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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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들어 수개월째 이어지던 은행 가계대출 감소세가 멈출 조짐이다. 일부 은행에선 부동산 관련 가계대출이 다시금 증가하고 있다. 이에 기존 대출 규제를 그대로 둘지 풀어야 할지를 놓고 고심하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도 곤란한 상황이다. 금리 인상과 물가상승 등의 변동이 시작된 가운데, 어떤 선택을 하든 가계 경제에 미치는 여파가 작지 않을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가계대출 4개월 하락세 끝? 다시 반등

24일 은행권에 따르면 국민, 신한, 하나, 우리, 농협은행 등 5대 은행의 지난 21일 기준 가계대출 잔액은 703조4484억원으로 지난달 말 대비 2547억원 증가했다.

지난해 줄곧 증가하던 5대 은행 가계대출 잔액은 올들어 1월~3월(1월 -1조3634억원, 2월 -1조7522억원, 3월 -2조7436억원)에 걸쳐 연속 감소했다. 현 추세대로라면 월별 감소세가 곧 끝나고, 4월에는 증가세로 반전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최근 가계대출 증가세는 부동산 대출이 이끌고 있다. 3월 말과 지난 21일을 비교하면 신용대출이 1754억원 줄어든 반면, 주담대는 4008억원 늘어났다. 은행권 관계자는 "새 정부의 부동산, 대출 규제 완화에 대한 기대감에다 '대출 금리가 과도하게 높아졌다'는 여론에 최근 대형 은행들이 주담대와 전세대출 금리를 낮춘 영향"이라고 설명했다.

깊어지는 인수위 고민

인수위는 대선 공약 사항인 주택담보인정비율(LTV) 완화와 관련해 장고를 거듭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후보 시절 부동산 LTV를 일괄 70%로 완화하고, 최초 주택구매자 등 청년에 대해선 80%까지 낮춰주는 안을 공약했다. 하지만 최근 주택 시장 동향과 물가 상승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 이를 두고 장고를 거듭하고 있다.

오는 7월 시행 예정인 개인별 총부채원리금상환제도(DSR) 규제 강화안도 부담이다. DSR을 그대로 둔다면 LTV를 완화하더라도 소득이 적은 청년은 사실상 주택을 구매할 수 없게 된다. 인수위 내부에선 '단계적 DSR 강화 안은 전 정부의 일정'이라는 주장이 나오는 한편 '규제를 완화하면 다시 가계대출을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도 상당하다. 현재로선 생애 첫 주택 구매자에만 LTV를 풀어주되, 줄어든 대출 한도를 보충해주기 위해 DSR을 ‘핀셋 완화’ 해주는 안이 유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LTV와 DSR을 함께 풀면 다소 진정세를 보였던 부동산 시장이 영향받을 가능성이 높다. 가계부채 문제도 고심을 깊게 하는 요인이다.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는 청문회 질의 응답에서 가계부채 문제에 대해 묻는 질문에 대해 "청년세대와 취약계층의 가계부채 상환 부담이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총리가 된다면 갚을 수 있는 만큼 빌리도록 하는 대출 심사 관행을 정착시키는 등의 방안을 통해 가계부채 건전성을 견고하게 개선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한 후보자는 LTV, DSR 규제에 대해선 "(LTV, DSR은) 부동산 급등 과정에서 시행했던 과도한 대출 규제를 정상화해야한다"며 "다만 그와 동시에 대출 규제 정상화가 시장의 또다른 불안요인으로 작용하지 않도록 세심하고 점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은행 10년 분할상환 신용대출 내놓나


이 가운데 은행들은 차주별 기준(총부채 2억원이상 차주별 DSR 적용→1억원 이상 차주별 DSR적용)을 강화하는 DSR 규제 강화를 앞두고 '10년 분할상환 신용대출'을 마련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현재 신용대출은 개인별 DSR 계산식에서 5년간 원리금을 나눠 갚고, 사실상 매년 재연장을 하는 방식으로 집행된다. 이를 10년 만기로 늘리되 현재 이자만 갚던 방식에서 실제 원금도 함께 갚은 방식의 10년만기 대출을 제공하겠다는 뜻이다.

이는 앞서 몇몇 은행이 출시한 4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과 마찬가지로 연 원리금 상환액이 줄게 돼 차주별 DSR 규제 하에서 청년, 저소득자의 대출 여력을 틔워 주는 효과가 있다.

가령 연 소득이 5000만원이고 5000만원의 신용대출(만기일시상환, 연 4.5%)을 이용 중인 대줄차는 신용대출 산정 만기 5년을 일괄 적용하면 연간 원리금 상환액이 약 1200만원으로 이미 DSR이 23%을 넘어선다. 신용대출을 보유했다면 30년 만기 주담대(금리 연 4.8%)를 1억2600만원밖에 받을 수 없다.

반면 신용대출을 10년 분할상환으로 전환하면 DSR은 약 12%로 절반 가까이 떨어져 추가로 받을 수 있는 주담대 한도는 2억2000만원가량으로 증가한다. 은행 관계자는 "10년 만기 신용대출은 갚을 만큼 빌린다. 번 만큼 빌려준다는 차주별 DSR 규제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각에선 강해진 차주별 DSR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갚는 기간이 더욱 긴 빚을 내도록 하는 건 잘못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원리금 상환식의 장기 대출은 기존에 이자만 내면 됐던 일시금 신용대출에 비해 갚을 빚이 늘어, 결국엔 대출자의 가처분 소득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 장기 신용대출은 기존 상품 대비 1~2%포인트 높아질 것이 확실시돼 이자 부담도 키울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결국 신용대출 DSR 만기 계산을 10년에서 7년으로 다시 5년으로 줄인 게 문제"라며 "이를 다시 원상복구 하면 DSR 여력도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김대훈 기자 daep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