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5월 01일 20:20 자본 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兆' 단위 '빅딜'로 승부수 띄우는 기업들[딜리뷰]
반도체 사업으로 '승부수'를 띄우겠다며 조(兆) 단위 '빅딜'에 뛰어든 기업이 있습니다. 드릴십(원유시추선)이라는 장기 재고를 처분해 수천억원의 현금을 손에 쥐게 된 기업도 있죠. LX그룹과 삼성중공업 얘깁니다. 이들은 신사업을 강화하기 위해 인수합병(M&A) 전략을 택했습니다. 빠르고 확실하게 성장하기 위해서죠. 이밖에도 홀당 92억원에 매각돼 눈길을 끈 골프장 클럽모우CC, 캐나다 화장품 브랜드를 인수한 'M&A의 귀재'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의 스토리 등 지난 2주 간의 딜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1. '눈물로 보냈던 반도체 사업' 되찾아오는 LX그룹

최근 가장 큰 딜 소식을 꼽으라면 단연 LX그룹의 '통 큰 결단'일 겁니다. 구본준 회장이 LG그룹에서 독립해 세운 LX그룹이 국내 시스템반도체 업체인 매그나칩반도체(매그나칩) 인수전에 뛰어든다는 소식인데요, 차준호 기자의 단독 보도에 따르면 "인수가 성사될 경우 범LG가가 눈물로 보냈던 반도체 사업을 되찾아오는 상징적 거래"라는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사실 매그나칩은 1979년 설립된 LG반도체가 그 모태인데요, 1999년 LG반도체 최고경영자(CEO)였던 구 회장이 반도체 사업을 현대그룹에 매각했던 것을 23년 만에 되찾아오게 되는 거래입니다. LX그룹이 자동차 반도체 사업으로 빠르게 영역을 넓히기 위해 M&A를 택한 건데요, 매그나칩이 디스플레이 구동 집적회로(DDI)의 설계 및 생산 분야에서 삼성전자에 이어 세계 2위라는 점이 가장 큰 매력 포인트로 작용했을 겁니다.

매그나칩의 지난해 매출은 4억7400만달러(약 5915억원), 상각전영업이익(EBITDA)은 6413만달러(약 800억원)에 달한다고 합니다. 경영권 프리미엄까지 포함해 약 1조원에 거래될 것으로 투자은행(IB)업계는 추정하고 있으니 '빅딜'이라 부를 만 하겠죠.

구본준 회장이 LG그룹에서 계열분리할 때 가장 애착을 보였던 회사가 바로 LX세미콘(옛 실리콘웍스)이었다고 합니다. 반도체를 미래 먹거리 사업으로 낙점한 셈이죠. 직접 LX세미콘을 챙겼던 구 회장이 매그나칩 인수라는 '승부수'를 띄우고 반도체 사업으로 경쟁력을 키우겠다는 전략을 본격화한 겁니다. 과연 구 회장의 반도체 사업 '승부수'가 시장에서 제대로 통할지, 이번 인수 거래가 마무리된다면 몇 년 뒤에 이번 딜이 어떤 평가를 받을 수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2. '홀당 100억 시대' 올까…클럽모우CC 2500억에 팔린다

모아건설이 보유하고 있던 강원도 홍천의 27홀 대중제(퍼블릭) 골프장 클럽모우컨트리클럽(CC)이 약 2500억에 팔린다고 합니다. 대체투자 운용사인 칼론인베스트먼트자산운용이 인수하는 건데요, 홀당 약 92억원에 달하는 이번 매각가를 놓고 부동산 M&A업계에선 "곧 홀당 100억 시대가 올 것"이란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박시은 기자의 단독 보도에 따르면, 칼론인베스트먼트는 골프장과 물류센터 등 부동산 투자에 특화된 운용사로, 2020년 강원도 춘천의 오너스골프클럽, 지난해 충북 청주의 떼제베CC 등을 인수해왔다고 합니다. 2020년 두산중공업이 클럽모우CC를 매각할 때도 인수전에 참여했지만 모아건설 자회사인 모아미래도-하나금융 컨소시엄에 밀려 실패했던 경험이 있는 곳입니다.

최근 팬데믹을 겪으며 2030 등 젊은 세대들이 골프업계의 새로운 소비자로 급부상하면서 특히 대중제 골프장의 몸값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특히 수도권은 말할 것도 없죠. "사고싶은데 골프장 매물이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입니다.

물론 "지금이 정점이다"는 의견과 "그래도 몇 년은 더 갈 것"이라는 의견이 분분하긴 합니다. 한 회계법인의 골프장 담당 파트너는 "원매자 수가 훨씬 많고 골프장을 찾는 수요도 줄어들지 않는 것을 보면 당분간 호황은 더 갈 것"이라고 했습니다. 골프장을 찾던 2030세대들이 계속 국내 골프장을 찾을지, 아니면 이제 해외로 나갈지 좀 더 지켜보긴 해야겠습니다.

3. 삼성重의 '애물단지' 드릴십, 1조400억 받고 큐리어스에 매각

원유시추선(드릴십)은 그 덩치가 커서 쉽게 사고 팔 수 있는 자산이 아닙니다. 삼성중공업에게도 드릴십은 장기 재고였죠. 그런데 드릴십 4척을 1조400억원이라는 거금을 받고 처분한 뒤 자율주행선박 등 미래형 선박에 투자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큐리어스파트너스가 드릴십을 사기로 한 건데요, 삼성중공업이 큐리어스에 현금 5900억원을 출자하고, 선순위 투자자 출자금 1600억원, 금융기관 차입금 3200억원까지 합쳐 총 1조700억원의 자금을 조성키로 한 겁니다. 큐리어스가 이 중 1조400억원을 드릴십 구입 비용으로 쓰고 나머지 300억원은 PEF 운용자금으로 활용키로 했습니다.

차준호 기자의 단독 보도에 따르면, 큐리어스가 드릴십을 인수한 까닭은 향후 유가가 70달러 이상의 가격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주요 에너지사들이 심해 유전 탐사 개발을 재개하면서 고사양의 드릴십 수요가 늘어날 것이고, 즉각 활용할 수 있는 삼성중공업의 드릴십을 찾는 수요도 많아질 것이란 전망입니다.

그동안 동부그룹, 이랜드리테일 등 주로 기업 구조조정 매물에 주로 투자해온 큐리어스가 이번 드릴십 투자로도 높은 수익률을 거둘 수 있을지도 궁금한 대목입니다.

4. 'M&A 귀재' 차석용 부회장, 캐나다 크렘샵 1500억에 샀다

'M&A의 귀재'로 불리는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이 또 '쇼핑'에 나섰습니다. 북미 지역에서 K뷰티, 인기 캐릭터 등을 활용한 화장품을 제조해 판매하고 있는 더크렘샵 지분 65%를 1485억원에 인수한 건데요, 10여년 전부터 줄곧 해외에서도 공격적인 M&A를 추진해온 차 부회장이 북미 지역에서 어떤 성과를 낼 수 있을지, 몇 년 뒤엔 이 회사의 해외 사업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집니다.

이번 인수를 공시하며 눈길을 끌었던 건 '잔여지분 35%에 대한 콜옵션과 풋옵션을 동시에 단 점'이었습니다. 콜옵션과 풋옵션을 모두 건 까닭은 앞서 마켓인사이트에 기사를 내기도 했지만, 이번 공시에는 "매수인(당사)과 매도인(더크렘샵)은 거래 종결 후 5년이 경과한 시점부터 잔여지분 35%에 대해 매수/매도할 수 있도록 콜/풋옵션을 부여한다"고 명시돼있었는데요, 이에 대해 회사측은 "양측 다 리스크를 최소화한 채 회사를 같이 더 키워보자고 의견을 같이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LG생활건강이 인수한 더크렘샵. /출처=LG생활건강
LG생활건강이 인수한 더크렘샵. /출처=LG생활건강
LG생건이 직접 캐나다 등 북미 시장에서 사업을 해본 게 아니기 때문에 현지 트렌드, 특히 MZ세대(밀레니얼+Z세대)의 취향을 잘 아는 더크렘샵의 사업 노하우를 더 배우겠다는 뜻인데요, 더크렘샵 입장에서도 창업해서 키운 회사를 '밸류업'시키는 과정에서 더 많은 역할을 하고 싶었을 겁니다. 기업가치가 더 올라갔을 때 풋옵션을 행사할 경우 지금보다 더 높은 값에 잔여지분을 매각할 수도 있을 테고요.

사실 그동안 차 부회장이 M&A해왔던 기록을 보면 "이게 한 회사가 몇 년 동안 한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어마어마한데요, 식음료를 제외한 화장품/생활용품 부문만 봐도 수두룩합니다.

특히 글로벌 사업 확장을 위한 M&A가 많았다는 게 특징입니다. 이미 2005년 LG생건의 사장으로 취임 이후 화장품/생활용품/음료 등 세 사업부로 포트폴리오를 재편했던 차 부회장은 전 세계로 영역을 확장하지 않으면 성장은 없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특히 글로벌 M&A는 10년 전부터 활발했는데요, 2012년 일본 화장품 사업 강화를 위해 긴자스테파니를 1588억원에 인수했고 이듬해 일본 화장품 및 이너뷰티 업체 에버라이프를 3294억원에 사들였습니다. 이후 프루츠앤패션(2013년 210억원), R&Y 코퍼레이션(2014년 460억원), 리치의 아시아 및 오세아니아 사업권(2016년 514억원), 에이본재팬(2018년 1033억원), 에바메루(2018년 150억원), 에이본 광저우 생산법인(2019년 794억원), 더에이본컴퍼니의 미주 사업(2019년 1450억원), 피지오겔의 아시아 및 북미 사업권(2020년 1923억원), 리치의 북미 및 유럽 사업권과 치약 브랜드 유씨몰의 글로벌 사업권(2020년 773억원), 보인카(2021년 1170억원), 존슨앤드존슨의 도미니카 치실공장(2021년 1100만달러) 등을 잇따라 인수했죠. 숫자만 봐도 '어마어마'합니다. 이들이 모두 어느 정도 자리를 잡게 되면 추후 얼마나 회사 매출과 이익에 기여할 수 있을지도 기대가 됩니다.

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