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ESG] ESG NOW
원전 수명 연장…탄소중립 기업 부담 던다
윤석열 당선인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탈원전 정책 폐기를 공식화하고 탄소중립 수단으로 원전을 적극 활용하겠다는 계획을 천명했다. 탈원전 정책이 온실가스 배출량을 오히려 늘렸으며, 탈원전을 계속 추진할 경우 전기요금이 크게 올라 물가와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탈원전 본격화…18기 수명연장 추진

인수위는 우선 탈원전 정책 폐기의 일환으로 윤석열 정부 임기 중 원전 18기의 수명을 연장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현재 새 정부 임기 중 수명연장을 추진할 수 있는 원전이 10기인데, 이를 더 늘리겠다는 것이다. 인수위는 2030년까지 원전 비중을 전체 발전량의 30%대로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인수위 과학기술교육분과는 지난 4월 20일 “원자력안전위원회 등과 논의해 원전 계속 운전 신청 시기를 현행 ‘설계수명 만료일 2~5년 전까지’에서 ‘5~10년 전까지’로 앞당기는 방안을 제안했다”고 설명했다. 제도가 개선되면 새 정부 임기 중 계속 운전을 신청할 수 있는 원전이 애초 계획한 10기보다 8기 증가한 최대 18기가 된다.

현재 윤석열 정부에서 계속 운전을 신청할 수 있는 원전은 2023~2029년 설계수명이 만료되는 고리 2·3·4호기, 한빛 1·2호기, 월성 2·3·4호기, 한울 1·2호기 등 10기다. 인수위의 제안대로 제도가 바뀌면 2033~2036년 설계수명이 만료되는 한빛 3·4호기와 함께 한 번 더 연장하는 고리 2·3·4호기, 한빛 1·2호기, 월성 2호기까지 계속 운전을 신청할 수 있다.

윤석열 정부가 원전 수명연장을 추진할 원전 대수를 늘린 것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의 영향으로 최근까지 수명연장을 신청하지 못해 실질적 수명이 줄어드는 원전이 생기는 등 원전 정상화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원전을 계속 운전하기 위해서는 설계수명 만료일 전 안전성평가 보고서와 수명연장 운영변경허가를 원자력안전위원회에 제출해야 한다. 2026년까지 설계수명이 종료되는 원전 5기(고리 3·4호기, 한빛 1·2호기, 월성 2호기) 중 원안위에 수명연장을 신청한 곳은 아직 한 곳도 없다. 당장 내년 4월 설계수명이 완료되는 고리 2호기는 당분간 운전 정지가 불가피하다. 고리 2호기는 법적 제출 기한을 넘긴 지난 5일에야 뒤늦게 안전성평가 보고서를 원안위에 제출했다.

인수위 관계자는 “안전성 확인 등에 통상 2년 이상 소요된다”며 “고리 2호기가 수명연장 허가를 받더라도 약 1년간은 원전 정지가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가동 원전 93기 중 85기에 대해 계속 운전을 허가했고, 프랑스는 56기 중 19기, 일본은 33기 가운데 4기가 승인받는 등 주요국이 노후 원전을 수명연장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새 정부의 원전 계속 운전 정책으로 2030년까지 10기 원전의 수명이 연장될 경우 총 8.45GW 원전 설비용량이 늘어나는 효과가 있다. 정부와 인수위는 2030년까지 수명이 차례대로 만료되는 원전 10기를 계속 운전할 경우 지난해 27.4%였던 전체 발전량 중 원전 비중을 33.8%까지 6%포인트 이상 끌어올릴 수 있을 것으로 추산했다.

인수위는 또 이 같은 원전 비중 확대를 무리 없이 추진하기 위해 ‘탈원전’과 ‘신재생 확대’에 초점을 맞춘 에너지 기본계획을 조기에 수정하기로 했다. 당초 2024년으로 예정된 4차 에너지 기본계획 수립 시기를 2년 앞당겨 올해 다시 짜기로 했다는 설명이다. 에너지 정책의 중심을 원전으로 전환하겠다는 방침이다. 에너지 기본계획을 토대로 오는 연말까지 ‘10차 전력수급 기본계획’도 전면 개편할 계획이다. 전력수급 계획은 2년 단위로 수립하며, 올해 재수립이 예정돼 있다.
윤석열 정부에서 2030년 국가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를 문재인 정부가 국제사회에 공표한 2018년 대비 40% 감축으로 유지하되, 분야별 감축 목표를 합리적으로 재조정한다는 방침이다. 이 과정에서 원전을 적극 활용할 경우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면서도 산업계의 부담은 크게 덜어줄 수 있다고 전망한다.

전기요금에 연료비 반영 강화

인수위는 에너지의 시장성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도 함께 시행한다. 이를 위해 전기요금 산정 때 원가를 기반으로 하는 ‘원가주의 요금 원칙’을 확립할 계획이다. 전기요금을 결정하는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전기위원회는 독립성과 전문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조직과 인력을 강화한다.

인수위는 현 정부에서 전기요금이 정치 논리에 따라 결정되면서 한국전력공사가 지난해 5조8601억원의 적자를 내는 등 지속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고 진단했다. 정부는 지난달 우크라이나 사태 등으로 원유 가격이 급등했음에도 올 2분기 연료비 조정단가 적용을 유보하라는 의견을 한전에 통보했다. 연료비 조정단가는 전기요금을 결정하는 항목 중 하나로, 3개월마다 국제 연료 가격을 반영해 조정한다. 현재 원가에 따라 전기요금을 책정하는 연료비 연동제를 시행하고 있지만, 정부가 전기요금 인상을 인위적으로 막는 등 유명무실해졌다는 의미다.

인수위 관계자는 “이 같은 정책 관행을 계속 놔두면 적자 폭이 확대하는 등 문제가 악화할 것”이라며 “전기 가격을 독립적 원가주의에 따라 결정하는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전기요금에 원가 반영이 강화되면 당장 전기요금 인상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실제로 한전이 발전사로부터 사들이는 전력의 도매단가(SMP)는 지난달 기준 192.75원/kWh로 치솟았다. 지난해 같은 기간 SMP 84.22원/kWh 대비 2배를 훌쩍 뛰어넘었다. 반면 한전의 전력 판매 단가는 kWh당 110원대에 머무르고 있다. 그동안 문재인 정부에서 미뤄온 전기요금 인상분이 한꺼번에 적용될 수 있는 점도 부담이다. 인수위는 전기요금에 원가 반영이 강화되는 만큼 발전단가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원자력발전 비중을 높여 인상 폭을 완화하겠다는 계획이다.
원전 수명 연장…탄소중립 기업 부담 던다
김소현 한국경제 기자 alp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