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ML 장비를 비행기에 싣는 모습 [사진=ASML]
ASML 장비를 비행기에 싣는 모습 [사진=ASML]
반도체용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독점 생산하는 네덜란드 ASML사의 피터 베닝크 최고경영자(CEO)가 극심한 반도체 쇼티지(공급 부족) 사태 장기화를 전망했다. 그는 일부 업체들이 반도체 확보를 위해 세탁기를 구매해 내장된 부품까지 뜯어내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며 심각성을 경고했다.

21일 미국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베닝크 CEO는 이날 1분기 실적 발표틀 통해 한 글로벌 대기업은 반도체 수급난으로 이렇게까지 대응하고 있다고 전했다.

구체적 기업명을 밝히지 않았으나 일부 분야에서 반도체 쇼티지가 심각한 상황에 놓여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이 사례를 언급한 것으로 풀이된다. 업계는 당분간 반도체 공급 지연 현상이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베닝크 CEO는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수요는 정말 많은 산업 분야에서 발생하고 있다. 그 분야가 매우 넓다"며 "우리가 그 수요의 폭을 너무 적게 잡았다. 반도체 부족 현상이 당분간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미국 증권사 서스퀘하나(Susquehanna) 파이낸셜이 조사한 지난달 반도체 리드타임(주문에서 최종 납품까지의 시간)은 26.6주로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중국의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에 따른 봉쇄 조치, 일본 지진 등의 여파가 반도체 공급에 영향을 주면서 수급난을 한층 악화시켰다.

베닝크 CEO가 수장으로 있는 ASML은 삼성전자와 대만 TSMC, 미국 인텔 등 글로벌 반도체 업체들이 앞다퉈 장비 확보를 위해 러브콜을 보내는 '슈퍼을' 기업으로 꼽힌다. 반도체 수급 상황에 따라 제조장비 수요도 움직이는 만큼 당분간 수급난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한 셈이다.

반도체 수급난 현상은 ASML 실적에도 악영향을 끼쳤다. ASML은 올 1분기에 매출 35억3400만 유로(약 4조7000억원), 영업이익 7억8400만유로(약 1조원)를 올렸다고 밝혔다.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9%, 영업익은 50% 줄었다. 다만 ASML은 지난해 4분기 실적 발표 때 부품 공급난으로 일부 장비 매출이 이연돼 올 1분기 매출이 감소할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ASML은 2분기부터 실적 회복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2분기 예상 매출은 51억~53억유로다. 1분기에 차세대 EUV 노광장비 '하이NA' 장비를 다수 수주했다고도 귀띔했다. 베닝크 CEO는 "생산 능력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공급망 파트너사와 적극 협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