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 백지화' 기대감이 절망감으로

가동률 바닥인데…2025년에야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
부품업계 "파산직전…조기착공 없으면 원전강화는 공염불"
경남 함안군에 있는 원전 부품업체 이엠씨의 김홍범 대표는 요즘 은행 대출을 받아 직원 월급을 주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 여파로 수주가 거의 끊긴 상태에서 그나마 남아 있던 일감마저 거의 다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엠씨는 대형 부품 가공에 특화한 기술력을 갖춘 회사로 두산에너빌리티에 핵분열 관련 부품을 공급해왔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 드라이브를 건 이후 이 회사는 빚만 늘어가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탈원전 백지화로 일감이 늘어날 것이란 기대가 원전 부품업계에 퍼지기도 했지만 최근엔 이런 기대가 절망으로 바뀌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신한울 3·4호기 건설 공사를 2025년 재개하기로 했다는 계획이 알려지면서다.

김 대표는 “벼랑 끝에 내몰린 원전 부품사들에 2~3년을 더 버티라는 건 사형선고나 마찬가지”라며 “원전 일감이 2025년이 지나서야 나오면 무용지물”이라고 말했다.

원전 부품업체 영진테크윈의 경남 창원 공장에선 직원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17일 찾아간 공장 내부엔 가동을 멈춘 설비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원전 제어봉 구동장치에 들어가는 부품을 생산하는 이 공장은 지난 3월부터 가동률이 0%로 떨어졌다.

이 회사의 강성현 대표는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힘든 시기를 겪은 업체들이 최소한의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선 지금 당장 일감이 필요하다”며 “원전 국산화에 바친 20년 세월이 야속하다”고 했다.

한국경제신문 취재진이 만난 원전 부품업체 대표들은 한결같이 ‘일감절벽’ 문제를 호소했다. 신한울 3·4호기 건설을 3년 뒤에 재개하겠다는 정부 계획에도 불만을 감추지 않았다. 원전업계 관계자는 “창원과 인근에 몰려 있는 중소 원전부품 업체들은 2년 전부터 일감 부족에 허덕였다”며 “그사이 기술과 노하우를 지닌 전문인력이 현장을 떠났고 문을 닫은 곳도 부지기수”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 공무원들이 현장의 다급함을 모르는 것 같다”고 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한국의 원전 생태계는 고사할 것이라고 했다.

정동욱 한국원자력학회장은 “원전 생태계 유지를 위해 신한울 3·4호기 조기 착공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며 “2025년은 너무 늦다”고 지적했다.

이지훈/창원=김해연/함안=민건태 기자 liz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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