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유통업계는 ‘가격과의 전쟁’ 중이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3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할 정도로 고공행진하자 가격 상승을 억누르기 위해 사활을 건 분위기다.

마트 바이어는 매매참가인 자격을 취득해 한우 경매에 뛰어들고, 편의점은 낙농 강국 뉴질랜드에서 아이스크림 직수입에 나서고 있다. “평상시 같으면 기대하기 어려웠을 과감한 시도”라는 게 유통업계의 설명이다.
"가격 더 올리면 실적 반전은 없다"…'인플레와의 전쟁' 나선 유통업계

이마트 “수입 PB 삼겹살 가격 고정”

16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이마트는 지난달 자체브랜드(PB) 수입 돈육 제품인 ‘노브랜드 바로구이’의 돼지고기 수입처를 덴마크에서 스페인으로 변경했다. 스페인은 피레네산맥 이남에 자리 잡고 있다.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유행한 독일 벨기에 등과 달리 돼지고기 공급 가격이 상대적으로 안정돼 있다.

이마트는 환율 고공행진을 감안해 수입 돼지고기 재고도 대폭 늘렸다. 평소 100t 선을 유지하던 재고는 올해 300t 수준으로 확대했다. 이런 노력의 결과 이마트의 노브랜드 삼겹 바로구이 1㎏은 1년 전과 같은 1만1980원(오프라인 판매가 기준)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지난 4월 기준 수입 냉동 삼겹살 100g당 가격은 1364원으로 1년 전(1258원)보다 8.3% 올랐다. 이마트 관계자는 “선제 수입처 변경과 재고 물량 확보, 선물계약으로 내년 4월까진 PB 수입 삼겹살의 가격을 올리지 않고 지금처럼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BGF리테일이 운영하는 편의점 CU는 지난해 우유 원재료인 원유(原乳) 가격 상승으로 올여름 아이스크림 가격 인상 전망이 나오자 지난 1월부터 아이스크림 수입을 준비했다. 코로나19로 하늘길이 막힌 상황에서 10여 개국 아이스크림 제조사에 연락해 샘플을 받고, 수십 차례 화상회의를 한 끝에 뉴질랜드의 유제품 가공업체인 폰테라를 찾았다.

CU는 가격을 더 낮추기 위해 폰테라에 1L 대용량 제품을 특별 제조해 CU에만 단독 공급해 달라고 요청했다. 1L에 1만3900원으로 기존 아이스크림 대비 절반 수준으로 가격을 맞춘 대용량 아이스크림 카피티가 탄생한 배경이다.

롯데 바이어는 경매에 뛰어들어

유통단계를 단축해 소비자 부담을 낮추기 위해 유통업체 직원들이 직접 경매에 뛰어드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롯데마트의 축산 바이어는 매주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충북 음성과 경기 부천 축산물 공판장에서 열리는 한우 경매에 참여한다. 경매에 참가하기 위해 매매참가인 자격을 땄다.

‘축산농가→도축장→중도매인(경매장)→가공업체→소매점’으로 이어지는 다섯 단계 한우 유통구조 중 중도매인 단계를 마트가 직접 책임지는 것이다. 롯데마트의 전체 한우 판매량 중 직경매 물량 비중은 2019년 20% 수준에서 지난해 50%를 넘었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경매에 직접 참여해 유통단계를 줄이면 부위에 따라 가격을 최대 30%까지 낮출 수 있다”고 설명했다.

홈플러스는 수박 참외 포도 밀감 등 소비자가 많이 구매하는 과일 10가지를 정해 계약재배 물량을 확대하고 있다. 중간도매상 없이 유통경로를 단순화하자 가격은 자연스럽게 내려갔다. 홈플러스는 지난 3월 계약재배 브랜드인 ‘신선농장’의 참외 1.2㎏을 7490원(행사 카드 결제 시)에 팔았다. 전년 동월(9900원) 대비 판매가를 25% 낮췄다.

물가 잡아야 마트 소비자 돌아와

유통업계가 이처럼 판매단가를 낮추는 데 공을 들이는 이유는 엔데믹(감염병의 풍토병화) 국면에 접어든 올해를 재도약의 기회로 삼고 있어서다. 오프라인 유통업계는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로 지난 2년간 e커머스(전자상거래)에 주도권을 내줬다. ‘신선식품은 매장에서 보고 사야 한다’는 상식까지 깨지면서 대형마트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았다.

올해 ‘반전 드라마’를 써야 할 오프라인 유통사 입장에서 인플레이션은 발목을 잡을 최대 복병이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물가 인상분을 가격에 어느 정도 반영한다고 하더라도 소비자가 감내할 수 있는 선이라는 게 있다”며 “마트 판매가격이 마지노선을 넘으면 소비자들이 아예 지갑을 닫아버리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통업계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요동치는 물가를 잡기 위해선 정부 차원의 데이터 기반 농·축·수산물 가격 예측 시스템 마련과 선도 거래 확산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권민수 팜에어 대표는 “가격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으면 수요·공급의 적절한 사전 조절이 가능하고, 널뛰는 가격을 안정시킬 수 있다”며 “생산과 유통, 매입을 미리 약속하는 선도거래의 확산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종관/이미경 기자 p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