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중소기업계 민생현안 간담회에서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왼쪽)와 악수하는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오른쪽). 중기중앙회 제공
더불어민주당 중소기업계 민생현안 간담회에서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왼쪽)와 악수하는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오른쪽). 중기중앙회 제공
알루미늄 창호와 부산·울산·경남지역 철근 콘크리트업계가 원자재 가격 폭등에도 납품단가를 올려주지 않자 건설사에 공급 중단을 선언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거대 여당을 찾아 납품단가연동제의 조속한 도입을 촉구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이 제도 도입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자, 더불어민주당과 간담회를 갖고 차기 정부를 압박하는 모양새다.

알루미늄 창호 5월 중하순, 부울경 철근 콘크리트 6일부터 공급 중단 우려

중기중앙회는 4일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를 비롯해 진성준 김경만 이동주 등 11명 의원과 함께 민생현안 간담회를 열고 중소기업계 업종별 대표로부터 피해 사례를 들었다. 알루미늄창호업계를 대표하는 한국창호커튼월협회의 유병조 회장은 “건설사와 계약기간은 1~3년인데, 창호·커튼월 프레임의 주소재인 알루미늄 가격은 1년전에 비해 2배 가량 폭등해 엄청난 손실을 떠안고 있다”며 “건설사에 아무리 원자재 인상분을 요청해도 수용하지 않아, 폐업 등 줄도산이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업계는 오는 11일 전국 총회를 열고 공급중단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대부분 회원사들이 동의하고 있어 실제 5월 중·하순 전국에서 공급중단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유 회장은 "전국 700~800곳의 알루미늄창호업계가 한꺼번에 공급을 중단하면 전국 수백곳 건설 현장이 멈춰설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울산·경남지역 철근 콘크리트 업계 역시 공사비 증액을 요구하며 오는 6일부터 무기한 공급 중단에 들어가기로 했다. 강성진 청송건설 대표는 "철근가격은 지난해 2월 t당 67만원에서 현재 120만원으로 2배 가까이 올랐다"며 "파업까지 가야만 귀를 기울여주면 어떻게 이 나라에서 사업을 하나"라고 한탄했다.

레미콘업계 "시멘트 가격 지나치게 올리고 생산 조절 의구심"

이날 중소전선업계를 대표하는 홍성규 한국전선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은 "35년간 전선업계에 몸담으며 플라스틱 철강 목재 등 가격이 동시에 이렇게 폭증한 사례는 처음 본다"고 말했다. 그는 한 전선업체가 한국철도공사에 원자재 가격 인상에 따른 납품단가 인상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하자 재판까지 간 사례를 소개했다. 그는 "상생법상 위·수탁분쟁조정협의회에서 철도공사에 인상을 권고했지만 이마저 수용되지 않자 현재 재판으로 시시비비를 가리는 상태"라며 "사회적 약자인 중소기업은 가격결정권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중소레미콘업계를 대표하는 배조웅 한국레미콘공업협동조합연합회 회장은 "시멘트 공급이 안되면서 수시로 문을 닫는 레미콘공장이 늘었다"며 "시멘트업계가 무리하게 가격을 올린 데 이어 생산량까지 조절하는 것 아닌가 의심이 든다"고 했다. 김문식 금문산업 대표는 "납품단가 미반영으로 표면처리(도금)업종은 존폐 기로에 서 있다"며 "뿌리기업들이 하나 둘씩 사라지면 우리나라 기초산업이 무너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원자재 대신 구매, 납품단가 곧바로 반영..."삼성 현대차처럼만 상생해달라"

중기중앙회의 납품단가 제값받기를 위한 실태조사 결과, 중소기업의 95.4%는 원가 인상분을 납품단가에 온전히 반영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기문 중기중앙회장은 "납품대금 조정협의제도가 있지만 보복이 무서워 지금까지 단 한 건도 신청 사례가 없다"며 "대기업에 납품하는 중소기업들의 매출 의존도가 80%가 넘다보니, 납품단가 얘기를 꺼냈다가는 오히려 거래가 끊길 것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중소기업계는 원자재를 대량 확보해 협력사를 지원하거나 원자재 가격 상승분을 곧바로 납품단가에 반영해주는 삼성전자, 삼성엔지니어링, 현대자동차 등의 모범사례가 재계로 확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중기중앙회에 따르면 삼성엔지니어링은 직접 원자재를 구매해 협력 중소기업에 공급해주는 ‘사급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구매 협상력이 낮은 중소기업의 경우 중간 유통상(대리점)을 거쳐 원자재를 조달하기 때문에 원자재 수급난이 발생할 경우 아예 구하지 못하거나 비싼 가격에 구하는 사례가 많았다. 삼성엔지니어링이 사급제도를 통해 제때 싼 가격에 원자재를 협력 중소기업에 제공하면, 원자재 가격 급등락이나 수급 불안에 대한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삼성전자는 거래중인 1차 협력사를 대상으로 철판 레진 구리 등 원자재 가격 변동시 변동분을 부품단가에 바로 반영해주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알루미늄·귀금속·구리·납의 경우 런던금속거래소(LME) 가격에 따라 주기적으로 납품단가에 반영해 주고 있다. 김기문 회장은 “일부 잘하는 대기업이 있지만 안하는 대기업이 대다수라는 것이 문제”라며 "자발적인 상생 문화가 정착될 때까지 법으로 규정하는 납품단가 연동제를 조속히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4일 중기중앙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중소기업계 민생현안 간담회. 중기중앙회 제공
4일 중기중앙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중소기업계 민생현안 간담회. 중기중앙회 제공

중소기업중앙회에서 민주당에 모처럼 쏟아진 박수갈채

한편 이날 간담회에서 박홍근 원내대표는 '납품단가연동제'공약을 뒤집은 윤석열 정부에 대해 날선 비판을 이어갔다. 그는 "대선때 국민앞에서 약속했는 데, 선거끝났다고 뒤집는 것은 말이 안된다"며 "반드시 바로 잡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상생협력법 개정안, 하도급법 개정안과 같이 납품단가 연동제 도입을 위한 법안의 경우 제가 직접 매일 챙기겠다"고 말하자 현장에서 박수 갈채가 쏟아졌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납품단가 연동제 도입 검토'를 공약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그러나 모범계약서 도입 등 시장 자율에 우선 맡기겠다며 한발 물러섰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는 국회 답변서에서 납품단가연동제 도입에 대해 "정부가 가격 설정에 개입하면 수급사업자(납품업체) 보호 효과보다 부정적 효과가 크다"며 "원사업자(납품받는 대기업)의 사업 여건을 악화시키고 수급사업자의 원가 절감을 위한 기술과 경영 혁신 유인을 감소시킬 수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이에대해 중기중앙회측은 "기업간 경제활동에 대해 '공정거래법','하도급법'등으로 이미 불공정거래는 국가도 개입하고 있다"며 "자유시장경제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한 중소기업 대표는 "원래 중소기업계는 친(親)노동 성향의 민주당 의원과 가깝지 않았으나 윤석열 정부가 '납품단가연동제'도입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자 민주당쪽으로 기우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또 다른 대표는 "일부 사장들은 오죽 답답하면 이날 민주당 의원에 '검수완박 법안 처리처럼 납품단가연동제 법안도 처리해달라'고 요구할 정도"라고 말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