덕적 해이로 수십조원이 들어간 프로젝트가 좌초하는 일도 있었지만 최근 들어 중국의 핵심 반도체 회사들은 각 분야에서 고무적인 돌파구를 열어내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인 SMIC(中芯國際·중신궈지), '반도체 항모'로 불리는 칭화유니(淸華紫光), D램 제조사 창신메모리(CXMT·長鑫存儲) 등 3사가 주목된다.

신냉전 최전선 반도체…中 '반도체 굴기' 어디까지 왔나
'중국판 TSMC'인 SMIC는 국영기업으로 분류되지는 않지만 중국 중앙정부와 상하이시 정부가 직접 투자해 키우는 업체다.

SMIC는 작년 첨단 미세공정의 관문으로 여겨지는 14㎚(나노미터=10억분의 1m) 공정 제품 양산을 시작했다.

칭화대에서 당국 주도의 사모펀드에 경영권이 넘어간 칭화유니의 핵심 자회사는 낸드플래시메모리 제조사인 YMTC(長江存儲)와 스마트폰용 시스템온칩(SoC) 전문 제조사인 UNISOC(쯔광잔루이<紫光展銳>)다.

모기업인 칭화유니의 파산 위기 속에서도 YMTC는 작년 3분기 이후 글로벌 시장 점유율을 2%대까지 끌어올리면서 낸드 시장에서 글로벌 '7강'에 합류했다.

YMTC의 기술력은 글로벌 3강인 삼성, SK하이닉스, 마이크론에 미치지 못하지만 중국이 그간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특히 약한 모습을 보여왔다는 점에서 중국에 매우 고무적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스마트폰의 두뇌 격인 SoC를 설계하는 UNISOC는 '중국판 퀄컴'을 지향하는 기업이다.

아직 저가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저사양 제품을 파는 수준이지만 빠른 속도로 기술력을 끌어올리면서 점점 유의미한 시장 점유율을 형성해가고 있어 향후 거대 안방 시장을 등에 업고 성장할 가능성이 큰 업체로 평가받는다.

창신메모리는 안후이성 정부 주도로 2016년 설립된 반도체 업체로 중국에서 유일하게 D램을 생산한다.

2019년 9월부터 현재 세계 D램 시장의 주력 제품인 DDR4 양산에 들어갔고, 2020년 5월부터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했다.

이 밖에도 컴퓨터의 두뇌인 CPU 분야에서는 파이티움(飛騰·페이텅)과 선웨이(申威) 같은 업체들이 '국산 CPU'를 양산해 공급하고 있다.

아직 인텔이나 AMD 같은 미국 업체와 기술 격차가 크지만 중국은 안보상의 이유로 자국의 슈퍼컴퓨터에 이들 업체가 만든 '국산 CPU'를 넣고 있다.

중국의 노력은 이제 구체적인 수치로도 나타나고 있다.

2021년 중국 내 반도체 집적회로(IC) 생산량은 3천594억개로 전년보다 33.3% 증가해 증가율이 전년의 배에 달했다.

◇ 미중 신냉전에 중국에 절실해진 한국산 반도체 안정 수급
중국이 '반도체 굴기'에 총력을 기울여 일부 성과를 내는 상황에서 미국은 반대로 중국의 반도체 산업 발전 속도를 늦춰 자국의 기술력 경쟁 우위를 최대한 오랫동안 유지하려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우선 미국은 자국 기술이 포함된 소프트웨어, 장비, 재료의 중국 기업 판매 금지, 자국 투자자의 중국 기업 투자 금지 등 다층적 제재를 활용해 중국의 여러 반도체 기업들에 직접적인 압박을 가하고 있다.

중국 반도체 산업의 대표 주자인 SMIC를 비롯해 반도체 제조부터 소재·부품·장비 분야 업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업체들이 미국 상무부와 국방부 차원의 블랙 리스트에 대거 이름이 올라 있다.

실제로 미국의 제재로 중국의 반도체 자급 노력에는 심각한 제약이 가해지고 있다.

SMIC가 미국 정부의 반대로 네덜란드 ASML로부터 반도체 노광장비를 구매하지 못해 최첨단 미세공정 양산으로 가는 돌파구를 마련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반도체 설계용 소프트웨어부터 각종 장비와 소재 등 미국 기술이 포함되지 않는 경우가 거의 없어 미국의 '표적 제재'는 상당한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나아가 SK하이닉스가 우시(無錫) D램 반도체 공장에 네덜란드 ASML의 EUV 노광장비를 들여놓는 것에 제동을 건 것처럼 미국 정부의 제재는 중국에 반도체 공장을 둔 제삼국 기업에까지 미치고 있다.

직접 압박이 한 갈래라면 미국의 중국 반도체 굴기 견제의 다른 한 갈래는 세계 반도체 산업의 질서를 자국 중심으로 재편하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부터 미국 정부는 세계 반도체 업계에 '미국에서 생산하라', '미국이 아니라면 적어도 중국에는 투자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노골적으로 보내고 있다.

이후 인텔, 삼성전자, TSMC 같은 세계 굴지의 반도체 기업들이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새로 짓기 시작했다.

반대로 중국에서는 적극적으로 발을 빼거나 적어도 신규 투자를 주저하고 있는 모습이 뚜렷하다.

이처럼 미국과 중국이 반도체 산업에서 총성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중국에 반도체 강국인 한국과의 안정적 협력을 유지하는 것은 국가 전략적 차원의 중요 목표로 자리 잡게 됐다.

중국이 이제 시스템·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본격적인 상업화 단계에 접어들었지만 아직 국산화까지 갈 길이 먼 상황에서 특히 D램과 낸드 등 메모리 반도체를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한국과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협력 유지가 절실한 상태다.

신냉전 최전선 반도체…中 '반도체 굴기' 어디까지 왔나
또한 한국은 중국에 가장 큰 규모로 반도체 투자를 집행한 나라이기도 하다.

시안에는 삼성전자 낸드 공장이, 우시에는 SK하이닉스 D램 공장이 있다.

'화웨이 사태'를 겪은 중국은 미국이 자국의 첨단 기업에 타격을 가할 수 있는 반도체 제재를 또 가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가 미국의 전면 제재를 받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중국에서는 미국의 제재 가능성에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는 경계심이 급속히 고조된 상태다.

미국의 제재로 한국 업체들의 시장 점유율이 특히 높은 메모리 반도체 공급이 제약된다면 대상 중국 기업에는 심각한 충격을 줄 수 있다.

중국 관영 매체들이 바이든 대통령의 한일 순방이 시작되기도 전에 한국 반도체 업체들에 노골적으로 '균형'을 요구한 것은 중국이 그만큼 미국의 반도체 산업 재편 움직임을 크게 경계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자매지인 글로벌타임스는 19일 논평에서 "반도체 공급망 협력은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의 주요 초점이 될 것"이라며 "한국 반도체 업계의 현 상황은 미·중 간 경쟁 구도에서 '편들기'를 피하고 미묘한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